▲ 지난 21일 대검 주변을 산책하는 송광수 검찰총장. 임준선 기자 | ||
검찰도 대선자금 수사가 끝나면 정치권의 반격이 시작될 것을 어느 정도 예상하기는 했다. 그렇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공격의 강도는 예상보다 강할 뿐 아니라 치밀했다.
검찰으로서는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는 일. 반격의 선봉에 검찰의 대표선수격인 안대희 대검 중앙수사부장이 섰다.
불법 대선자금 최종 수사결과 발표가 있었던 지난 21일 오후 중수부장실. 안 부장은 자신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전국민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염두에 둔 듯 거침없이 발표문을 읽어 내려갔다.
“검찰은 오로지 원칙에 입각하여 철저히 수사를 진행해 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불법적인 정치자금의 수수 등 비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검찰이 통제받지 않는 막강한 ‘권력기관화’되고 있다거나, 검찰권이 남용되고 있다는 등의 명분으로 검찰권을 견제 내지는 약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수사 결과를 기대했던 기자들은 의외의 지적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검찰을 길들이려는 정치권 시도를 우회적인 표현으로 공론화한 것이다.
안 부장은 경고성 메시지도 던졌다. 향후 정치권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및 권력 핵심 인사의 비리에 대해서도 성역없이 수사하겠다면서 새롭게 구성되는 17대 국회도 예외가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검찰권이 없어지지 않는 한 언제든지 비리가 있는 국회의원들은 날려버릴 수 있다는 뜻이 녹아 있었다.
검찰에 대한 공격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는 것도 검찰을 곤혹스럽게 하는 대목이다.
4·15 총선을 불과 며칠 남긴 지난달 9일.‘포스트 노무현’ 자리를 놓고 정동영 의원과 함께 조목을 받고 있는 김근태 의원이 17대 국회 청사진을 발표하면서 뜻밖의 공약을 발표했다. 검찰총장의 국회 본회의 출석을 의무화하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과거 야당이 검찰총장의 국회 본회의 출석을 주장한 적은 있지만 여당 핵심 관계자가 이런 강수를 둘 것이라고는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특히 이번 총선에서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여당으로서는 의지만 있으면 언제든지 검찰총장의 본회의 출석이 현실화될 수 있는 상황이다. 열린우리당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지금은 검찰권 독립이 현저하게 이뤄졌고, 오히려 검찰에 대한 견제세력이 없기 때문에 국회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고 공약의 취지를 설명했다.
검찰을 무력화시키거나 장악하려는 시도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권부는 인사를 통해 검찰을 통제하려 했다. 그렇지만 인사를 통해 검찰을 장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이번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통해 입증됐다. 검찰 수뇌부는 자기 사람을 앞세워 장악할 수 있지만 실제 수사를 담당하는 부장검사나 평검사는 통제불능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일선의 분위기는 지난해 3월9일 헌정사상 처음으로 열린 대통령과 평검사와의 대화에서 촉발됐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현재는 강금실 법무장관의 유임이 확실해졌지만 탄핵결정이 내려지기 직전까지도 청와대 일부 참모들은 강 장관을 경질해야한다는 의견을 강력하게 제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유는 간단했다.강 장관이 검찰을 장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현 정부도 과거처럼 구체적인 사건에서까지 검찰을 좌지우지할 의도는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그렇더라도 최소한 검찰과 긴밀한 협조 관계는 유지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강 장관 경질 주장을 한 일부 참모들은 강 장관이 검찰과 사사건건 부딪치기만 할 뿐 전혀 협조관계를 구축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결국 정치권은 인사뿐만 아니라 제도개선이 병행될 때만이 검찰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이후 정치권은 각종 제도개선을 무기삼아 검찰을 무력화시키겠다는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우선 검찰의 1차적 수사기능을 대폭 축소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대신 검찰을 최고의 인권옹호 기관으로서 형사부와 공판부 기능을 강화, 다른 수사기관을 감시·감독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외견상 명분도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이는 특수수사에 대한 검찰의 인력과 기능을 대폭 축소시켜 놓겠다는 것과 다름아니다.
사정기관을 다양화시켜 검찰에 집중된 힘을 나누려는 시도도 진행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공직비리조사처 도입이다. 공직비리조사처는 여야 모두 도입을 찬성하고 있어, 법제화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특히 공직비리조사처는 대통령 친인척과 장·차관, 1급이상 고위공직자 등에 대한 수사를 전담하도록 논의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이들 고위공직자에 대한 수사의 주체는 검찰에서 공직비리조사처로 넘어올 수밖에 없다.
부패방지위원회의 위상도 검찰의 힘빼기와 직결된다는 것이 법조계 인사들의 지적이다. 김성호 부패방지위 사무처장은 지난 3월18일 취임 이후 가진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김 처장은 “부패방지위에 조사권을 부여하는 것은 시대적 사명에 맞는 아주 적절하고도 효율적인 부패통제체제를 수립하는 것”이라며 “조만간 좋은 방안이 나올 것”이라고 언급한 것이다.
대구지검장에서 부패방지위로 자리를 옮긴 김 처장은 처음에는 부방위로 옮기는 것을 강력히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 처장이 노 대통령과 독대한 부방위 사무처장 자리를 수락했다는 후문이다. 이 자리에서 노 대통령은 김 처장에게 부방위에 강력한 힘을 실어줄 테니 소신껏 일할 것을 주문했다는 소문도 들린다. 김 처장이 취임 후 부방위의 현안이었던 조사권을 운운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검찰의 일부 기능이 부방위로 넘어갈 것도 배제할 수 없는 대목이다.
대검의 중앙수사부 자체도 축소될 위기에 처했다. 현재 중수 1,2,3과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대검 중수부에서 중수3과를 폐지하는 대신 대형사건의 경우 일선 검찰청에서 검사를 파견받아 대검에서 직접 수사하거나 서울지검 특수부 등 일선 검찰청으로 사건을 넘기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이같은 정치권의 파상공세에 검찰은 그냥 당하고만 있을까.
일각에서는 4·15 총선 사범에 대한 강도높은 처리를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지난 7일 대전지검 공주지청은 열린우리당 오시덕 당선자(충남 공주·연기)를 전격 구속수감했다. 당선자가 국회 개원 전에 개인비리도 아닌 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5일 뒤인 지난 12일에는 한나라당 이덕모 당선자(경북 영천)도 구속수감됐다.
앞으로도 구속될 당선자가 더 있다는 것이 공안당국의 설명이다. 검찰 주변에서는 검찰에 의해 기소돼 당선무효될 당선자가 20여 명을 넘을 것이라는 전망도 흘러나오고 있다. 때문에 정치권도 검찰의 선거법 위반 수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재까지 9명의 당선자가 이미 불구속기소됐다. 구속된 두 당선자를 포함하면 11명의 당선자가 기소될 것이 확실하다. 아이로니컬하게도 공안부가 현재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지만 1년 전인 노무현 정부 초기만해도 축소 내지 폐지설이 유력하게 나돌았던 부서 가운데 하나다.
검찰과 정치권의 힘겨루기는 이번 주에 단행될 검찰 간부 인사를 통해 어느정도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벌써부터 사정의 칼날을 휘두를 수 있는 부서인 대검 중수부와 서울지검장 등 핵심요직에는 친 여권 인사를 배치시킬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이런 차원에서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이 좌천성 영전을 할 수 있다는 얘기가 사라지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도 타협차원에서 송광수 검찰총장의 의견을 상당수 수용하는 선에서 인사를 단행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안 부장은 물론 문영호 대검 기획조정부장 등 송 총장 라인의 전진배치도 배제할 수 없다.
이진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