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엔 보좌관 공채 대신 믿을 만한 지인을 특채 하는 의원이 늘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일요신문 DB
그런데 그 보좌관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계속 출근했다. 오히려 그는 지인들에게 당시의 상황을 무용담처럼 자랑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해당 의원에게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실제로 몇 년이 지나 그 의원은 “그 보좌관이 돈 관리를 맡고 있었다. 그만두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럴 만한 사정이 되지 못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여의도에선 보좌관 신분을 ‘파리 목숨’에 빗대곤 한다. ‘슈퍼 갑’인 의원 말 한마디면 언제든 직장을 잃을 수 있는 처지인 까닭에서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앞서의 사례는 무척이나 드문 케이스다. 그러나 18대 국회 이후 의원과 보좌관 간 관계에 변화가 나타났다는 것엔 정치권 관계자 대부분 고개를 끄덕인다. 우선 초선 의원들이 큰 폭으로 늘어났다는 데 그 원인을 찾는 이들이 적지 않다.
권대우 정치평론가는 “초선 의원들이 국회에 대거 입성하면서 경력을 갖춘 보좌관 몸값이 높아졌다. 잘나가는 보좌관은 의원실을 골라서 간다. 이들은 웬만한 초선 의원은 한 수 아래로 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2004년 통과된 이른바 ‘오세훈법’으로 인해 정치자금 제재가 강화되면서 회계업무를 맡는 보좌관들 입김이 세졌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보좌관이 자기가 모시고 있던 의원 비리를 사정당국에 제보하는 것을 두고 원로 정치인들은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동교동계 출신의 한 전직 의원은 “과거엔 보좌관이 의원을 대신해 감옥까지 갔다. 또 이를 영광으로 알았다. 정치적으로 한 배를 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의원과 보좌진 사이에 어떤 끈끈한 고리가 없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상도동계의 한 전직 의원 역시 “지금 보좌관들 수준이 훨씬 높아진 건 맞다. 우리 땐 대학 때부터 의원을 따라다니면서 몸으로 배우는 사람들이 보좌진에 자연스레 합류했지만 지금은 로스쿨 졸업생 등 전문가도 많이 있지 않느냐”면서도 “정치적 동지라고 할 수 있는 보좌관이 언제 뒤통수를 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의원들이 많다는 현실이 조금은 아쉽다”고 전했다.
의원실엔 통상 6~7명의 보좌진이 근무한다. 이 중 보좌관(4급)과 비서관(5급)이 각각 두 명이고, 나머지는 비서다. 보좌관은 의원의 정책·정무적 판단을 도울 뿐 아니라 일정 및 지역구 관리와 같은 대외 업무를 총괄한다. 특히 민감한 자금 관리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의원 입장에서 의정 생활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존재인 동시에 가장 두려운 존재인 이유다. 몇 년간 이뤄진 정치권 수사 상당수가 보좌관 ‘입’에 의해 좌지우지됐다는 게 이를 입증한다.
검찰 수사를 받은 경험이 있는 새정치연합의 한 의원은 사석에서 “소환조사를 받으러 들어갔는데 검찰이 극비 자료를 가지고 나를 추궁했다. 식은땀이 나더라”며 “알고 보니 내 전직 보좌관이 몰래 빼돌렸다가 검찰에 투서를 한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최근 검찰이 겨냥하고 있는 ‘입법로비’ 수사에서도 전·현직 보좌관들 제보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처럼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는 일이 빈번해지자 보좌관 채용 방식이 과거로 회귀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18대를 거쳐 19대 국회 들어선 의원들이 공채를 통해 전문가 직업군을 보좌관으로 채용하는 것을 선호했다. 그런데 최근엔 믿을 만한 지인을 보좌관 또는 자금관리 비서로 ‘특채’하는 의원들이 늘어났다고 한다. 실제로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자신의 사촌동생을 비서로 뽑은 뒤 전적으로 돈 관리를 맡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의원들 사이에선 이를 벤치마킹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윤호석 정치평론가는 “의원들이 떳떳하다면 굳이 보좌관을 껄끄러워할 것 없는 것 아니냐. 과거에 얼마나 많은 부정이 있었느냐”고 반문하며 “그런데도 대부분 보좌관은 입을 닫고 있었다. 최근 사례들은 정치가 투명해지는 과정에서 생기는 과도기적 현상으로 봐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보좌관 하극상 여성 의원 A 보좌관 “사석에선 오빠라고 불러” ‘보좌관의 반란’이 정치권에 회자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요신문>은 보좌관과 불미스런 일을 겪은 의원들로부터 직접 그 전말을 전해 들었다. 우선 A 의원 케이스부터 들춰 보자. 여성인 A 의원은 지난해 연말 보좌진과의 회식 자리를 떠올리면 치가 떨린다고 했다. “의원실 직원들과 송년회를 했다. 술을 제법 많이 마신 후에 보좌관이 나보고 한잔 더 하자면서 손을 잡았다. 그러면서 ‘사석에선 오빠라고 해도 되는 거 아니냐’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평소에도 초선인 나를 깔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주변에서 말렸는데도 계속 그러더라. 더욱 어이가 없었던 것은 다음 날 봤는데 사과조차 하지 않은 것이었다. 기분이 나빴지만 그 보좌관 도움이 없으면 의정생활이 힘들 것을 알기에 꾹 참고 지나갔다.” 초선인 B 의원은 보좌관에게 협박을 당했다고 하소연했다. B 의원은 올해 초 돈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것 같아 담당 보좌관에게 자금 내역을 보고하라고 했다. 또 일부 자금 부분은 앞으로 직접 챙기겠으니 인수인계도 요구했다. 보좌관이 돌변한 것도 이 때부터다. B 의원은 이렇게 털어놨다. “임기 첫 해는 전적으로 보좌관에게 의존했지만 올해부턴 내가 좀 살펴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내가 지시한 것을 따를 수 없다고 했다. 말이 되느냐. 오히려 보좌관이 ‘돈 문제는 모르는 게 낫다. 알아서 다할 테니 걱정마라. 개인적으로 쓰는 건 하나도 없고 다 선배(B 의원) 위해서 쓰는 것’이라며 은근히 협박조로 말했다. 그래서 내가 ‘투명하게 하자는 것일 뿐’이라고 하자 ‘그런 식으로 정치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 모른 체해라. 다 그런다’며 화까지 냈다. 결국 바뀐 건 아무 것도 없다. 나랑 비슷한 처지인 의원들이 또 있는 것으로 안다.” C 의원은 보좌관에게 사생활 관련 약점을 잡힌 경우다. 믿기 어렵지만 심지어 이 문제로 인해 뺨까지 맞았다고 한다. C 의원은 지난해 보좌관 및 지인들과 저녁을 먹은 후 주점으로 이동해 술을 마셨다. 술값은 C 의원이 지불했다. 문제는 다음날 발생했다. 술에 취한 C 의원이 여종업원과 과도한 신체 접촉을 하는 장면을 보좌관이 휴대폰으로 촬영해 보여준 것이다. C 의원의 하소연이다. “보좌관이 ‘어제 많이 취하셨나 봐요. 재미있어서 제가 찍어뒀습니다’ 하면서 웃더라.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그럴 걸 왜 찍었어요. 그냥 삭제해주세요’ 하니 보좌관이 ‘에이 이런 건 간직해야죠. 제가 잘 보관해두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정말 맘 같아선 휴대폰을 뺏어서 던지고 싶었다. 그러고 나서 며칠 뒤에 내가 술자리에서 정색하며 휴대폰을 달라고 하자 보좌관이 싫다고 했다. 그 와중에 몸싸움이 벌어졌는데 갑자기 보좌관이 내 뺨을 때렸다. 사과를 하긴 했지만 끝내 휴대폰은 주지 않았다.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고 있는 지금도 찝찝하기만 하다.” [동] |
운전기사 경계령 “거물들 수사 때 운전기사 조사는 기본” 국회 의원회관 지하엔 의원 차를 운전하는 기사를 위한 공간이 따로 마련돼 있다. 이곳에서 운전기사들은 휴식을 취하며 의원들 호출이나 다음 일정을 준비한다. 국회를 출입하는 사정당국·대기업 관계자와 취재진들 중에선 기사 휴게실을 기웃거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의원들의 손과 발 역할을 하는 기사들로부터 가끔씩 고급 정보가 흘러나오는 까닭에서다. 실제로 휴게실은 국회에서 도는 소문의 진원지 중 한 곳으로 꼽힌다. 박상은 의원의 ‘돈가방 사건’도 운전기사의 내부고발로 불거졌다. 이종현 기자 정치자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얼마 전 구속 기소된 박상은 새누리당 의원 수사에서도 기사는 주요 인물로 등장했다. 박 의원 기사는 승용차에 있던 3000만 원을 검찰에 가져가 신고했고, 사건은 일파만파 커졌다. ‘철피아(철도+마피아)’ 비리에 연루돼 구속된 조현룡 새누리당 의원 역시 기사가 돈 전달자로 지목받았고, 추후 기사가 이를 인정하며 검찰 수사는 급물살을 탄 바 있다. 정치권뿐 아니라 재계에서도 기사들의 존재감은 남다르다. 과거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몇몇 사건 때 기사들의 활약(?)은 연일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지난 정권의 부산저축은행 수사 당시 브로커 박태규 씨 기사는 목격담을 언론에 제보했다. 파이시티 게이트로 구속된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도 브로커 이동율 씨 기사가 돈을 전달하는 모습을 찍어둔 사진으로 인해 덜미가 잡혔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의 한 검사는 “거물들을 수사할 때 회계 실무자와 운전기사를 조사하는 것은 기본이 됐다”면서 “기사들에게 ‘운전만 하는 것은 죄가 없으니 알고 있는 것을 다 말하라’고 하면 대부분 실토를 한다. 범죄 혐의자들 동선 파악을 위해선 기사들의 협조가 절대적”이라고 설명했다. 사정이 이러니 의원들 사이에선 보좌관 못지않게 기사들과 있을 때도 ‘말조심’을 해야 한다는 얘기들이 돌고 있다. 친척이나 학교 후배와 같은 지인을 기사로 뽑아 배신 가능성을 최대한 낮추려 하는 의원들도 늘어나고 있다. 새누리당의 한 초선 의원은 “조금 껄끄러운 곳으로 이동할 땐 기사가 아니라 아예 직접 운전할 때도 있다. 불편하지만 보안 유지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