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회창 전 총재(왼쪽)와 김혁규 전 지사 | ||
그런 와중에 ‘한 통의 편지’가 정치권에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2002년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김 전 지사가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에게 보냈다는 ‘충성’을 맹세하는 편지가 있다는 소문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과연 소문속의 편지는 존재하는 것일까. 소문이 사실이라면 김혁규 전 지사는 상당히 곤혹스러운 지경에 이를 것으로 관측된다. <일요신문>은 2002년 지방선거 당시 이 전 총재 비서실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편지의 진상을 추적해 봤다.
이 사실을 처음 확인해 준 당시 이회창 총재 비서실 간부 A씨의 증언은 비교적 구체적이었다. 그는 “지난 지방선거 당시 김 지사에게 공천을 줄 것인지를 두고 당이 시끄럽던 때에 김 전 지사가 자필로 작성한 A4 2~3장 분량의 ‘당과 이 총재에 대한 충성’의 내용을 담은 편지가 이 전 총재에게 전달했었다”고 말했다. “당시 편지가 우편으로 전달됐었다”고 전한 A씨는 “김 전 지사가 이 전 총재를 방문(2002년 3월 20일)하기 며칠 전에 총재실로 전달됐으며 이후 사실상의 경남지사 공천문제가 매듭지어졌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서신의 내용에 대해서는 “김 전 지사가 더 이상 딴 마음을 품지 않고 이 전 총재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내용이었다는 기억은 있지만 정확한 문구는 기억하지 못하겠다”고 말해 궁금증을 더했다.
이 서신을 기억하는 또 다른 관계자 B씨도 “기억이 난다. 김 전 지사가 그 당시 자필로 쓴 편지를 보냈었다. 나는 서신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런 편지가 전달됐다는 얘기가 비서실 내에서 회자됐었다. 당시 비서실에서는 ‘김 전 지사가 이 전 총재에게 충성을 맹세했다’는 식의 말이 돌았다”고 전했다. 또 B씨는 “당시 비서실에는 6~7명 정도의 인원이 근무를 하고 있었다. 이런 내용이라면 비서실 내에서 문서관리와 일정을 담당했던 A씨가 가장 자세히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편지를 확인해 준 두 사람의 증언은 거의 일치했다.
반면 김 전 지사측은 편지의 존재 자체를 부인했다. 김 전 지사측의 입장은 지난 22일 오전 전화통화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기자와 전화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김 전 지사님의 생각”이라고 밝힌 김 전 지사측 관계자는 “김 전 지사님께 확인한 결과 그런 일이 전혀 없었다. 아마도 이 전 총재측 관계자들이 잘못알고 있는 것 같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취재 결과 당시 비서실 관계자들이 모두 이 편지를 기억하고 있지는 못했다. 당시 총재 비서실장을 맡았던 김무성 의원, 총재를 수행했던 정병국 의원, 비서실 실무책임자로 일했던 정태윤 전 총재비서실 차장, 차정미 전 비서관 등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이 서신에 대해 “처음 듣는 얘기다”라고 말했다.
특히 당시 이 전 총재 비서실장을 지낸 김 의원은 “당시 김 전 지사가 총재를 찾아와 그동안의 분란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이 전 총재의 대권 도전에 충실히 협조하겠다는 뜻을 보인 일은 있지만 편지가 전달됐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A씨는 “당시에는 지방선거와 대선을 앞두고 있었던 때였기에 전국에서 이 총재에게 수많은 편지들이 보내지던 때였다. 그래서 일일이 서신의 내용을 비서실 관계자들이 다 돌려볼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당시에는 그다지 중요한 사안도 아니었고. 김 전 지사가 지금과 같은 정치행보를 보일 줄 알았다면 분명히 보관해 두었을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편지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많았다. 취재 중 만난 영남지역 한나라당 관계자는 “김 전 지사의 성격상 그런 식으로 충성편지를 보낼 사람은 아니다”라고 말했고 2002년 당시 김 전 지사와 공천경쟁을 벌였던 이강두 의원실 관계자는 “공천문제, 지방선거 등으로 당내에 긴장감이 돌던 때였다. 그러나 아무리 김 전 지사가 급한 마음에 편지를 보냈다고 해도 그 분의 성격상 우편으로 그것을 보냈겠는가. 믿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문제의 편지는 며칠에 걸친 추적을 통해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편지를 실체를 확인해준 관계자들의 증언이 상당히 구체적이라는 점에서 의문은 증폭된다. ‘편지’는 존재했던 것일까. 존재했다면 어떤 내용을 담겼을까. 증언의 내용처럼 ‘충성’의 내용이었을까.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