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공항 건립이 새누리당 분열의 시한폭탄이 될 것이란 이야기가 자자하다. ‘가덕도 신공항’을 이야기하는 부산과, ‘경남 밀양’이 적지라는 울산·경남·대구·경북 정치권이 사생결단의 의지를 보이고 있다. 거기에다 서울·경기 등 수도권은 아예 ‘신공항 무용론’ 입장이어서 신공항을 두고 새누리당이 ‘3분’ 되는 모습이다. 현안이 무르익을 때까지 좀처럼 말을 삼가던 박근혜 대통령도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듯 일종의 지침(?)을 내렸다. 박 대통령의 말이다.
지난 2011년 가덕도 신공항 유치 범시민 비상대책위원회의 기자회견 모습(위)과 동남권 신공항 입지평가단의 밀양 신공항 후보지 실사 모습. 연합뉴스
“관계부처, 지방자치단체, 전문가 그룹 등을 중심으로 경제적 논리하에 논의를 추진해 국책사업 갈등 방지의 선례가 되도록 해주기 바란다. 신공항 항공수요 조사 연구용역 결과가 발표됐는데 지역 간 경쟁 과열, 대립 등으로 갈등이 심화할 소지가 적지 않다. 지자체 간 평가 기준에 대한 합의를 먼저 이루고 결과를 수용한다는 원칙이 견지되도록 해주기 바란다.”
이를 들은 TK(대구·경북) 출신의 한 의원은 이렇게 맞받았다. “부산 대 대구·경북·울산·경남 정치권이 결과에 승복하겠다고 합의를 했다고 칩시다. 그런데 최종적으로 상대 지역에 신공항을 건립한다는 결정이 나면 그게 승복이 되겠습니까? 지역민은 정치권의 무능을 질타할 것이고, 시민사회단체는 용역과정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집회 시위 등 논란이 촉발됩니다. 이는 곧바로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통령선거와 직결됩니다. 영남권을 텃밭으로 한 새누리당은 구렁텅이에 빠지는 거예요.”
남부권 신공항에는 많은 영남권 정치인의 ‘차기 도모’가 얽히고설켜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본인은 아니라지만 여권 후보로선 차기 대권에 가장 가까이 가 있다. 국토교통부의 신공항 경제성 발표가 있자 그 직후 최고위원회의와 당 의원총회에서 신공항의 ‘신’자도 꺼내지 말라고 엄포를 놨다. 김 대표는 “신공항 입지선정위원회에 모든 것을 맡기고 발표되기 전까지 우리 정치권은 애향심보다 애국심에 입각해 그와 관련된 발언을 일절 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TK는 이명박-박근혜 정부로 이어진 정권창출의 일등공신 지역이다. 8080(80%대 투표율, 80%대 득표율)을 어느 지역이 해낼 것인지 경쟁이 이뤄졌을 정도로 새누리당 절대우호 지역이기도 하다. 결국 김 대표 본인의 대선행 티켓은 TK가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 아니다. 하지만 TK에선 김 대표가 부산을 지역구로 둬 “팔은 안으로 굽을 것”, “겉으로는 함구령을 내려도 수렴청정할 것” 등의 우려를 내비치고 있다.
‘차차기 주자’로 거론되는 경남지사 출신 김태호 최고위원도 김 대표와 입장이 같다. 한발 나아가 그는 “국민대통합위원회에서 갈등을 조정하는 해법을 찾고 이를 바탕으로 청와대와 정부가 신공항 건설을 추진하는 것이 최선의 해법”이라고 밝힌다. 자칫 영남이 이쪽저쪽으로 편이 갈려서는 본인의 정치적 목표도 도루묵이 될 수 있어 대통합, 갈등조정 등의 점잖은 표현으로 한 발 뺐다.
하지만 여권의 잠룡 중 한 명인 홍준표 경남지사는 “상식적으로 공항 입지는 물구덩이(가덕도)보다 맨땅(밀양)이 낫다”면서 경남 밀양을 밀고 있다. 이를 두고 여권 한 관계자는 “홍 지사는 경남 창녕 출신이지만 대구에서 고등학교(영남고)를 나와 TK에서도 자기 사람으로 분류한다. 이미 부산에는 김무성, 서병수 등 거물이 있고, 경남에선 김태호, 이주영 등 이무기도 있다”며 “본인으로선 경남과 TK에서 세를 모아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뜻이 있지 않겠는가. 별도의 정치적 영역 구축을 위해 여기저기 풀칠해 놓는 의도적 발언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친박계 핵심으로 꼽히는 서병수 부산시장은 지방선거 출정식을 가덕도에서 했고, 가덕도 신공항을 유치하지 못하면 시장직을 내려놓겠다고 천명한 상태다. 그의 정치생명과 직결돼 있는 문제다.
TK의 위기감도 만만치 않다. 여당 텃밭인 까닭에 공천 물갈이 1순위 지역으로 항상 TK가 거론돼 왔다. TK에서 물갈이되어야만 변화와 쇄신, 혁신의 상징성이 있다는 해석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현재 대구에선 유승민 의원이, 경북에서는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유망주로 떠오르고 있다. 김윤환, 강재섭 등 굵직한 정치적 어른과 박종근, 이해봉 등 원로 중진이 빠지면서 TK의 정치적 위상이 추락한 상태다. 그래서 유 의원, 최 부총리에게 더 기대가 크다. 특히 최 부총리는 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어서 더욱 그렇다. 신공항은 모래알 결집력을 추스르는 발판이 될 수 있다.
대구의 한 중진 의원은 “신공항을 가덕도에 내주는 것을 염두에 두고 플랜B, 플랜C를 짜는 그 순간 대구 정치권 모두가 물갈이의 대상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지역여론이 심상찮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신공항 문제는 새누리당에게 ‘자폭 단추’가 될 것이란 우려가 크다. 문재인, 안철수, 오거돈 등 야권 거물이 이미 대거 침투해 부산은 ‘야성’을 되찾았다. 부산에서 새누리당 간판으로 당선이 쉽잖아졌고 한번 위기를 맛봤기 때문에 죽기 살기로 나설 것이란 이야기가 많다.
반면 지역구 12명 의원 중 초선 7명, 재선 1명, 3선 이상 4명으로 구성돼 정치적 몰골이 우스워진 대구는 신공항이 공천과 직결돼 있기 때문에 똘똘 뭉칠 것이란 말이 나돈다. 이 공천권은 현 김무성 대표와 내년에 뽑힐 원내대표가 쥐고 있다.
그간 신공항 백지화는 영남내전의 평화조약과 같았다. 먹이(신공항)를 던지면 치킨게임 양상을 띨 게 빤하니 장기표류 사업이 되거나 다시 백지화할 가능성이 클 것이란 관측도 없지 않다.
선우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