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정가에서는 이런 말이 나돈다. “대통령이 누가 되든 차기정권은 여성들 세상이 될 거다.” 한마디로 확실한 ‘여성상위’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얘기다. 우선 각 후보들은 ‘친 여성 이미지’를 만드는 데 발벗고 나섰다. 이미 알려진 대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선대위 대변인에 조윤선 변호사와 여성특보에 나경원 판사를 각각 영입했다.
특히 조 대변인은 정치 경험이 전무함에도 불구하고 당으로부터 충분한 지원을 받으면서 맡은 임무를 톡톡히 해내고 있다. 웬만한 논평 발표는 대부분 조 대변인 몫이다. 여성 대변인이 TV를 통해 논평을 국민에게 알림으로써 자연스럽게 이 후보의 여성우대 정책을 홍보하는 효과를 노린 것.
민주당 노무현 후보 또한 마찬가지다. 노 후보 캠프의 특징은 여성인력이 타 후보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참여하고 있다는 점. 특히 30대 젊은 여성들이 부서별로 고루 분포돼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해내고 있다.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도 지난 10일 여론조사 전문가인 김행 디 인포메이션 대표를 선대위 대변인으로 영입하는 등 여성표를 의식하기는 마찬가지다. 김 대변인은 정 후보에 대해 “착한 심성을 가진 따뜻한 지도자”라며 벌써부터 여성표를 다지기 시작했다.
이에 앞서 정 후보는 방송인 전여옥씨를 당무위원으로, KBS아나운서 출신인 정미홍씨를 홍보기획단장으로 각각 영입하기도 했다. 전씨는 정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홍보하고 나섰고, 정 단장은 정 후보의 이미지 관리와 TV토론을 보강하는 것이 주된 임무다.
대선후보 진영에서 내놓은 여성정책 관련 공약 또한 과거 대선 때와 달리 진일보된 측면이 강하다. 먼저 한나라당은 이 후보에게 취약층인 20∼30대의 젊은 여성들을 공략하는 데 당력을 모으고 있다.
한나라당은 지난 5일 당사에서 ‘20∼30 여성 1백인 선언식’을 가졌다. 이날 선언식에는 벤처 CEO, 식품영양사, 방송작가, 교수, 의사, 주부, 대학생 등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는 20∼30대 차세대 여성 1백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국회의원 및 고위공직 30%이상 여성할당, 호주제 폐지, 여성대졸자 특별 취업대책 마련, 모성보호차원의 생리대 부가세 면제, 국비유학생 중 여성 50% 할당 등 10대 과제를 이 후보측에 제안했다.
▲ 왼쪽부터 노무현 후보, 이회창 후보, 정몽준 후보 | ||
정몽준 후보 또한 여성정책에 있어 비교적 개혁적이다. 중앙정부의 여성관련 예산을 0.35%에서 1%로 확대하는 한편, 호주제 폐지 입법화에도 찬성하고 있다. 고위 정책결정직에 여성할당제를 실시하는 데에는 타 후보에 비해 파격적이다. 광역의회 비례대표 후보 70%, 국회의원 비례대표 후보 50%, 5급이상 여성공무원 30%, 국립대 교수 여성비율 30% 채용할당제를 주장하고 있다. 정 후보는 또 유치원 무상교육, 윤락행위방지법 가중처벌 연령을 13세에서 18세로 강화하는 방안도 내놓고 있다.
여성표 공략을 위해 후보 부인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이회창 후보 부인 한인옥씨는 최근 시아버지 상(喪)으로 인해 다소 대외활동이 주춤한 상태다. 하지만 그동안 여성불자 모임 등 여성들이 모이는 곳에 빠지지 않고 참석해 이 후보의 지지를 부탁해왔다. 노무현 후보 부인 권양숙씨도 서민적 이미지를 강조하며 자원봉사활동을 주도하는 등 서민층을 상대로 활발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정몽준 후보 부인 김영명씨는 타 후보 부인들에 비해 ‘신선도’면에서는 으뜸이다. 그동안 언론에 알려지지 않은 점도 있지만 김동조 전 외무부장관의 막내딸로서 3개국어에 능통한 ‘재원’이라는 측면에서 그의 특별함은 상당하다. 최근엔 행동반경도 상당히 넓어졌다. 김씨는 지난 7일 고려대 함성득 교수의 대통령학 강의 시간에 특별강사로 초대받기도 했다.
대선을 한달 남짓 앞두고 대선후보와 부인들이 여성을 상대로 공을 들이고 있는 데 대해 사회적인 평가는 일단 긍정적이다. 특히 각 후보의 여성정책이 고급 여성인력의 사회진출 기회를 높이고 있다는 점에서 어느 대선 때보다 진일보했다는 것. 물론 선거를 의식한 졸속 공약이라는 비판도 없지 않다. 관건은 당선자의 실천의지라는 것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