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국회일정 때문에 상경했지만 추석연휴 전 2주일가량 지역구를 샅샅이 살핀 TK(대구·경북) 출신 중진 의원은 혀를 차며 이렇게 말했다. 세월호 정국에서 새누리당보다 야당이 여론전에서 더 두드려 맞는 까닭에 안일하게 생각했던 터였다. 그런데 정작 여당 텃밭에서도 정치권의 무능에 등을 돌리고 있었다고 했다. TK에서도 지역구 여론이 가장 좋다고 평가받는 의원이 이 정도다. 그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자.
지난 9월 11일 새누리당최고위원회의에서 최경환 부총리(맨 왼쪽)와 김무성 대표(맨 오른쪽)가 재정건전성을 두고 입씨름을 벌였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여당이 다수당인데 왜 돌파를 못 하느냐, 대통령도 기획경제부 장관도 전부 TK, PK(대구·경북) 사람들인데 어찌 이리 변하는 게 하나도 없느냐, (철도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송광호 (의원) 체포동의안은 왜 부결시켰느냐, 끼리끼리 이렇게 할 거냐, 뭐 한 게 있다고 추석 세비를 400만 원씩이나 받아가느냐 등등. 워낙에 정치 이슈가 많았음에도 지역민들이 하나하나 잊지 않고 콕 집어 언성을 높이셔서 뭐라 드릴 말씀이 없더라. 박근혜 대통령이 의원으로 있었던 18대 국회와는 완전히 딴판이다. 여기가 당 텃밭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처럼 추석을 쇤 새누리당 의원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다. 결론이 어떻게 나든 세월호 특별법은 조만간 처리될 것인데 그 이후 여권에 유리한 이슈가 하나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의 담뱃값 인상안을 두고도 당내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화난 지역구 민심이라는 말도 있다. 특히 농어촌을 지역구로 두거나, 도시에서도 낙후지역을 대표하는 의원들이 담뱃값 인상에 가장 떨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PK 의원실 한 보좌관은 이런 말을 했다.
“영감(의원)이 명절 대체휴일에 출근해서는 ‘어서 좋은 법안 하나 만들자’고 하더라. 왜 그러냐고 하니 ‘민심이 장난이 아니다. 오세훈법이나 김영란법같이 이름 들어가는 수준의 법 하나 못 만들면 도와주기 어렵다는 분들도 계신다’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연휴 끝나는 대로 뭔가 변화가 있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민심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힘들어지겠다는 이야기도 회의 중에 했다.”
집권여당 의원들이 지역민 이야기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는 것에는 18대 국회 ‘새누리당=박근혜’와 달리 현재 ‘새누리당=?’인 이유가 가장 크다. 40% 고정 지지층을 가진 견고한 차기 주자가 없다는 것이다. 같은 배를 탄 동료로서 박근혜 병풍효과를 톡톡히 누린 그들로선 차기 주자가 뚜렷하지 않다는데 여러 걱정을 하고 있었다. 중도층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고 여권 지지층은 빠지고 있다는 분석이 여럿이다. 여권의 전략 쪽 관계자는 이렇게 분석했다.
“일단 언론이 도와주지 않고 있다. 박근혜 정부 2년차인데 벌써 차기 주자 여론조사를 일제히 보도한다. 김무성이니 김문수니 하다가 급기야 최근에는 반기문(유엔 사무총장) 영입설과 영입 이후 지지율까지 보도하고 있다. 대통령이 국정운영 중반점도 돌지 않았는데 후계구도를 논의하는 것은 사실 어마어마한 권력누수다. 게다가 여권 후보군의 지지율 합계와 야권 합계를 대조해보면 야권이 더 높게 나오는 것도 새누리당 의원들의 걱정거리 중 하나다. 결국은 일 대 일 구도가 되지 않는가 말이다.”
여권에 우호적인 이슈도 없다. 일단 정치권은 담뱃값 인상 논란에 휩싸였다. 야권은 철저하게 ‘서민 호주머니 털기’, ‘서민증세’로 규정해 즉각 반발하고 있다. 게다가 하반기에는 상하수도, 광역버스 등 대중교통요금 인상 등 가계부담이 큰 공공요금 인상이 예고되고 있다. 경기도 이천시는 하수도 요금 인상을 발표했고, 강원도는 버스요금을 올린다. 일부 지자체는 수돗물 요금을, 일부는 놀이공간 관람료 인상에 시동을 걸었다. 돈 새나갈 일이 줄줄이인 서민들로선 모조리 분노 이슈인 셈이다. 정부는 4620원인 주민세를 2년에 걸쳐 1만~2만 원 이상 올리는 지방세 개편안을 발표했다. 자동차세도 올린다.
주요 당직을 맡고 있는 한 재선 의원은 “중요한 것은 새누리당에 거는 기대심리가 제로라는 점”이라며 “국회를 없애라는 성난 소리를 들었다. 국회가 일 안 해도 나라 돌아가는데 지장이 없는데 왜 국회가 있어서 싸움박질이냐면서 말이다. 정치권의 공멸하게 생긴 상황”이라고 말했다.
여권 내부도 뭉치지 못하고 있어 더 문제다. 최근 김무성 당 대표와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입씨름이 대표적인 예다. 국가재정이 건강하다는 최 부총리 앞에서 김 대표가 “왜 공기업 부채를 빼고 말하느냐”고 물었고, 최 부총리는 “미국에서도 공기업 부채는 뺀다”고 답했다. 이를 두고 김 대표는 “미국은 공기업이 별로 없다”고 공세를 펼쳤다.
이를 두고 정치권 한 인사는 “김 대표가 단단히 벼르고 내놓은 발언이다. 박 대통령의 측근 핵심 부총리와 박 대통령 색깔을 빼려는 집권 여당 당수의 설전 아닌가”라며 “이런 식으로 여권이 결집하지 못하면 여론의 심판을 받은 새정치민주연합처럼 곧 여론이 새누리당에 등을 돌리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관측했다.
대통령비서실장 교체 등 국면전환을 위한 인사도 성공할지 장담하기 어렵다. 워낙 인사파동을 치른 정부여서 당내에서조차 “아예 인사를 안 하는 것이 낫겠다”는 비아냥거림이 나오는 터다. 또 노무현 정부의 혁신도시나,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처럼 다른 이슈를 덮을 ‘함몰 이슈’도 없다. 한 3선 의원은 “대통령이 고군분투하는데 왜 국회가 뒷받침하지 못하냐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다. 그런데 실은 대통령이 어떤 분야에서 고군분투하는 것처럼 보이는지 되묻고 싶었다”며 “솔직히 지금 국회도 청와대도 제대로 일을 하고 있지 않다. 모두 저쪽(야권)이 자기 골대에 골 넣는 것만 팔짱끼고 지켜보고 있지 않은가”라고 지적했다.
제20대 총선이 2016년 4월이다. 까마득해 보이지만 실상은 내년이 임기 끝과 같다. 자신의 공천과 지역구 다지기 전쟁에 나서야 할 의원들이 추석을 쇤 뒤 안절부절 못하는 이유다.
선우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