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연 회장 사건 수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한 홍영기 서울경찰청장이 지난 25일 퇴임식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 ||
지난 5월 초 이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가 한창 속도를 더할 무렵 검찰의 한 관계자는 “사건이 검찰로 송치되고 나면 경찰 내부가 극심한 후유증을 앓을 것 같다. 수사 과정상의 외압 의혹이 예상 밖으로 심상치 않다”고 조심스레 전망했던 바 있다. 결국 ‘재벌과 조폭 간 유착 의혹’으로 표출됐던 사건의 진상 자체에 대한 국민들의 일차적인 궁금증이 해소되면서 이제 다음 수순인 ‘재벌과 경찰 간 유착 의혹’으로 그 불씨가 옮겨지고 있는 셈이다.
지난 25일 전격적으로 단행된 경찰의 감찰 결과 발표에도 불구하고 의혹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택순 경찰청장도 도마 위에 오르내리고 있다. 사건 발생 직후부터 지난 4월 말까지 약 50일간 이번 사건에 임했던 경찰의 대응 태도를 보면 곳곳에 의혹의 숨은 그림자가 여전히 도사리고 있다. 광역수사대가 마치 돈키호테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녀도 경찰 수뇌부는 요지부동이었다.
3월 8일. 김승연 회장 일행은 이날 저녁 서울 청담동에 이어 청계산에서 폭행의 서막을 연 뒤 밤 11시경엔 북창동 S 클럽으로 들이닥쳐 종업원들을 상대로 다시 보복 폭행을 가했다. 이때 피해자 중 한 명이 112로 신고했다. 정확히 9일 새벽 0시 7분이었다.
당시 전화로 신고한 피해자는 “어제 가게 회식이 있었습니다. 근데 거기서 사소하게 싸움이 붙었는데, 근데 그 맞은 상대방이 한화그룹 회장 둘째아들인데, 그래 가지고 그래 갖구선 저희 직원들을 데리고 가서 지금 쇠파이프로 막 두드려 패고 그랬어요. 지금”이라고 급박하게 상황을 설명했다(이 통화 기록은 한나라당 이상배 의원이 5월 21일 경찰청에 정식으로 자료제출을 요구해 뒤늦게 밝혀진 것이다).
당시 신고 접수는 서울지방경찰청 ‘112상황실’에서 이뤄졌다. 서울경찰청 상황실은 사태의 심각성을 확인하고 곧바로 경비전화로 “손님들이 직원들에게 폭행을 매우 심하게 했다. 가해자가 한화그룹 회장 자녀”라는 내용을 직접 관할인 남대문경찰서와 태평로지구대로 전달했다(이 의원 측에 따르면 “통상적으로 일반 신고 접수는 컴퓨터와 무선지령만으로 대신하는 것에 비해 직접 유선의 경비전화를 이용한 것은 그만큼 사안의 중대성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신고된 지 5분 만인 0시 12분경 태평로지구대 소속 경찰 2명이 현장에 도착했다. 이번 사건에 임했던 경찰의 공식적인 첫 개입이었다. 하지만 당시 경찰은 “종업원들끼리 사소한 시비가 있었다”는 업주의 말에 더 이상 현장 수색이나 조사 없이 신고자만 확인하고 25분 만에 그냥 철수했다. 당시 김 회장 일행은 여전히 101호에 머물러 있었고, 경찰이 철수한 다음에서야 이들도 모두 돌아갔다.
보복폭행 사건의 소문은 유흥업소 종사자들의 입을 통해서 사건 직후부터 급속도로 확산됐다. 광역수사대(광수대) 강력2팀 소속 A 경위의 휴대폰이 울린 것도 9일이었다. 북창동파출소에서 근무한 경력으로 현지 인맥의 폭이 넓은 오 경위는 곧바로 피해자들과 접촉하며 사태의 진상을 확인해나가기 시작했다.
사건 발생 나흘 만인 12일 최기문 전 경찰청장이 남대문경찰서 장희곤 서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 전 청장은 한화의 고문을 맡고 있었다. 장 서장은 최 전 청장의 경북사대부고 동문 후배이면서 2003년 3월 최 전 청장이 인사청문회를 준비할 당시 준비팀장을 맡는 등 측근으로 통했다. 최 전 청장은 이 통화에서 한화 폭행 사건에 대한 수사 여부를 물었다. 이미 사건 당일 경찰이 출동한 것을 알고 현장을 떠난 김 회장 일행이 회사 고문인 최 전 청장에게 확인을 요구한 것이다. 남대문서 역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 최기문 전 경찰청장(왼쪽), 이택순 경찰청장 | ||
남대문서의 하달을 받은 태평로지구대 측도 어느 정도 상황 파악을 마쳤다. 김 회장이 개입된 폭행 사건이라는 제보 신고가 사실로 확인됐다.
3월 15일 한기민 서울청 형사과장은 홍영기 서울청장에게 이 사건에 대한 광수대의 내사 사실을 구두로 보고했다. 이튿날 서울청 김학배 수사부장이 광수대 측에 내사 진행상황을 물었다. 17일 김 부장은 한 과장에게 “이번 사건을 남대문서로 하달했으면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광수대 B 팀장은 A 경위에게 첩보 보고서 작성을 지시했고, A 경위는 22일 첩보 보고서를 작성한 후 한 과장에게 정식 보고했다.
23일 서울경찰청 간부들이 모여서 대책회의가 이뤄졌다. 여기서 결국 남대문서로의 이첩이 결정됐다. 한 과장이 “남대문서로 이첩하면 광수대의 반발이 심할 것”을 우려했지만 윗선의 뜻은 완고했다. 한 과장은 남대문서로의 이첩을 통보했다.
광수대 측은 강력히 반발했다. 내부에서는 “(한화 측에서) 벌써 손을 쓴 것 아니냐”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사건을 넘겨받은 남대문서는 이미 상황을 거의 다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북창동 현지에서도 “당장 경찰이 무슨 일 낼 것처럼 난리를 치더니 결국 재벌 회장이 세긴 세구나”라는 자조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북창동 현지를 떠돌던 소문이 울타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이미 소위 ‘찌라시’라고 불리는 정보지를 통해 내용이 유출됐고, 일부 언론사에서 취재에 나서기 시작했다.
언론사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포착되면서 남대문서는 4월 10일경부터 움직이기 시작했다. 같은 달 24일 한 언론을 통해 사건이 본격적으로 세간에 알려지자 갑자기 남대문서는 요동을 쳤다. 경찰은 뒤늦게 ‘수사본부를 설치한다’, ‘광수대를 참여시킨다’, ‘김 회장을 소환 조사한다’는 등 난리법석을 떨기 시작했다.
이상의 내용은 <일요신문>이 광수대 측 관계자의 증언, 북창동 현지 관계자들의 증언과 이상배 의원실 자료 및 일부 언론사의 자료들을 토대로 종합·재구성한 경찰 내부의 움직임이다. 5월 25일 경찰청이 발표한 감찰 결과와 거의 일맥상통하지만 다소 차이점도 발견된다.
경찰청 감찰실에 따르면 “태평로지구대 측이 3월 13일부터 15일까지 자체적으로 추가 조사를 해서 사태를 파악했으나 그 결과를 남대문서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책임을 물어 지구대장은 직위해제 및 중징계를 당했다. 재벌 회장과 관련된 폭행 사건을 확인한 일개 지구대장이 그 엄청난 사실을 근무소홀로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믿기 어렵다. 경찰청 주변에선 이미 당시 남대문서에서 자체적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또 이 과정에서 광수대 측의 강도 높은 내사 사실을 확인했을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