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이 11일 선수단 미팅에서 팀 해체 결정을 선수들에게 알리고 있다. 원 안은 김 감독이 초대 감독으로 선임됐을 당시 모습. 연합뉴스
지난 7월 말,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한 유명 야구인이 기자에게 엄청난 소식을 귀띔해준 적이 있었다. 고양 원더스가 창단시 3년 동안 운영하겠다고 약속했는데, 그 3년의 마지막이 올 시즌이고 원더스의 허민 구단주가 더 이상 구단 운영이 어렵다고 판단해 팀을 해체하기로 결정했다는 내용이었다. 순간 ‘설마’ 했다. 22명의 원더스 선수들이 이미 프로 유니폼을 입었고, 외국인 선수들까지 영입하며 활발한 운영을 보였던 원더스가 해체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야구인은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며 원더스가 해체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첫 번째는 원더스가 창단 작업을 준비하며 KBO와 주고받은 ‘약속’이 실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약속’은 2군리그인 퓨처스리그에 원더스가 진입하는 부분이다. 그동안 원더스는 KBO에 약속 이행을 요구했고, KBO는 기존의 2군을 운영하는 프로팀들의 반발로 원더스를 퓨처스리그로 진입시키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 난색을 표했다.
두 번째는 허민 구단주에 대한 야구계의 무시와 ‘별종’ 취급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3년간 40억 원씩 총 120억 원을 개인 돈으로 지출한 허 구단주를 향한 야구계의 시선은 냉랭함, 그 자체였다는 것. 그로 인해 허 구단주가 표현 못할 좌절과 비애감을 맛봤다는 게 그 야구인의 설명이었다.
2012년 12월 26일 고양 원더스 기자간담회에서 하송 단장이 KBO로부터 온 공문을 보여주며 KBO의 ‘퓨처스리그 정식 등록’ 약속 불이행을 문제삼고 있다. 연합뉴스
세 번째는 김성근 감독에 대한 기존 프로 구단주들의 풀리지 않는 앙금이라고 지적했다. 그동안 프로팀을 맡다가 구단과의 마찰로 물러났던 이력들이 각인돼 있었고, 어느 구단에서는 원더스에 김 감독이 존재하는 한 퓨처스리그 진입은 어렵다고 못 박았다는 일화도 전했다.
퓨처스리그 번외경기에 참가해 기존 팀들과 경쟁을 벌인 원더스는 2012년 20승 7무 21패(0.488), 2013년 27승 6무 15패(0.643), 2014년 43승 12무 25패(0.632)의 성적을 기록했다. 첫 해부터 5할에 육박하는 승률을 보이며 기존 구단들을 공격했다. 항간에는 다른 팀에는 져도 원더스에 지는 팀은 구단으로부터 심한 질책을 들었다는 후문이다.
2011년 9월 15일 KBO·고양시와 MOU 체결 당시 모습. 오른쪽이 허민 구단주. 사진제공=고양 원더스
총 22명의 프로선수를 배출한 고양 원더스는 지난 8월 신인 드래프트에서 LG에 지명된 포수 정규식을 마지막으로 선수 육성이라는 프로젝트를 마감했다. 2012년 7월에 LG 유니폼을 입은 이희성을 시작으로 꾸준히 쏟아져 나온 선수들은 저마다의 무기로 프로야구에 도전했다. 원더스가 배출한 선수들 중 황목치승(LG), 안태영(넥센) 등은 각자 팀 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키워나고 있는 중이다.
이렇듯 고양 원더스는 프로팀에서 방출당하거나 갈 곳 없는 선수들에게 기회의 ‘장’을 제공하며 ‘사관학교’의 역할에 충실했었다. 김성근 감독은 팀의 해체를 지켜보는 심경을 비통함으로 묘사했다. 고양 원더스의 해체 소식이 전해진 날, 김성근 감독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제일 마음이 아픈 건 잘려도 나 혼자 잘려야 하는데, 80여 명의 선수들, 코치들, 구단 직원들이 모두 직장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워낙 허민 구단주의 결심이 굳건해 설득할 수 없었다. 어느 누구도 허 구단주를 비난할 수 없다. 내가 그 입장이 됐어도 팀을 해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지난 3년 동안 꾹 참고 구단을 운영해준 허 구단주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고양 원더스를 응원하는 팬들.
김 감독은 자신이 땀과 노력을 들여 키워온 원더스 선수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감추지 않았다.
“갑자기 ‘집’을 잃은 선수들의 앞날이 제일 걱정이다. 야구에 대한 꿈을 버리지 말고, 도전을 이어나가길 바라지만 11월이 지난 이후에는 연습할 야구장도 사라진다. 프로에 직행할 수 있는 구멍은 아주 좁고 한정돼 있다. 아마추어 야구선수들을 받아줄 만한 실업팀이나 독립팀이 없는 한, 앞으로 한국 야구는 성장을 멈출 수밖에 없다. 그동안 고양 원더스는 그런 면에서 어느 정도의 역할을 했다고 본다. 그런데 KBO와 야구계가 원더스를 외면했다. 그들이 당장의 규정과 규율에 얽매이기보다는 좀 더 먼 그림을 그려주길 바랐지만 결과는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한편 일부 야구인들은 원더스의 도전이 시작부터 무모했다고 쓴소리를 날렸다. 허민 구단주의 야구에 대한 무한 애정이 비현실적인 독립구단 운영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시범경기를 준비하는 선수들.
독립구단임에도 고액의 연봉을 받는 감독과 연봉 1000만~2000만 원을 받는 기존 선수들에 비해 몸값이 높은 외국인 선수를 무려 5명이나 영입하며 통 큰 투자를 했고, 해외 전지훈련을 실시하며 해마다 30억~40억 원의 운영비를 지출한 부분은 독립구단의 취지와는 다른 형태라는 지적이다. 원더스의 ‘부유한’ 구단 운영을 보며 일부 기업이나 지역에서 아예 독립구단 창단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는 내용도 거론된다.
그러나 허구연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허민 구단주의 야구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폄하시켜선 안 된다고 본다”면서 “돈이 많은 부자도 120억 원을 지출하며 수익이 없는 야구단을 운영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이번 일을 통해 야구계 전체가 반성의 기회를 삼길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김성근 감독 프로팀 가나 “나보단 자식들 ‘둥지’가 더 급해” 고양 원더스 해체 소식과 함께 떠오른 뜨거운 관심은 김성근 감독의 거취였다. 해마다 프로야구 감독 영순위 후보로 꼽히고 있고, 실제 올 시즌 이후 김 감독을 ‘모시려는’ 팀이 있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김 감독의 향후 행보에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김 감독은 자신도, 선수들도, 백지에서 다시 시작한다고 말했다. 야구계에서 풍문처럼 나돌고 있는 프로 감독으로의 복귀도 헛소문일 뿐 지금까지 프로팀과 접촉한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고 못 박았다. “그 소문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전까지만 해도 한화 LG 등으로부터 감독직 제안을 받은 적이 있지만 올해는 그렇지 않았다. 난 허민 구단주가 원더스를 계속 운영한다면 이 팀의 종신 감독을 제안하기도 했었다. 만약 프로에 갈 생각이었다면 종신직을 거론할 수 있었겠나. 지금은 내 거취보다 남은 선수들의 거취를 정해주는 게 급선무이다. 프로에 더 많은 선수를 보내야 하고, 이들이 뛸 수 있는 야구팀을 찾아줘야 한다. 분명한 건, 난 어디서든 야구를 계속한다는 사실이다. 그 팀이 프로이든 아마추어 팀이든 난 내년에도 현장에 있을 것이다.”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