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의원이 ‘이상돈 내정 말바꾸기 논란’으로 리더십에 큰 상처를 입었다. 친노 진영 내부에서는 ‘안희정 대안론’이 떠오르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2012년 11월 19일 당시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가 차기정부 지방분권 정책토론회에서 안희정 충남도지사와 이야기하는 모습. 연합뉴스
“당내에서 문재인 의원의 ‘비대위원장 카드’가 추석을 전후해 급부상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어찌됐건 간에 현재의 위기 상황을 일관되게 뚫고 나갈 추진력 면에서 야권 내 최다계파의 좌장인 문 의원을 대체할 만한 카드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친노진영은 물론 그 밖의 진영에서도 점차 수긍했던 과정이었다. 하지만 이상돈 중앙대 교수의 비대위원장 내정과 관련한 그의 말 바꾸기 행보에 이 카드 자체가 한마디로 쑥 들어갔다.”
한 새정치연합 당직자의 말이다. 그는 추석 이전 ‘문재인 비대위원장 카드’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바 있었다. 그런데 불과 일주일 뒤 그의 입장은 백팔십도로 달라졌다. 그는 점점 격앙된 반응을 보이며 말을 이어갔다.
“현재로서 이러한 논란에 대한 문 의원의 해명은 변명과 거짓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명색이 야권의 가장 유력한 대권후보다. 계파를 떠나 당내에서 분명히 해줘야할 역할과 몫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전혀 책임지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이번 일로 분명한 한계를 보인 셈이다.”
지난 12일 박영선 위원장의 이상돈 교수 내정 직후 문재인 의원 측은 사실상 반대의 뜻을 밝혔다. 이 교수 내정 직후 정청래 의원을 비롯해 친노 강경파와 초재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극심한 반대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에 앞서 박 위원장은 문 의원에 전화통화는 물론 직접 만나 이 교수 내정을 두고 동의 과정을 거친 것으로 드러났다. 문 의원 측은 이러한 논란에 대해 ‘외연확장에 도움이 되는 분이 나서는 것은 고마운 일’이라 표현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와 함께 ‘당내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히 덧붙였다는 해명을 내놨다. 그런가하면 13일 이상돈 교수에 대해 사과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문 의원 측은 이를 두고 ‘동의’로 해석될 여지가 없다고 해명했지만, 객관적인 입장에서 봤을 때 ‘당내 의견 수렴’이란 조건만 갖춰진다면, 충분히 ‘동의 한다’는 의미로 비칠 수 있다.
지난 17일 국회에서 만난 박영선 위원장 측근도 “문재인 의원이 (이상돈 교수의 내정에) 많은 도움을 준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밝혔다. 에둘러 한 표현이지만, 문 의원이 단순한 동의 수준을 넘어 적극적인 역할까지 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는 지금까지 늘 문제로 지적됐던 문 의원의 모호성이 이번에도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고 볼 수 있다. 아니, 이번엔 더 나아가 ‘말 바꾸기’와 ‘거짓 해명’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이는 앞서 당직자가 밝혔듯 진영 내에서도 적잖은 파동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문 의원의 엇박자 행보에 이 교수 내정을 두고 강경모드로 대응했던 강경파 진영 내부에서도 심할 경우 ‘재신임’을 요구할 수 있는 상황이다.
9월 18일 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원장 추천단 모임에 참석한 문재인 의원이 박영선 원내대표 뒤를 지나가고 있다. 박은숙 기자
당장 내년 1월로 예정돼 있는 당권부터 문제다. 문 의원은 진영 내 마땅한 후보자가 없는 관계로 대권에 앞서 당권 도전에 나설 것이 가시화되던 상황이었다. 차기 당권에 도전하는 타 진영 후보들은 대체로 ‘문재인 의원이 당권 도전에 나설 경우, 쉽지 않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그런데 이젠 ‘문재인 의원과도 해볼 만하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비노진영의 한 당권 후보 측 인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막상 문 의원이 당권 레이스에 나선다면 우리는 어렵다는 전망이었다. 내심 우리 입장에선 ‘집단지도체제(현재는 단일성지도체제)’ 룰 변경 후 최고위원만 해도 만족한다는 생각이었다”라며 “그런데 이번 논란을 계기로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친노진영 내부에서도 분열의 조짐이 확산됨에 따라 이제 아무도 모르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희망(?) 섞인 전망을 내놨다.
이미 상처를 입을 대로 입은 수장을 계속해서 따라간다는 것 자체가 친노진영 내부에서도 여간 부담스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진영 내부에서도 새로운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앞서의 평론가는 “이미 강력한 리더십이 세력을 형성하는 시대는 끝났다. 현재 야권의 상황을 놓고 보면 더욱 그렇다. 이제는 세력이 리더십을 규정한다”며 “친노진영 역시 마찬가지다. 6·4 지방선거 이후 본격적으로 진영 내부에서 ‘당권 문재인-대권 안희정’이라는 카드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 흐름이 이번 기회에 더욱 급물살을 탈 수도 있다. 진영의 분화 이전에 안희정이라는 대안이 점점 확실해진다면야 카드 자체를 바꿀 수도 있는 노릇”이라고 지적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