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사의 화보 사진(왼쪽)과 진관희가 찍은 양영청의 노출 사진.
‘Kira’라는 닉네임 뒤에 숨어서 끊임없이 사진을 올리는 범인을 잡는 건 쉽지 않았다. 대신 무고한 사람들이 잡혀 들어가기 시작했다. 2008년 1월 29일 장백지의 사진이 유출된 후 본격적으로 수사를 벌이던 경찰은 이틀 만에 종역천이라는 남자를 잡아들였다. 직업이 없는 29세의 남자였는데, 그의 컴퓨터에 12장의 사진이 발견되었고 혹시 업로더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은 것. 여기에 경찰은 그가 진관희와 여배우를 협박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마저 했다. 하지만 별 다른 혐의가 없었고, 보름 만에 풀려났다. 중요한 건 종역천이 체포되자 경찰서 앞에 3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그의 석방을 요구했다는 것. 그들은 경찰의 권력 남용을 비난하고 경찰서장의 사임을 요구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필요 이상의 공포심을 조장하지 말라는 그들의 외침에, 경찰은 적절한 법 집행이었다는 주장으로 맞섰지만 여론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2월 2일엔 여섯 명을 한꺼번에 잡아들였지만 그들은 벌금을 내고 나갔다. 2월 4일엔 23세의 컴퓨터 수리 기사인 사가준이라는 남자가 범죄 목적으로 컴퓨터를 사용했다는 죄목으로 잡혔지만 벌금을 내고 나갔다. 이후 수백 장의 사진이 더 공개되었고, 2월 10일엔 24세의 물류 회사 직원이 체포되었다. 그는 지중해 동부의 섬인 키프로스에 서버가 있는 사이트를 통해 수백 장의 사진이 든 압축 파일을 업로딩한 후 ‘홍콩 디스커션 포럼’ 사이트에 링크시켰다는 죄였다. 그러나 진짜 범인은 잡지 못했다.
진관희로 인해 노출 사진이 유출된 여자 연예인들은 큰 후유증을 겪었다. 위 사진 왼쪽부터 용조아, 진문원, 진사혜.
한편 중국 본토에선 ‘바이두’ 같은 포털 사이트의 사진 검열이 시작되었지만, 채팅 사이트를 통해 사진은 독버섯처럼 번졌다. 드디어 2월 20일에 공권력이 발동되었지만, 광둥 지역을 중심으로 사진을 담은 CD롬이 불티나게 팔렸다. 10여 명이 체포되었지만,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였다. 대만에선 만약 CD롬을 팔다 걸리면 징역 2년형에 처한다고 엄포를 놓았고, 블로그에 사진을 올렸다는 이유만으로 체포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어느덧 사건은 네티즌의 자유와 외설죄에 대한 공권력 적용이라는 대립 양상으로 번져가고 있었고, 이 와중에 진관희는 조용히 밴쿠버로 도망갔다. 그는 법원의 재조사를 위한 소환 명령을 거부했고, 결국 네 명의 변호사와 치안판사가 밴쿠버로 파견되었다. 하지만 소득은 없었고, 진관희는 기자회견 때 이야기를 반복했다. 한편 홍콩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 삼합회는, 순식간에 질서를 교란시킨 진관희를 응징하기로 결정했고, 진관희의 손목을 잘라 오면 50만 홍콩달러(약 670만 원)를 주겠다고 현상금을 걸었다.
가수 양우은도 누드 사진 유출 피해를 입었다.
장백지와 남편 사정봉의 관계는 한동안 유지되었고, 사정봉은 변함없는 사랑과 지지를 보내는 듯 보였다. 장백지도 2010년에 컴백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2011년에 이혼했고, 이후 서로를 비난하는 안 좋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종흔동이 소속된 그룹 트윈스는 콘서트를 연기하고 한동안 해체되었다. 잠적을 끝내고 1년 후에 돌아왔지만, 그동안 끊임없이 자살설이 나돌았고 홀로 남은 멤버 채탁연은 1년 내내 파트너가 살아 있음을 강변해야 했다. 돌아온 후 한 인터뷰에서 “진관희를 사랑했기에, 사진 찍는 걸 거부하면 그를 잃을까 두려워서 허락했다”며 과거에 대해 담담히 털어놓기도 했다. 한편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무대에 성룡, 유덕화 등과 함께 서기로 했던 종흔동과 사정봉은 스스로 물러나야 했다. 2006년에 은퇴한 상태였지만 진문원은 파혼을 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이외에도 사진 속에 등장했던 연예인들은 1~2년의 공백을 가져야 했고, 컴백 후에도 예전 같은 위치를 누리진 못했다.
무엇보다도 달라진 건 팬들의 반응이었다. 이것은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만의 일은 아니었다. 홍콩 연예인 전반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아졌고, 사건과 전혀 상관없는 연예인들이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진관희처럼 캐나다 출신인 배우 탕영영은 길거리에서 머리를 맞기도 했다. 뚜렷한 범인은 찾지 못한 채 수많은 피해자를 낳은 진관희 사건. 이 일은 홍콩 엔터테인먼트 최악의 흑역사로 기록되고 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