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월 당대표에 선출된 뒤 당원들에게 인사하는 박근혜 대표. | ||
최근의 정국을 보면 정치권에서는 박근혜 대표만이 거의 유일한 승리자처럼 보인다. 박 대표는 추구하는 일마다 대단한 성과를 보이고 있고, 국민들의 성원도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이번 재보선 선거유세 기간동안에도 박 대표가 가는 길마다 주민들이 몰려와 성황을 이루었다. 썰렁했던 선거분위기는 박 대표에겐 예외였다. 실제 영남권 일부 지역은 박 대표가 한 번 다녀간이후 한나라당 후보가 승리하는 것으로 뒤집혔다는 보고가 많았다.
이같은 박근혜 대표에게 위기란 없을까.
정치권에선 재보선에 승리하고, 다음달 대표 재선출을 앞둔 지금 시점이 박 대표에게 상당한 위기이자 시련의 시기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박 대표의 지도력이 본격적으로 검증되는 시기이며, 안팎의 도전에 노출되면서 가해질 직간접적 시련을 어떻게 극복해갈 것인 주목된다는 것이다.
과거 이회창 전 총재 시절 한나라당도 재보선 선거 때마다 승리를 이루었다.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에서도 무조건 승리였다. 한나라당은 선거마다 승리를 낚아내며 환호했고, 그 때마다 이 전 총재는 마치 대통령에 당선된 듯한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그것이 함정인 줄도 모른채 그렇게 즐거워했었다.
한나라당은 지난 총선 전까지만 해도 존폐의 우려감 속에서 절망적이었다. 이때 홀연히 박 대표가 나타나 한나라당을 열린우리당과 거의 대등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역할을 해주었다. 하지만 총선 직후까지만 해도 워낙 치솟은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기세에 눌려 속으로 기쁨을 삼켰다. 한나라당은 이번 재보선 승리로 겉으로 드러내고 웃게 된 것이다.
한나라당 내에선 이번 지방선거 재보선이 대선 패배와 차떼기 등 그동안 짓눌러온 각종 악몽의 수렁에서 한나라당을 진정으로 건져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는 역설적으로 한나라당이 과거의 잘나갔던 추억속으로 빠져들어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 한나라당에선 언제 대선에서 졌느냐는 망각증세마저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한나라당이 본격적으로 변신노력을 보이지 않음에 따라 나오는 결과다. 박 대표는 총선 때 여러 번 “죄송하다. 총선 이후 대대적으로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한나라당은 박 대표의 그 약속으로 총선을 치러낼수 있었다.
박 대표는 총선 이후 2개월이 흘렀음에도 당의 변화를 제대로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틈만 나면 보수의 이미지에 기대어 당을 유지하려 하고 있으며, 그냥 현 상태에 안주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획기적 대북정책이나 근본적인 환골탈태를 바라던 국민들은 그냥 박 대표의 개인기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박 대표는 재보선기간동안 유세를 통해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비판에 상당시간을 쏟았다. 지난 총선 때 “무조건 잘못했습니다”고 말하던 분위기와는 사뭇 달라졌다. 한나라당이 다시 노 대통령의 실정이나 잘못에 기대어 당을 연명하려고 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높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전 대표도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 모두 총선 이후 민생을 위해 일한 게 뭐 있느냐”고 반문했다.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열린우리당 못지 않게 박 대표도 현실속에서 무기력증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 지난 2001년 한 행사장에서 과거와 미래의 한나라당 대표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이회창 전 대표, 박근혜 대표, 최병렬 전 대표. | ||
한나라당이 똘똘 뭉쳐 변화된 모습을 보여야 할 판에 의원들은 저마다 자기 이해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은 시대의 변화를 선도할 비전도, 미래의 가능성을 열어둘만한 역동성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이 모든 지적과 비판이 박 대표에게 고스란히 쏟아질 수밖에 없다. 박 대표는 승리의 기쁨에 도취할 여유도 잠시, 한나라당의 변화를 책임져야 할 의무에 짓눌리고 있는 셈이다.
시간이 갈수록 박 대표의 실체에 대한 논란도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박 대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을 찬양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며, 보수적 색채를 덧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노 대통령 및 열린우리당과 차별화하려다 보면 보수의 색깔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이는 박 대표의 행보가 점점 더 위축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박 대표는 그동안 거의 개인플레이에 의존해서 정치활동을 해왔다. 유연한 태도 표명이 가능했다. 지금은 거대 조직의 대표이다. 박 대표는 개인생각과 조직의견이 다를 때 조직의견을 따르는 편이다. 오랫동안 몸에 배인 조직감이다. 선거유세 때 실무자들이 짜놓은 빽빽한 유세일정을 그냥 묵묵히 소화해낸다. 일부 유세갈 필요가 없는 지역에도 실무자들의 기안대로 유세를 갔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박 대표가 한나라당 전체 의원들의 사고를 바꾸어 새롭게 만들든지, 아니면 의원들의 분위기로 휩쓸려 들어가든지 점점 더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
박 대표는 7월 초 전당대회에서 대표로 재선출되면 고독한 결단의 상황에 놓일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박 대표 주변에는 아첨하는 무리들이 포진, 당의 변화를 가로막는다는 지적도 있다.
박 대표가 대표로 재선출되면 한나라당의 유력한 차기 주자로 부상된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는 앞으로 3년간 열린우리당의 표적공세를 혼자 견뎌내야 한다는 뜻인 만큼 박 대표는 벌판에 선 형국이다.
놀라운 절제력탓에 ‘얼음공주’란 별명을 가진 박 대표가 어떤 절제력과 지도력으로 다음 국면을 헤쳐나갈지 주목받고있다.
이필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