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석원 전 회장이 집행유예 청탁 대가로 변 씨에게 3억을 건네 줬다고 진술함에 따라 큰 파장이 예상된다. | ||
일단 검찰 수사에서는 신 씨와 변 전 실장과의 긴밀한 관계가 드러난 것을 계기로 신 씨의 동국대 교수 임용과 미술관 후원금 유치, 동국대 예산 특혜 배정 과정에 변 전 실장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하거나 두 사람이 공모한 정황들이 상당 부분 발견됐다.
개별 혐의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 관계에 대해서는 유·무죄를 가리기 애매모호한 부분이 적잖으나 변 전 실장이 신 씨 사건에 연루됐다는 전체의 틀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는 게 검찰 주변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이제 법원 재판 과정에서는 변 전 실장의 영향력이 과연 어디에까지 미쳤는지가 최대 쟁점이 될 전망이다. 그런 점에서 변 전 실장과 신 씨에 대한 추가 기소 혐의 즉 변 전 실장과 신 씨가 김석원 전 쌍용양회 명예회장의 집행유예 및 사면 청탁 대가로 각각 3억 원과 2000만 원을 받았다는 혐의는 다시 한 번 짚어볼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
김 전 회장은 지난 2005년 회사 돈을 횡령한 혐의(특경가법상 배임과 횡령)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올해 2월 특별사면됐다. 결과만 놓고 보자면 ‘청탁’이 성공한 셈이다.
그렇다면 변 전 실장이 직무 범위를 넘어서 사법부에까지 직접 포괄적인 영향력을 행사했거나 제3자가 이 과정에 개입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만에 하나 변 전 실장이나 제3자의 직간접적인 개입이나 영향력 행사가 있었다면 다른 어떤 혐의보다 큰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는 중죄에 해당된다.
하지만 검찰은 돈을 석방 청탁 명목 등으로 전달했다는 김 전 회장 진술 외에 다른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다소 소극적 결론만 낸 채 판단의 칼자루를 법원으로 넘겼다. 게다가 의혹의 중심인 변 전 실장이 금품 수수에 대해 강하게 부인하고 있어 ‘3억 원의 미스터리’는 쉽게 풀리지 않을 전망이다. 김 전 회장과 변 전 실장 사이에 오고 간 3억 원 뒤에 가려진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변 전 실장이 김 전 회장으로부터 3억 원을 받은 혐의를 검찰이 밝혀 추가 기소하기까지는 김 전 회장과 쌍용 측 관계자들의 진술이 결정적이었다. 검찰은 지난 10월 김 전 회장의 부인인 박문순 성곡미술관장의 자택과 쌍용양회 위장 계열사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김 전 회장이 금품을 건넨 정황이 담긴 기록을 발견했다.
이를 토대로 검찰이 김 전 회장을 집중 추궁하자 김 전 회장과 박 관장 등이 2005년 3월과 5월 사이 10만 원짜리 헌 수표 등 3억 원을 서류 봉투에 넣어 변 전 실장(당시 기획예산처 장관)에게 전달한 정황을 자세히 진술한 것.
검찰 측은 진술의 사실 관계 및 변 전 실장 주변 관련 계좌 등을 확인한 결과 2005년 3월 김 전 회장이 집행유예로 풀려나기 직전 1억 원, 석방 후 2억 원이 건너간 것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김 전 회장은 지난 2004년 11월 기소됐다. 그리고 이듬해 2월 법원의 정기 인사로 새롭게 꾸며진 재판부는 인사 한 달여 만에 김 전 회장이 범행 후 쌍용양회의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한 부분을 정상 참작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김 전 회장은 지난 2004년 12월 재판 기간 중 보석을 신청했는데 법원으로부터 3개월여 간 받아들여지지 않았었다.
검찰의 혐의대로라면 김 전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변 전 실장이 법원 관계자 등에게 실제 석방 청탁을 했는지 여부가 입증돼야 할 부분. 검찰 조사에서 ‘김 전 회장으로부터 돈을 한 푼도 받지 않았다’고 혐의를 부인해온 변 전 실장은 청탁이 아니라 단지 재판 상황을 몇 가지 알려준 부분만을 인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형식적인 수준에서 재판 정보를 신 씨를 통해 김 전 회장 측에 귀띔해줬다는 것.
▲ 김석원 | ||
재판 종결 시점이나 집행 유예 선고 여부는 사실상 재판부 관계자를 직간접적으로 거치지 않으면 확인이 불가능한 사항이다. 신 씨의 진술 내용대로라면 변 전 실장이 법원 관계자 누군가와 유선으로 혹은 여타의 방법으로 접촉해 재판 진행 상황을 들었을 것이라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검찰은 이동통신사의 통신기록 보관 연수 규정이 1년으로 묶여 있어 전화 통화 여부를 알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재판부 청탁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고 서둘러 정리했다.
아울러 검찰은 변 전 실장이 누구한테 연락을 했는지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당시 재판에 참여했던 관계자들을 무턱대고 부를 수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집행유예 청탁 명목으로 변 전 실장이 3억 원을 받은 사실은 확인했지만 당시 재판부에 실제로 청탁했을 가능성 등에 대한 ‘확대 해석’을 경계하는 다소 애매모호한 자세를 검찰이 취하고 있는 것.
달리 말하자면 ‘청탁만 있고 로비는 없었다’는 수사 결과이기에 아이러니한 면도 없지 않다. 특히 검찰의 청탁 의혹 관련 수사 결과는 변 전 실장이 유선 접촉 이외에 제3자 등을 통하거나 예산처 장관으로서 다른 방식으로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내린 결론이라는 점에서 의구심은 여전히 남는다.
올해 2월 김 전 회장의 특별 사면 당시 신 씨가 박 관장으로부터 오피스텔 보증금 2000만 원을 받았다고 검찰이 추가 기소한 부분에도 의문은 남는다. 분명 청와대 정책실장으로서 특별사면에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할 위치에 있던 변 전 실장 대신 신 씨만 돈을 받았다는 점 때문이다.
특히 김 전 회장은 검찰의 과거 추징금을 완납하지 않은 상태에서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됐다. 때문에 사면 당시 변 전 실장의 역할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김 전 회장은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부터 비자금 200억 원을 위탁받아 관리해온 사실이 드러나 지난 2001년 대법원으로부터 약 298억(원금과 이자 합한 금액) 원을 추징액으로 납부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최근까지 상당액을 납부하지 못한 상태다.
변 전 실장은 일단 김 전 회장에게서 청탁의 대가로 돈을 받았다는 혐의를 완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단지 김 전 회장이 사면된 뒤 공개된 레스토랑에서 만나 식사만 했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과연 변 전 실장의 주장대로 청탁 로비의 실체는 없는 것일까, 아니면 변 전 실장이 아직도 밝힐 수 없는 청탁에 얽힌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석방과 사면을 둘러싼 3억 원의 행방과 외압 의혹. 법원 재판 과정에서 그 미스터리가 풀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유재영 기자 elegan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