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1일 노무현 대통령(오른쪽)이 청와대에서 열린 언론사 경제부장단과의 만찬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날 도전적인 질문에도 거리낌 없이 답변했다고 한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참석자들의 따르면 노 대통령은 탄핵소추가 진행되는 동안 상당한 경제공부를 한듯 각종 이슈들과 정책현안들에 대한 경제부장들의 도전적 질문에 아무런 거리낌과 막힘이 없이 물흐르듯 답변을 이어갔다고 한다. 이날 경제부장단과의 일문일답은 일체의 사전 조율 없이 즉석에서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노무현-경제부당단 대화록’의 주요대목을 가급적 원래의 표현 그대로 공개한다.
첫번째 개혁 대상은 바로 나
질문 : 시중에서 삼성 언론 사법 서울대 강남 등이 노무현 대통령과 여권의 생각하는 5대 개혁대상이라고 합니다.
답변 : 5개 개혁대상이라… 정말로 중요한 얘기입니다. 이들이 뭉치면 개혁이 하나도 안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들 세력이 연대하면 모든 개혁을 흔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럴 수 있다는 설정 자체가 저 노무현이와 참여정부를 어렵게 하는 것입니다. … 제 생각으로는 개혁 중에 첫번째 개혁이 저(에 대한 개혁)와 정치개혁입니다. 나부터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다음에 정부가 혁신돼야 합니다. … 특권과 특혜의 고리가 사라져야 합니다. 반칙과 예외의 고리가 끊겨야 합니다.
경제비상대책강구할 때 아니다
질문 : 청와대 만찬에 오기 위해 택시를 탔더니 기사 얘기가 ‘너무 어렵다’고 합니다. 작년에 12시간 일하고 올해는 16시간 일하는데 벌이는 작년만 못하다고 합니다.
답변 : 체감경기가 악화된 건 사실입니다. 위기를 모르는 게 아닙니다. 단지 일반적인 정책을 뒤집는 비상대책을 강구할 정도는 아니라는 겁니다. …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이 경제를 어렵게 만든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도 나는 단호히 부정합니다. 지금 경제가 어려운 것은 분배론 때문이 아닙니다. 실은 이 정부가 새로운 분배대책을 내놓은 게 없습니다. … 건강한 경제를 만들기 위해 혁신주도형 경제로 가겠습니다. 중소기업을 확실히 지원하고 대학의 경쟁력도 키우겠습니다. 직업교육도 철저히 시키겠습니다. 경제문제는 … 시장을 동의보감 처방 대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의 효율성을 높이는 대책을 만들고 지역간 균형발전을 꾀하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 찾는 게 가능합니다.
노무현 정권이 뭐가 심합니까
질문 : 행정수도 이전이냐 천도냐 해서 말이 많은데, 국민여론 수렴 절차를 밟을 생각은 없습니까.
답변 : 천도라는 뉘앙스가 좀 그렇습니다. 한마디로 말장난 아닌가요. 왕조시대엔 행정기능이 통치의 전부였습니다. 통치권력 갖는 곳이 모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현대는 달라졌습니다. 행정과 경제활동이 분리돼 있습니다. 뉴욕과 워싱턴을 보세요. 아무런 문제가 없죠. … 권력이 이동됐습니다. 경제계로 권력이 이동중입니다. 정권 교체 초기에 재계 목소리로 (개혁이) 변질된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재계가 정색하고 나오면 정책이 흔들립니다. … 지금보다 더 험한 시대에도 기업은 살아왔습니다. 역대 정권의 경험을 보세요. 부정부패로 구속되고 재산 다 빼앗기고 그래도 살았습니다. 노무현 정권이 뭐가 심합니까. … (죄가 있다면) 신용불량 1년만에 해결하지 못한 게 죄입니다. 소비침체 1년만에 단방에 해결하지 못한 게 죄입니다. … 행정수도 이전이 옳은 선택입니다. 국민투표요? 정치권이 옳다고 합의해 오면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난 탄핵을 생각하면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집니다(※재신임 국민투표 발언이 결국 국회 탄핵안 가결사태까지 간 것을 두고 하는 말임). 내가 국민투표하자는 얘기 못합니다. 국회가 만들어오면 모르지만, 난 탄핵 땜에 못해요.
분양원가 총선공약 잘못됐다
질문 : 아파트분양원가 공개할 용의 없습니까.
답변 : 첫째 분양원가 공개는 장사원리에 맞지 않습니다. 둘째 공개한다고 집값 내려갑니까. 1차 수혜자 외에 2차 수혜자가 누구냐 하는 문제도 있고, 시장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을 것이란 문제도 있습니다. 지금 건설 경기가 엉망입니다. 본질적 규제 늘리면 건설경기가 살아나겠습니까. 건설경기가 안 좋으면 주택공급도 줄게 되어 있습니다. 거래에 직접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도 조세나 부담금 등 간접적인 방법으로 시장 메커니즘을 잡을 수 있습니다. (총선) 공약이 중요하지만 잘못된 공약은… 그만둡시다. (이런 말을 하면) 또 곡해할 수 있으니까.
이견은 총리실에서 조정하면 돼
질문 : 당정 간의 마찰과 혼선이 많은 것 처럼 비춰지고 있습니다. 분양원가공개 문제가 그렇고 이라크 파병문제도….
답변 : 이견이 심각하다고 하는데, 문제가 뭡니까. 이견 없는 정부는 망합니다. 물론 이견만 있고 그것을 해소하지 못하는 정부도 망합니다. 가장 좋은 것은 이견도 있고 논쟁도 있지만 이를 잘 조정해 나가는 것입니다. … 이번에 (분양원가공개 문제에 대한 언론의 비판 때문에) 아주 박살이 났습니다. 이견을 조정하라고 했습니다. 국무총리실에서 조정하면 됩니다. … 언론이 ‘노 대통령이 (당 방침을) 뒤집어…’라고 쓰면 안됩니다. 그러면 진짜 망합니다.
노 대통령은 토론 말미에 “토론을 하다 보면 공격과 방어를 확실히 하는 성격이어서 때론 과한 표현도 있을 것이고, 이해해주십시오. 좀 봐주십시오. 좀 도와주십시오”라는 절절한 당부의 말로 만찬을 끝냈다.
민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