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럽게 사퇴한 송광용 전 교육문화수석이 경찰의 수사 대상에 오른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이와 관련 청와대 인사위원장인 김기춘 비서실장(왼쪽.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다. 연합뉴스
송광용 전 수석이 경찰에 출석한 것은 지난 6월 9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송 전 수석은 서울교대 총장 재직 시 이른바 ‘1+3 유학제도(국내에서 1년 수업을 듣고 외국 대학에서 3년을 이수하면 학위를 인정해주는 제도)’를 교육부 장관 인가 없이 운영한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경찰에 따르면 송 전 수석은 피내사자 자격이었지만 사실상 피의자 신분이었다고 한다. 송 전 수석은 경찰에 출석해 해당 프로그램 운영을 보고받고 관련 내용에 대해 결재한 사실도 인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로부터 사흘 뒤 송 전 수석은 교육문화수석으로 발탁됐고, 6월 23일 박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았다. 위법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인사가 어떻게 청와대 최고위직에 임명될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해 청와대는 경찰이 수사 내용을 입력하는 형사사법정보시스템 ‘킥스(KICS)’에 전산 입력을 하지 않았고, 송 전 수석 역시 검증 과정에서 경찰 조사를 언급하지 않아 알 수 없었다는 궁색한 핑계를 대고 있다. 경찰 역시 송 전 수석이 교육문화수석으로 임명된 것을 전혀 몰라 청와대에 보고를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송 전 수석 내정이 유력했던 6월 10일부터 임명장을 받던 23일까지 약 2주 동안 청와대 인사 검증 기능이 전혀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청와대와 경찰의 이러한 입장에 정치권과 사정당국 주변에선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지난 정권 민정수석실에서 인사 검증을 담당했던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수석급 인사의 경우 범죄 유무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평판 체크도 꼼꼼히 한다. 경찰이 수사에 착수한 것은 지난해 11월부터라고 하는데, 이 정도 기간이면 사전에 안 걸릴 수가 없다. 청와대가 검증 자체를 소홀히 했거나 송 전 수석 비위 사실을 알고도 무시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송 전 수석은 임명 당시 제자 논문을 학술지에 게재하면서 자신을 제1저자로 등재하고, 서울교대 총장 시절 학교부설기관으로부터 거액의 수당을 불법으로 수령했다는 등과 같은 의혹에 휩싸인 바 있다. 청와대가 더욱 철저히 체크할 필요가 있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의 전산 입력과 당사자 답변에만 의존했다는 대목은 뭔가 말 못할 속사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냐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특히 송 전 수석이 정수장학회 이사를 13년 동안이나 맡았던 경력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앞서의 사정기관 관계자는 “통상 VIP(대통령)와 관련이 있는 ‘낙하산’ 인사는 현미경 검증이 쉽지 않다. 민정수석실이 송 전 수석과 박 대통령의 사적 인연을 의식했다면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수 있다”고 귀띔했다.
송 전 수석을 서울교대 전직 총장으로만 알았다는 경찰의 설명 역시 받아들이기 힘든 측면이 있다. 송 전 수석이 세간에 알려져 있는 유명인은 아니지만 방대한 정보라인을 구축하고 있는 경찰이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수사가 한창일 때 언론에선 송 전 수석 관련 기사가 쏟아졌고, 사설 정보지 등에도 송 전 수석을 둘러싼 여러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경찰청의 한 고위 인사 역시 “뭔가 귀신에 홀리지 않고서야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느냐. 실무진은 정말 몰랐다고 한다. 경찰 수뇌부도 마찬가지다. 언론 스크랩도 매일 하고, 정보지도 빠짐없이 체크하는데 송 전 수석 신분을 몰랐다는 게 우리도 믿기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박근혜 대통령이 6월 23일 청와대에서 신임 송광용 교육문화수석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모습. 사진제공=청와대
청와대 해명이 사실이라고 치면 이는 곧 현 정부 인사 검증 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근무한 경력이 있는 복수의 사정기관 관계자들 역시 이 부분을 꼬집었다.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민정수석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엔 검찰·경찰·국정원 등에서 파견 나온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이들 모두 자기가 몸담고 있는 조직에서 내로라하는 엘리트 요원들이다. 경찰의 전산 입력 시기와 송 전 수석 거짓말로만 인사 검증 실패의 원인을 돌려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 다른 사정기관 관계자도 “경찰 전산 입력을 확인하고, 답변서를 받는 역할만 한다면 뭐 하러 각 기관에서 정예 직원들을 차출해서 데리고 오느냐. 현 정부 들어 인사 잡음이 많이 나는 것도 그런 식으로 대충 검증을 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어처구니없는 일은 계속됐다. 송 전 수석이 청와대에 들어와 근무하고 있던 7월 31일 경찰은 송 전 수석을 불구속 입건했고, 9월 16일 서울중앙지검에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했다. 그런데 이 기간에도 청와대는 송 전 수석의 경찰 조사를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경찰도 청와대 최고위직이라고 할 수 있는 송 전 수석 신분을 몰랐단다. 송 전 수석이 최초 경찰에 소환됐던 6월 9일부터 약 100일간 인사 검증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청와대는 6월 24일 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 낙마 이후 인사 시스템을 재정비한다며 6월 말 인사수석실을 신설한 바 있는데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던 셈이다.
9월 19일 민정수석실 첩보를 통해 사태를 파악한 청와대는 다음날인 20일 송 전 수석을 경질했다. 그러나 이 과정 역시 석연치가 않았다. 청와대는 송 전 수석 사퇴 배경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가 논란이 확산되자 뒤늦게 해명에 나섰다. 그마저도 책임 전가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경찰 전산입력 시간차와 송 전 수석 거짓말을 이유로 들었던 것이다.
윤호석 정치평론가는 “경찰이 보고를 안 했다면 명백한 실책 아니냐. 그렇다면 청와대는 왜 경찰을 문책하지 않느냐. 청와대가 떳떳하다면 경찰 관련자들을 징계하면 될 것 아니냐”고 반문하며 “경찰이 보고를 안 했다 하더라도 청와대가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지금 하고 있는 변명은 너무 구차하다. 도대체 이게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인사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김기춘 실장이 국민들에게 직접 사과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야권에서는 청와대의 이러한 스탠스를 놓고 김기춘 실장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총공세에 나섰다. 박영선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는 “경찰에서 조사받고 있는 사실조차 몰랐다는 청와대 답변은 ‘대통령 7시간’만큼이나 청와대의 국민적 신뢰와 직결된 부분이 아닐 수 없다”면서 “인사위원장인 김 실장과 민정수석실이 문제의 발단으로 지목되고 있다”고 일갈했다. 같은 당 박지원 의원도 “인사위원장인 김 실장이 송 전 수석의 경찰 출두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김 실장이 검증을 해서 문제없다고 하니까 대통령께서 결정했을 것 아니냐. 김 실장은 대통령도 속인 사람”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새누리당은 침묵하고 있지만 또 다시 불거진 청와대발 인사 잡음에 곤혹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청와대와의 수평적 관계를 기치로 내걸어 전당대회에서 압승했던 김무성 대표가 김 실장을 향해 한마디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들린다.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한 라디오에 출연해 “청와대가 경찰 정보 쪽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왜 이렇게 아마추어적으로 일을 처리하는지 모르겠다. 청와대 입장에서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꼬집기도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