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닌텐도DS(위)와 불법 게임 구동기 ‘알포’ | ||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독버섯처럼 퍼지고 있는 닌텐도DS 불법 게임 구동기기의 판매 및 사용 실태를 집중 점검했다.
닌텐도DS는 일본 닌텐도사가 개발한 휴대용게임기. 국내에는 지난해 1월 정식 발매해 장동건 이나영 등 톱스타를 앞세워 본격적인 마케팅에 나선 이후 100만 대 이상 팔렸다.
그러나 이러한 판매 호조와 더불어 불법 게임 구동 기기인 이른바 ‘알포’까지 국내에 수십만 개가 팔리고 있는 것. 과거만 하더라도 ‘알포’는 용산전자상가와 같은 재래시장이나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암암리에 거래됐지만 최근에는 ‘옥션’ ‘G마켓’ 등 인터넷쇼핑몰은 물론 심지어 학교 앞 문방구까지 침투해 버젓이 팔리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불법구동기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불법인지를 모르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때문에 저작권법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저연령층 아이들은 순식간에 잠재적 범죄자로 내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업계에서는 국내 ‘알포’ 사용 인구를 전체 닌텐도DS 구매자에 30%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국내인구 30만 명가량이 공공연하게 저작권법을 어기며 닌텐도DS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 대부분은 닌텐도DS와 함께 ‘알포’를 구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입 이유는 편리성과 경제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기 때문. 정품 게임이 3만~4만 원 정도에 단 한 개의 게임밖에 하지 못하는 반면 ‘알포’는 6만 원 정도면 추가비용 없이 무한정 게임을 바꿔가며 할 수 있다. 게다가 한꺼번에 수십 개의 게임을 동시에 담을 수 있어 게임을 매번 바꿔 끼워야 하는 정품 게임에 비해 상당히 편리하다.
구입 장소는 대부분 게임 재래시장이나 인터넷 경매 쇼핑몰. 그러나 최근에는 초등학교 문구점 등에서도 구입이 가능할 정도로 널리 퍼져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게임 지식이 부족한 부모들이 아이들의 말만 듣고 대형마트나 백화점 등에서 ‘알포’를 찾는 경우도 있어 매장 직원들이 이에 대해 설명하느라 진땀을 빼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이렇게 ‘알포’를 구입한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게임을 주로 P2P 사이트를 통해 구한다. 또한 네이버나 다음과 같은 ‘알포’ 관련 커뮤니티 사이트를 개설해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현재 네이버에서 운영되고 있는 한 ‘알포’ 관련 커뮤니티는 약 13만 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대형화 돼있는 추세. 이곳에서는 ‘알포’ 및 게임에 대한 각종 최신 정보가 하루에도 수백 건씩 올라온다. 알포 사용이 불법인 만큼 이곳 회원들은 각종 속어들을 사용해 지능적인 검색을 통해 단속을 피하고 있다. 가령 알포는 ‘개밥(개 사료 브랜드)’으로 부르며 같은 종류의 불법구동기기인 AK는 ‘소총(러시아제 총 브랜드)’, 사이클로는 ‘자전거(사이클)’로 부른다. 이밖에 게임 타이틀을 의미하는 단어인 롬은 ‘물(글자를 거꾸로 읽음)’로, 불법 게임 구동기기를 총칭하는 닥터는 그대로 해석해 ‘의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만약 이러한 규칙을 어기는 글이 올라오면 운영자가 임의로 게시물을 삭제해 커뮤니티가 폐쇄되는 것을 막고 있다.
알포가 무분별하게 팔리면서 이에 대한 부작용도 심각하게 일어나고 있다. 저연령층 아이들이 심의를 받지 않은 일본 및 미국에서 출시된 게임들을 인터넷을 통해 다운로드 받아 플레이하는 것. 일본의 경우 성인을 대상으로 한 섹스물이나 마작이나 포커와 같은 도박 소재 게임들도 많아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 자칫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
또한 워낙 많은 수의 초등학생들이 알포를 사용하다 보니 ‘닌텐도DS가 없으면 왕따’가 이젠 ‘알포 없으면 왕따’로까지 인식되고 있는 실정이다. 정품 게임을 구입하는 아이가 오히려 또래들 사이에서는 바보처럼 취급된다는 것. 업계 관계자들은 어릴 적부터 게임 등 IT저작물은 공짜라는 인식이 팽배해질 경우, 향후 우리나라 IT산업 발전에 치명적인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알포는 산업적으로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히고 있다. 닌텐도DS는 100만대 이상 팔렸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게임 타이틀 판매량은 1%에도 못 미치기 때문이다. 한국 닌텐도에서 내놓은 ‘매일매일 DS 두뇌트레이닝’이나 ‘듣고쓰는 친해지는 DS 영어삼매경’과 같은 게임은 공중파 TV 광고에 힘입어 각각 20만 장 이상 팔렸지만, 그 외의 타이틀은 고작 1만~2만 장 판매되는 데 그쳤다.
최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 14일 대통령 업무보고 자리에서 게임, 영화 등 IT저작물의 복제를 척결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히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포 판매에 대한 단속은 쉽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게임을 담지 않은 알포 자체를 파는 것은 불법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가령 MP3 플레이어나 PMP의 경우 대부분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저작권이 있는 MP3 파일과 영화 파일을 불법으로 다운로드 받아 사용하는 실정이지만 현행법상 PMP나 MP3 플레이어 자체를 불법으로 보지는 않는다.
남녀노소 누구나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며 ‘게임인구 확대’를 기치로 내걸은 한국 닌텐도. 마케팅에200억 원이 넘는 돈을 쏟아부으며 우리나라에 ‘닌텐도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데는 일단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결국 어린이 불법 게임인구는 두고두고 문제가 될 소지가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봉성창 경향게임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