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에이의 무대 공연을 응원하러 온 팬들. 삼촌팬들도 몰래(?) 숨어서 콘서트를 즐기곤 한다. 사진제공=KBS
첫 번째는 ‘덕질’. 한 가지에 집요하게 빠지는 사람을 뜻하는 일본어 ‘오타쿠’에서 파생된 말이다. 우리나라에 이 단어가 들어오면서 오덕후, 오덕, 덕 등의 변천사를 거쳤다. 다시 말해 덕질이란 걸그룹에 집요하게 빠져 팬 활동을 하는 것을 뜻한다. 처음 걸그룹에 빠져 덕질을 시작하는 것을 ‘입덕’, 정신을 차리고 빠져나오는 것을 ‘탈덕’이라고 말한다.
두 번째는 ‘일코’다. 삼촌팬들의 애환이 담긴 말이다. “여자 아이돌 그룹을 좋아한다”고 진지하게 말하며 휴대폰에 사진을 저장하고 다니는 중년의 남성을 정상으로 봐줄 사람은 거의 없다. 주변의 시선 때문에 ‘일반인 코스프레’를 하고 다녀야 하는 삼촌팬들이 만들어낸 말이다.
예를 들면 직장동료들 사이에서 걸그룹 얘기가 나왔을 때 “나 그런 거 몰라”라며 시치미를 떼거나, 걸그룹을 기다리며 ‘사생질’(극성팬이 밤낮없이 해당 연예인의 일상생활을 쫓아다니는 일)을 할 때 우연히 취재 카메라가 그 모습을 찍는다면 갖고 있는 모든 소지품을 동원해 얼굴을 가리는 식이다. ‘죄짓는 것도 아닌데 왜 숨기고 다녀야 하는가’라는 용기가 생길 때는 ‘일코해제’를 한다. 같은 팬들의 환영을 받겠지만, 가족, 회사동료들의 시선은 장담할 수 없다.
삼촌팬들의 에피소드는 무궁무진하다. 삼촌팬들의 ‘기본기’는 촬영장에 음식 보내기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7> 촬영 당시 에이핑크 정은지를 위해 삼촌팬들은 스태프들 몫까지 삼계탕 100인분을 준비했다. 여기에 샐러드, 과일, 쥬스 등의 디저트까지 완벽하게 준비했다. 스태프들에게 잘 보여야 현장에서 편하게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촌팬들의 조공 덕분에 정은지의 어깨가 으쓱했다는 후문이다.
가장 눈길을 끈 삼촌팬들은 크레용팝의 ‘팝저씨’들이다. 크레용팝과 아저씨를 더해 붙은 별명이다. 중독적인 안무와 특이한 퍼포먼스로 뜬 걸그룹 크레용팝만큼 팬들도 특이하다. 가수와 같이 헬멧을 쓰고 크레용팝의 트레이드마크인 색색의 ‘츄리닝’을 입고 다닌다. “점핑 점핑”이라는 가사에 맞춰 헬멧을 쓴 아저씨 한 무더기가 ‘떼점프’를 하는 영상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해 겨울에는 크레용팝이 광고한 한 카페의 팥죽을 팔아주려 서울 청담동에 있는 매장에서 ‘팥죽대첩’을 벌였다. 매장 밖까지 길게 줄을 늘어서 팥죽을 받고 친목을 다져 팝저씨들의 저력을 보여줬다.
크레용팝 초아가 미국에서 만난 아저씨팬 ‘팝저씨’와 함께 찍은 사진과 자신의 셀카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출처=크레용팝 공식 트위터
삼촌팬의 원조 격은 소녀시대의 팬들이다. 소녀시대는 데뷔 때부터 삼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으며 ‘강림’했다. 온라인상에는 소녀시대 삼촌팬들이 한 ‘조공’이라며 화려한 인증샷이 돌아다닌다. 명품 가방, 구두는 기본이다. 국내에 들어오지도 않은 디자인을 사오는 수고도 마다치 않는다. 맥북, 아이패드 등 고가의 전자제품도 선물 목록에 올랐다.
멤버 유리의 성년의 날에는 ‘흑진주’라는 별명에 맞춰 흑진주 목걸이를 선물했다. 시판 제품을 사서 준 것이 아닌 직접 진주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보석상에서 최고급 흑진주와 디자인까지 직접 선별해 만든 것이다.
나머지 멤버들 역시 취향을 ‘저격’해 바친 조공이 대부분이다. 음악 공부를 계속 이어가고 싶다고 밝힌 제시카를 위해 마스터키보드, 헤드셋 등을 최고급으로 사다 바치기도 했다. 데뷔 초기 제시카 생일에 다이아반지를 선물했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걸그룹의 팬카페에는 삼촌팬들의 덕질 후기가 심심찮게 올라온다. 아내에게 잔소리를 들었다며 위로를 청하고, 회사에서 자신의 걸그룹을 욕하는 동료가 있었다며 하소연하기도 한다. 자신을 소녀시대 팬임을 밝힌 한 누리꾼은 “6살 아들이 내 ‘소덕질’에 장단 맞춰 노래를 줄줄 왼다. 회사 내 자리에 우리 여신들 사진을 줄줄이 붙여 놨다. 가끔 ‘더 야한 사진은 없느냐’는 동료의 농담에 속이 상한다”며 자신의 ‘일코해제’ 경험담을 올렸다.
자신을 카라의 삼촌팬이라고 밝힌 한 남성은 팬클럽 게시판에 “우리 애들 처음 1위 할 때의 감격이 잊히지 않는다. 서울 단독콘서트를 할 때 가까이서 애들을 봤는데 행복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삼촌팬과 친구가 된 일화를 전하며 “콘서트 티켓 받는 주소는 우리집으로 했다. 친구가 ‘우리 마누라가 아이돌 콘서트 가는 거 알면 난 죽는다’고 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카라의 일본 중년팬의 구구절절한 글은 이미 삼촌팬들 사이에 ‘전설’로 통한다. 자신을 일본에 사는 중년 팬이라고 소개한 남성은 “한국과 서울 등지에서 열린 순회 콘서트에 4번 잇따라 참여했다. 회사에서 일할 때 빼곤 집에서 컴퓨터에 붙어 카라 관련 정보를 찾는다”고 적었다. 이 남성은 자신의 아들과 카라가 함께 찍은 사진을 글에 첨부해 올렸다.
익명을 요구한 한 남성(36)은 “한 번은 회사에 휴가까지 내고 일본에서 열린 콘서트에 ‘원정’을 갔다. 신들린 ‘광클’로 맨 앞자리를 예약하고 조금이라도 눈에 띄고 싶은 마음에 불빛이 나오는 머리띠도 썼다. 근데 덕질로 황홀경에 빠진 내 모습이 어떤 매체에 찍혔다. 사진을 본 주변 사람들이 ‘정말 너 맞냐’고 물어오는 통에 본의 아니게 일코해제를 당했다”는 일화를 전했다.
[특별취재팀=성기노 취재2팀장, 박민정 기자, 서윤심 기자]
‘군통령’은 누구 누워서 섹시댄스 ‘오, 신이시여~’ 대한민국 군필자 남성들이라면 누구나 추억에 잠기게 만드는 노래 한 곡쯤은 있다. 바로 군복무 당시 들었던 ‘군통령’의 노래다. 군통령이란 군인들 사이에 가장 사랑받는 걸그룹을 말한다. 모든 음원차트를 ‘올킬’하며 휩쓴 노래도 군대에선 통하지 않을 때도 있다. 반대로 심하게 말하면 ‘듣보잡’이라고 할 만한 걸그룹들이 군인들 사이에선 군통령으로 통하기도 한다. 군인들 사이에서 가장 사랑받는 걸그룹 AOA의 혜정이 아찔한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요즘 군통령은 AOA와 걸스데이다. 걸스데이의 멤버 혜리는 MBC <진짜사나이> 여군 특집편에 출연해 특유의 앙탈 애교로 인기를 모았다. 걸그룹 선호도 현장 설문조사에서 만난 한 남성은 “며칠 전 전역했다. 요즘 대세는 AOA와 걸스데이다”며 인기가 많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부끄러운 표정으로 “야해서”라고 답했다. 그의 표정을 통해 걸그룹이 군에서 얼마나 ‘구세주’ 같은 존재인지 느낄 수 있었다. 특유의 입술춤과 긴 다리를 뽐내며 무대에서 눕는 그들을 보고 열광하지 않는 군인들이 없다. 또 다른 전역한 남성은 “군에서 눈뜨자마자 ‘짧은치마’를 들었다. TV에 AOA만 나오면 생활관 장병들이 미쳐서 날뛰었다”는 추억담을 전했다. 군에서 휴가를 나온 박 아무개 씨(23)는 “부대 내에서 혜리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애교 필살기는 군인들을 녹인다”고 말했다. 군통령의 역대 변천사를 보면 걸그룹의 변천사도 함께 보인다. 2007년에 군복무를 했다는 이 아무개 씨(30)는 “누가 뭐래도 원더걸스였다. 당시 ‘텔미’가 국민가요였는데 군 장병들 사이에 인기는 더 했다”고 추억에 잠겼다. 2009년 군통령은 소녀시대였다. 김 아무개 씨(28)는 “당시 ‘지(Gee)’를 부른 소녀시대의 인기는 절대적이었다. 간간히 브라운아이드걸스가 ‘아브라카다브라’로 인기를 끌기도 했지만 소녀시대를 따라잡을 수 있는 걸그룹은 없었다”고 회상했다. 2011년의 군통령은 걸그룹을 제치고 아이유가 차지했다. 최 아무개 씨는 “섹시한 안무도, 의상도 없지만 ‘나는요 오빠가 좋은걸’이라는 노랫말로 ‘군인오빠’들의 마음을 흔들었다”고 말했다. [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