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에서 내년 1월 방영되는 신작 드라마 <킬미, 힐미> 캐스팅 문제와 관련해 현빈과 제작사 팬엔터테인먼트가 갈등을 빚고 있다. 사진은 현빈과 팬엔터 홈페이지 화면.
이번에는 상황이 좀 다르다. 현빈이 드라마 <킬미, 힐미>를 제작하는 팬엔터테인먼트와 제대로 싸움이 붙었다. 출연은 이미 불발된 상황에서 서로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발단은 지난달 27일 한 매체가 보도한 기사였다. 현빈이 내년 1월 MBC에서 방송될 예정인 <킬미, 힐미>의 캐스팅 물망에 올랐다는 기사가 불거지자 MBC와 현빈 측은 곧바로 이 보도를 부인했다.
이후 팬엔터테인먼트에서는 공식 보도자료를 내고 “현빈 측에 스케줄 문의를 한 건 사실이나 대본을 건넨 적이 없고, 편성 변경으로 남자주인공 연령대가 내려가면서 현빈 등 30대 남자배우들은 후보군에서 제외됐다”고 밝혔다.
현빈 측은 발끈했다. 제작사가 캐스팅 보도를 부인하는 과정에서 배우를 폄하했다며 “팬엔터테인먼트 측은 올 초 <킬미, 힐미> 캐스팅 제안을 했고 1차 대본과 수정 대본을 회사로 보내왔다”고 주장했고 사과문 게재까지 요구했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자면 제작사는 일단 거짓말을 했다. 현빈에게 대본을 건넸으면서도 그런 적이 없다고 말했다. 제작사가 스스로 꼬투리가 잡힐 만한 ‘꺼리’를 제공한 셈이다. 그러면서 제작사는 “문제의 발단이었던 기사 작성 경위에 대한 구체적인 해명 없이 사과문 게재는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미 출연이 불발된 배우의 캐스팅 기사가 불거져 부인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치고받는 사례는 거의 없었다. 같은 업계 종사자들이라 돌고 돌다 보면 또 마주치고 함께 작업할 기회가 생기는데 감정의 골을 깊게 파며 불편한 관계를 형성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제작사는 그런 강수를 둔 것일까. 제작사 입장에서 <킬미, 힐미>는 조금이라도 생채기가 나는 것이 싫은 ‘귀한 자식’이다. <해를 품은 달>로 팬엔터테인먼트에 엄청난 수익을 안긴 진수완 작가의 신작인 데다 중국 유수의 엔터테인먼트 그룹인 절강화책미디어그룹과 공동 제작하는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장사인 팬엔터테인먼트로서는 150억 원 제작비가 투입되는 이 드라마가 한 해 농사를 결정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정도 제작비를 감당하고 중국 협력사의 만족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스타를 캐스팅해야 한다. 그런 스타들은 대부분은 톱클래스다. 톱클래스 배우들의 특징은 ‘꿩 대신 닭’이 되길 싫어한다. “OOO이 거절한 작품”이라는 꼬리표가 붙으면 캐스팅이 어려워지는 이유다.
배우와 제작사가 캐스팅에 민감한 또 다른 이유는 편성 때문이다. 기획안을 들고 방송사를 찾아가면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이 “누가 출연하냐”다. 흥행이 될 만한 스타가 미리 출연을 결정했다면 편성을 받기 쉬워진다. 때문에 제작사는 계약서를 쓰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OOO이 출연할 예정’이라고 소개하고, 이런 이야기가 돌고 돌다 기사화된 후 결과적으로 출연이 불발된 경우가 적지 않다.
가끔은 편성 때문에 스타가 이용당하기도 한다. 한 중견 제작자는 배우 A에게 대본을 건넨 후 긍정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며 지상파 방송사 편성권을 따냈다. 하지만 A는 출연료 협상 과정에서 중도 하차했고 결국 또 다른 배우가 주인공으로 나서게 됐다. 방송사 역시 A가 출연하는 것으로 믿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았지만 대체 작품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이라 결국 해당 드라마를 방송하기로 결정했다.
반면 배우와 소속사가 몸값을 높이기 위해 여러 제작사를 놓고 경쟁을 붙이기도 한다. 배우 B는 당초 한 드라마에 출연할 계획이었으나 다른 제작사에서 또 다른 제안이 오자 더 높은 몸값을 불렀다. 이미 다른 제작사의 러브콜을 받고 있기 때문에 배짱을 부린 것이다. 하지만 편성을 받기 위해 캐스팅이 급했던 이 제작사는 웃돈을 얹어서 B를 캐스팅했고 당초 B와 이야기를 나누던 제작사는 ‘닭 쫓던 개’가 돼버렸다.
결국 출연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배우와 소속사, 제작사, 방송사가 의견 일치를 봐야 한다. 배우는 최대한 많은 개런티를 받으려 하고, 제작사는 수익을 내기 위해 출연료는 낮추면서도 해외 판권 및 제작협찬이 용이한 스타를 잡으려 한다. 하지만 방송사는 시청률에 따라 광고 판매율이 결정되기 때문에 배우의 인지도뿐만 아니라 연기력까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또 다른 외주 제작사 관계자는 “이런 복잡한 이유 때문에 주연 배우 캐스팅의 70~80%는 결렬된다”며 “현빈과 <킬미, 힐미> 간 다툼 역시 이런 수많은 과정 중 하나일 뿐이지만, 현빈의 행보를 유심히 지켜보는 관계자들이 많고 제작사 입장에서도 <킬미, 힐미>가 워낙 대작인 터라 자사 콘텐츠를 지키기 위한 과정에서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