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대통령은 행정수도 이전 국민투표 논란을 정면돌파하겠다는 전략이다. 사진은 지난 5월21일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 김안제 위원장(노 대통령 왼쪽) 등 민간위원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직후 모습. | ||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통과(3월12일)을 전후해 명운(命運)을 걸고 맞섰던 양측이 그에 대한 정치적 심판인 4·15 총선이 끝난 지 두달여, 법률적 심판인 헌법재판소 탄핵안 기각(5월14일)후 불과 한달여 만에 다시 건곤일척(乾坤一擲)의 격돌에 들어간 것이다. 지난 연말 ‘신행정수도특별법’이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한 것을 계기로 일단락된 것으로 보였던 행정수도 이전 문제에 대해 보수층들이 최근 이에 대한 국민투표 실시를 요구하고 나서면서 나타난 결과다.
행정수도 충청권 이전을 ‘다된 밥’으로 여겼던 여권은 국민투표 실시 요구를 “제 2의 대선 불복”으로 규정하며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이번 사태가 탄핵안 국회 통과의 ‘후폭풍’으로 몰락 위기에 놓였다가 기사회생한 한나라당-일부 보수언론이 다시 ‘노무현 흔들기’에 나선 것인 만큼 이번엔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로 수구-기득권 세력의 기반을 허물어 뜨리겠다는 ‘결기’까지 느껴진다.
주목되는 것은 행정수도 이전 논란에 대한 여권 핵심부의 ‘셈법’이다. 국민투표 요구 등이 일부 보수언론이 총대를 메고, 한나라당이 이에 가세하는 양상으로 시작됐지만 여권 내에선 이에 당혹해 하는 기색이 별로 없다. 오히려 3·12 탄핵사태에 이은 수구-기득권 세력의 또다른 ‘자살골’이 되리란 해석이 많다. 여권 한 핵심인사는 이를 ‘불감청이언정 고소원(不敢請 固所願:감히 청하지는 못할 일이나 본래부터 바라던 바다)’으로 말할 정도다. 행정수도 이전 논란에 미소짓는 여권 핵심부의 속내는 무엇일까?
여권은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국민투표 실시 주장은 사실상 이전 백지화 요구로 절대 수용 불가라는 입장이다. 이는 노 대통령이 직접 “행정수도 이전 계획은 참여정부의 핵심과제이기 때문에 정부의 명운-진퇴를 걸고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15일 국무회의)고 못박은 데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여권은 이 같은 입장을 토대로 국민투표 실시 주장을 펴고 있는 한나라당-일부 보수언론의 ‘불순한 저의’에 강경대응을 선언하고 나섰다. 여권 한 핵심인사는 “한나라당이 행정수도 이전을 ‘천도 논란’으로 변질시킨 일부 보수언론에 동조하고 나선 것은 결국 탄핵사태에 이은 또다른 자충수가 될 것이다. 지금의 추세가 계속되면 ‘변하지 않는 한나라당’에 대한 비판여론이 다시 높아져 다시 한번 ‘개혁 대 반(反)개혁’의 구도가 정립될 것인 만큼, 여권도 이에 대비해 보다 강도높게 개혁작업을 벌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 인사는 “행정수도 이전을 둘러싼 한나라당과 일부 보수 언론의 대응은 어떠한 논리로 분식(粉飾)한다 해도 본질은 기득권 유지가 목적이다. 특히 수도권에 엄청난 규모의 부동산을 갖고 있는 일부 보수 언론의 경우 대주주 소유지분 제한 등 언론개혁에 위기감을 느낀 데 이어 행정수도까지 이전할 경우 정치적-물적 기반까지 없어질 것이라는데 초조해진 나머지 사활을 걸고 이전에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이른바 ‘조-중-동’과 부침을 함께 해온 한나라당이 이들을 거들고 나선 것은 이제까지의 행적과 구성원들의 계층적 구조로 볼 때 당연한 것 아니냐”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여권은 한발 더 나아가 행정수도 이전을 매개로 한 이들의 공세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자신하고 있다. 여권은 우선 정치적으로 행정수도 이전 국민투표 요구가 대통령 탄핵사태 때와 달리 전체 야권이 망라된 것이 아니라, 한나라당만이 목을 메고 있다는 점을 꼽는다. 제 2야당인 민주노동당이 이미 “국민들을 지역적 이해관계에 따라 극단적 분열로 몰아가는 국민투표를 반대한다”(김종철 대변인)고 나선데 이어, 민주당도 ‘탄핵 후폭풍’을 혹독히 겪은 터에 최근 열린우리당과 ‘통합설’이 나오고 있는 터라 한나라당을 거들고 나서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 한 의원은 “행정수도 이전 논란을 계기로 한나라당이 정치적으로 고립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여권은 또 기본적으로 ‘영남당’인 한나라당이 수도권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해 행정수도 이전을 계속 반대할 경우 내부 분열이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들고 있다. 특히 영남권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박근혜 대표가 당내 차기 대권 경쟁자인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지사가 전면에 나선 행정수도 이전 반대에 얼마나 열의를 갖고 함께 할 지 지극히 의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이 박 대표의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수도 이전 계획을 추진했음을 적극적으로 거론하고 나선 것도 한나라당내의 이 같은 ‘약한 고리’를 겨냥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여권은 이와 함께 한나라당-일부 보수언론이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근거로 국민투표 실시를 요구하고 있지만 이는 일종의 ‘착시(錯視) 현상’임을 간과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여권의 또다른 핵심인사는 “조선일보, 동아일보 조사에서 국민투표 찬성 주장이 50~60%대로 나타났지만, 이는 최근 여권의 난조에 대한 실망감이 주요 요인이지 국민투표 실시가 불러올 지역간 대립 등 심대한 후유증과 1천억원에 가까운 투표 비용 등을 고려한 것이 아니다. 특히 논란이 계속돼 국민투표 실시 여부와 관계없이 폐해가 구체화되고, 한나라당의 오락가락 태도변화가 도마위에 오르게 되면 상황은 180도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했다.
▲ 지난 16일 한나라당 신당사 입주·현판식 때의 한나라당 지도부. 이종현 기자 | ||
여권내 이 같은 기류는 최근 노 대통령과 냉랭한 관계를 유지해온 열린우리당 김근태 전 원내대표의 행보에서도 드러난다. 김 전 원내대표는 입각 문제로 여권 핵심부와 틀어진데 이어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논란에 대해서도 청와대를 겨냥 “계급장을 떼고 논쟁하자”고 일갈하면서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그런 김 전 대표가 행정수도 이전 논란에 대해선 노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거들고 나섰다. 그는 “3·12 탄핵 쿠데타는 제1의 대선 불복이고, 신행정수도 번복은 제2의 대선 불복”이라며 한나라당 박 대표에 대해 “선친인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께서 추진했던 행정수도 이전은 정당한 것이고, 참여정부가 하고자 하는 신행정수도 건설은 잘못된 것인지 답하라”고 압박했다.
개혁작업의 순위와 완급을 둘러싼 내부 갈등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강경론이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우선 시기와 관련해 이견이 적지 않았던 언론개혁에 대해 여권의 입장은 “더 이상 족벌-보수 언론의 행태를 좌시할 수 없다”는 쪽으로 정리되고 있다. 특히 신기남 의장, 천정배 원내대표 등 “1년 안에 언론개혁을 매듭지어야 한다”는 열린우리당 선명개혁론자들의 주장에 그동안 ‘완급 조절’을 요구해 온 문희상 유인태 의원 등 친노그룹도 동조하고 나섰다.
일부 보수언론에 대한 여권의 강경기류는 언론개혁 관련 입법을 주도할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위원장에 개혁당 출신 강경 개혁론자인 김원웅 의원이 내정된 것에서도 확인된다. 문광위원장은 당초 유인태 의원이 유력했으나,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의 반발을 돌파할 적임자로 김 의원이 부각되면서 바뀌었다는 후문. 김 의원은 언론개혁의 방향으로 족벌체제로 비판받는 일부 보수 신문사 대주주의 지분 제한과 확고한 편집권 독립 등을 강력히 추진할 것으로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청검 갈등’의 단초를 제공했던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공비처)의 기능 강화가 여권 내에서 추진되고 있는 것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검찰의 독립-중립화가 크게 진전됐지만 최근 송광수 총장의 ‘항명’에 가까운 입장표명에서 보듯 통제불능의 권력기관이 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 만큼 검찰개혁을 더욱 힘있게 추진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천정배 원내대표는 공비처의 위상에 대해 “검찰까지 포함한 고위공직자에 대한 명실상부한 견제와 균형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공비처가) 기소권을 갖는 것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공비처에 수사권은 주되 기소권은 부여하지 않을 방침”(한덕수 국무조정실장)이라는 정부 방침으론 검찰의 권력기관화 우려를 막을 수 없는 만큼, 검찰을 확실히 견제할 수 있는 장치로 공비처를 역할하게 만들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이에 대해 우리당 한 의원은 “공비처의 위상 강화는 검찰개혁의 완결이라는 의미 외에 정권의 변동과 관계없이 부정-부패의 커넥션을 줄곧 유지하고 있는 수구-기득권 세력과의 전쟁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조건”이라고 밝혔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