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대표 | ||
그런데 이 과정에서 박 대표와 박 의원 사이에 갈등설도 흘러나온다. 박 의원이 여의도연구소의 전면 개편을 위해 당 대표가 겸임하도록 되어 있는 이사장직을 요구했는데 박 대표가 이를 거절하면서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는 것. 하지만 박 의원측은 “여의도연구소가 독립적으로 운영되어야 하는 사실을 강조하다가 생긴 오해일 뿐”이라며 갈등설을 일축했다. 박 대표측도 “사실무근”이라며 부인하고 있다. 여의도연구소 소장직 임명을 둘러싼 뒷이야기를 따라가 봤다.
여의도연구소는 한나라당의 중장기 전략을 기획하는 일종의 ‘컨트롤 타워’다. 이곳의 광범위한 자체 조사능력은 뛰어난 적중률을 자랑해 선거 때마다 정국을 읽는 중요한 바로미터를 제공한다. 또한 연구소장은 광범위한 조사 데이터를 바탕으로 대표에게 직접 조언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중량급 의원 못지 않은 ‘실력자’로 평가되어 왔다.
하지만 정책위와의 관계설정이 분명치 않아 당 대표의 비서실 정도로 인식되어온 측면도 있었다.
그런데 17대 국회의 여의도연구소 위상은 16대 때와 비교해 많이 달라지고 ‘업그레이드’ 됐다. 17대 국회 들어 각 정당마다 정책정당을 표방하면서 여의도연구소 권한도 더욱 막강해졌다. 그리고 연간 예산도 예전의 10배가 넘는 40억원에 달한다. 16대 때 월 3천여만원으로 직원 인건비 정도만 겨우 해결하며 운영되었던 것에 비하면 비약적 발전을 이룬 셈이다. 앞으로 여의도연구소는 석·박사급 고급인력 30여 명을 외부에서 영입하기로 해 대대적 체제정비도 할 계획이다. 자금이 부족한 야당에 이만한 인력과 재원을 운용할 수 있는 ‘노른자위’는 쉽게 찾기 어렵다. 그래서 17대 국회가 들어서면서 여의도연구소 수장 자리에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박세일 의원은 17대 총선을 앞두고 탄핵 후폭풍의 어려운 시기에 한나라당에 전격 입당하면서 그 대가로 일정한 ‘지분’을 약속 받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래서 비례대표 선정 과정에서도 자신의 인맥을 대거 영입해 한때 당내에서는 ‘박세일 의원이 큰 꿈을 품고 자신의 세력을 대거 원내에 진출시켰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 박세일 의원 | ||
박 의원측은 이에 대해 “박 의원이 비례대표 공천의 전권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불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박 의원은 그런 불협화음을 감안해 당분간 본인이 전면에 나서지 않겠다고 생각해 소장직을 고사했다. 그리고 연구소가 새롭게 자리잡는 과정에서는 젊고 액티브한 사람이 소장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욱 소장 자리를 피했다”고 말했다. 또한 박 의원측은 “총선 과정에서 마치 비례대표 공천의 전권을 행사한 것처럼 비쳐져 곤혹스럽다. 그래서 더더욱 자리에 연연하지 않으려 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여의도연구소 소장직을 두고 또 다른 소문도 나왔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박세일 의원이 최근 당 대표가 겸임토록 되어 있는 여의도연구소 이사장직에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기자들과의 사석에서 밝힌 적이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것이 박근혜 대표의 귀에 들어가면서 박 대표가 기분이 상해 소장직에도 앉히지 않으려 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박 의원측은 이를 두고 “뭔가 오해가 있다”며 적극 해명에 나섰다. 먼저 의원실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박 의원이 지난번 기자들과 식사를 할 때 ‘앞으로 연구소는 독립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현재 연구소 개혁 방안을 마련하고 있는데 옛날에는 말이 연구소였지 당 대표의 준 사조직 비슷한 그런 모습이 있었다.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 또한 중장기적으로 독립적인 프로그램들이 가동되어야 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사장직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 의원측은 잘못 와전된 것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앞서의 박 의원측 관계자는 “박 의원이 연구소 개혁 방안을 구상중이지만 그 중에서 이사장직에 대한 것은 없었다. 당연히 당 대표가 연구소의 이사장이어야 한다. 특히 원내 정당화를 위해서 여의도연구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데 어떻게 대표와 연구소를 따로 분리시킬 수 있느냐. 연구소가 옛날에 비해 독립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원론적인 얘기가 와전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박 대표와 박 의원의 갈등설은 한나라당 출입기자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나돌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박 의원측은 이에 대해 “며칠 전에도 잘 아는 기자가 그런 뉘앙스의 메시지를 내게 주었는데 그때만 해도 정치적 의중을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박 대표측은 이런 소문에 대해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 대표실의 한 관계자는 “박 의원이 연구소 이사장직을 요구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바 없다”고 밝히면서 “현 단계로서는 박 대표가 박 의원을 연구소 소장직에 내정했고 박 의원도 수락 정도 한 사안인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박세일 의원측은 이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소장직을 고사하다가 이번에 다시 맡은 까닭에 대해서도 “박 의원은 직접 비례대표 의원들을 영입했는데 그들의 당내 역할이 미미하다는 비판을 듣고 자신이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에 이런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총대를 멘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박 의원측의 이런 설명에도 그에 대한 당내의 시선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당의 한 관계자는 “연구소 소장직에 박 의원에 맞는 자리이긴 하지만 그가 뭔가 더 큰 욕심을 내고 있는 것 같다”며 의구심을 숨기지 않았다. 박 의원을 잘 아는 정치권의 다른 인사도 “박 의원은 꿈이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의원측은 이런 주변의 추측에 대해 “그는 국회와 정당의 정책적 능력 강화를 신주단지 모시듯이 하는 분이다. 그런데 현실 정치세계에서는 그런 뜻이 관철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이사회를 거쳐 곧 소장직에 정식 취임할 예정이다. 우여곡절 끝에 여의도연구소의 조타수로 나선 만큼 그의 ‘운항 실력’에 기대를 거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