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한나라당 내에서 ‘박근혜 흔들기’가 구체화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6일 신당사 입주식에 참석한 박 대표.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여기에는 이재오 홍준표 의원 등 강성 그룹이 주도하고 있으며, 일부 소장파가 가세하고 있다. 소장파는 여전히 박 대표의 주요 우군이지만 박 대표의 최근 행보에 실망감을 표명, 멀어져가고 있는 모습이다.
박 대표 흔들기의 주요 이유는 행정수도 이전을 둘러싼 한나라당 노선의 불분명, 전당대회의 일방적 승리를 통한 제왕적 대표 가능성, 이한구 정책위의장 임명에서 드러난 독단성, 여러 정책에서 보수성향으로의 회귀 등이 꼽히고 있다. 물론 근저에는 박 대표로 대권에서 승리하기 어렵다는 원천적 거부의식이 작용하고 있다.
이는 겉으론 박 대표의 위상이 확고한 듯 하지만 한나라당 내부적으로 언제든지 ‘반 박근혜 세력’이 대두할 수 있는 가능성을 증명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이명박 서울시장과 손학규 경기지사 등 대권을 노리는 경쟁자들과 함수관계도 복잡하다. 박 대표가 당내 반대세력을 어떻게 무마하느냐를 두고 박근혜 지도력이 주요 시험대에 올랐다는 분석이 많다.
역시 선봉장은 이재오 의원이다. 이 의원은 21일 SBS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 “이번 전당대회는 야당의 지도력을 모으기 위해 집단지도체제로 가야한다”면서 “그런데 내용을 보면 무늬만 집단체제이고, 전대에서 뽑는 대표를 제외한 최고위원은 당내 기여할 게 없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최고위원으로서 당에 기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없애버렸다”면서 “그러면 굳이 전대를 할 필요가 있는지, 들러리 세우기 위한 무늬만 전대 아니냐”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6월18일엔 기자들을 모아놓고 박 대표를 비판했다. 당을 잘못 이끌고 있다는 게 요지다. 이 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에도 박 대표 비판을 담은 장문의 글을 실었다. 다음은 박 대표의 리더십과 관련된 부분.
“지금 한나라당은 4·15 직후의 반성과 결의, 각오와 투지는 온데간데 없고 대표 한 사람의 대중적 인기에 목을 매는 꼴이 되었다. 당내 인사들은 벌써 대표 눈치보기와 줄서기에 급급하고 있다. 당의 장래가 걱정되는 불길한 조짐이 일어나고 있다. 당을 걱정하는 소리들이 자취를 감추고, 삼삼오오 모여 당을 걱정하고 흥분하고, 비판하던 모습들도 사라지고 간혹 비판의 목소리라도 나면 되소리가 말소리가 되어 돌아오는 지경이다.”
이 의원은 전당대회를 앞둔 상태에서 박 대표의 권력욕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전당대회에서 뽑히는 최고위원들에게는 독립적인 최고위원회조차 없다. 당의 대표적인 대의원들이 직접 뽑고, 여론조사 30%, 인터넷 20%의 전국민적인 관심으로 당의 최고위원과 대표 최고위원을 뽑고는, 대표가 임명하는 하위 당직자들과 상임위원의 일원으로 들러리나 서게 만들어 놓으니 누가 비싼 공탁금 내고 최고위원 선거에 나가겠는가? 최고위원회의가 없는 최고위원, 이미 실패로 검증된 상임위원회의 일원으로, 대표의 들러리로서의 최고위원을 뽑기 위해 전당대회를 한단 말인가? 특정인의 대표자리를 굳히기 위한 요식적인 전당대회를 할려고 이 어려운 시기에 전당대회를 개최한다는 한나라당식 발상에 서글픔을 느낀다.”
이 의원은 국회 원구성을 하지 못하는 원내협상과 수도 이전에 대한 대책 등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다. 원구성 협상은 김덕룡 원내대표가 맡고 있고, 수도이전특별법 통과는 최병렬 전 대표 시절 행해진 것이지만 박 대표가 지금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고 있다는 요지다. 수도 이전의 경우 빨리 사과를 하고 사실상 반대운동에 나서자는 게 이 의원의 논리다.
홍준표 의원은 이 의원만큼 공개적인 비판을 하진 않고 있다. 대신 만나는 사람마다 “과연 박 대표로 되겠나”라며 원초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홍 의원이 주장하는 ‘박 대표 불가론’의 핵심은 “유신시대의 유산을 물려받은 박 대표는 원죄를 안고 있다. 여권의 유신 검증이 본격화하면 견딜 수 있겠느냐”는 논리다. 홍 의원은 여기에다 “이회창 전 총재가 병풍이라는 의외의 암초를 만나 좌초했다”면서 “박 대표에게 무슨 암초가 있을지 어떻게 알겠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박 대표의 이미지는 일종의 신비주의 이미지인데, 신비감의 베일이 벗겨지면 예상 외의 곤란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다.
이재오 홍준표 의원이 공히 거론하는 것은 여권이 문화권력을 이미 독점하고 있고, 이는 박 대표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전망이다. 이들은 여권에 가까운 유명 감독들이 이미 유신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영화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만들 예정인 영화를 포함, 유신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5~6편에 달하고 있다고 한다. 실미도와 효자동 이발소 등이 신호탄이라고 보고 있다.
당내에선 이들이 이명박 서울시장이나 손학규 경기지사와 가깝게 지낸다는 점 때문에 이들의 주장이 전면적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의 문제의식을 전혀 터무니 없다고 받아들이는 분위기도 아니다.
당내 소장파의 불만은 박 대표가 다소 보수화, 권력화되고 있다는 점에 맞춰지고 있다. 이한구 정책위의장이 여의도연구소장을 겸직하는 쪽으로 결론이 나면서 소장파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남경필 원희룡 의원 등 소장파들은 별도의 모임을 갖고 이한구 의장의 겸직 불가론을 펴고, 박 대표를 비판했다. 박 대표의 노선에 반대하기 위해 소장파가 모인 것은 처음이다.
한 소장파 의원은 박 대표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박근혜가 수구화되고 있다. 왜 이한구 의원에 집착하나. 대구 때문인지 모르겠는데, 이한구 의원은 너무 보수적이고 친 재벌적이다. 절차도 틀렸다. 밀실에서 한두 명이 이런 중차대한 일을 결정해도 되나. 그리고 대표가 정책위의장을 임명하는 것은 새 당헌에 따른 것으로 전당대회 후에 새 지도부에서 해야 한다. 새롭게 태어난다면 박세일이나 박형준 의원에게 여의도연구소를 맡기면 되지 도대체 왜 무리하게 겸임시키려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소장파는 박 대표와 근본적으로 결별하려는 게 아닌 만큼 당내 강한 긴장감을 주진 않고 있다. 그럼에도 소장파들은 박 대표를 이대로 둬선 안된다고 보고 있고, 수도권 출신이 많다는 점에서 여차하면 갈라질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전당대회를 앞둔 박 대표는 상당한 어려움에 봉착해 있는 셈이다.
박 대표는 21일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 “행정수도법 졸속 통과는 실책”이라면서 한나라당의 책임을 인정했다. 당 대표로서 핵심 쟁점 사항에 대해 정리를 시도하고 나선 것. 박 대표는 그러면서 “사과만 한다고 끝이 아니다. 백년 후에도 책임질 수 있는 당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후회하지 않을 박 대표의 선택이 주목된다.
이필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