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3일 고 김선일씨의 빈소를 찾은 김근태 열린우리당 고문. 국제신문 | ||
여의도 정가에선 요즘 ‘노사모’ ‘국민의 힘’ 등 친노(親盧) 단체들이 ‘김근태 죽이기’에 나섰다는 얘기가 조심스럽게 나돌고 있다. 최근 김근태 열린우리당 상임고문이 노 대통령에게 도전하는 듯한 발언을 잇따라 쏟아내면서 친노 단체를 자극했다는 것.
그렇지 않아도 친노 단체들은 김 고문이 정동영 전 의장과 ‘통일부 장관 쟁탈전’을 벌인 것도 못마땅하게 여긴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던 차에 김 고문이 최근 “계급장 떼고 논쟁하자” “(대통령) 꿈을 꿔보겠다” “국가시스템이 심각하게 우려된다”는 등 노 대통령의 조기 레임덕(권력누수현상)을 조장할 만한 발언을 연달아 쏟아냈다. 이에 발끈한 친노 단체 회원들이 인터넷을 통해 김 고문을 융단폭격하고 있는 상황.
이에 대해 친노 단체에선 “회원들의 개인적인 견해일 뿐 조직의 공식입장은 아니다”라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그렇지만 정가에선 김 고문이 친노 단체로부터 ‘이미 찍혔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4·15 총선 승리로 김 고문은 한동안 어깨가 으쓱해졌다. 총선 직후 정가에선 김 고문과 정동영 전 의장을 차기 대권주자군으로 꼽는데 별다른 이의를 달지 않았다. 그런데 ‘잘나가던’ 김 고문과 정 전 의장이 노 대통령 눈밖에 나고 말았다. 헌재의 대통령 탄핵안 기각으로 긴 터널을 빠져 나온 노 대통령의 ‘국정 2기’ 통일부장관 자리를 놓고 ‘정·김’이 티격태격하는 볼썽사나운 모습를 보였기 때문. 당연히 각료임명권을 쥐고 있는 대통령으로선 불쾌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그러던 중 정 전 의장은 국회 개원식이 있던 지난 7일 출국해 일본과 미국을 둘러본 후 25일 입국했다. 이 기간 동안 통일부 장관 자리를 둘러싼 양 진영의 갈등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런데 김 고문으로부터 노 대통령과 당내 친노 그룹의 오해를 살만한 발언이 나왔다. 김 고문은 지난 14일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를 주장하며 “계급장을 떼고 치열하게 논쟁하자”는 다분히 공격적인 발언을 했던 것. 여권에선 ‘계급장 발언’을 놓고 “김 고문이 노 대통령과 각을 세우면서 강한 이미지를 심으려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면서 청와대와 김 고문 사이에 미묘한 갈등기류가 흘렀다.
김 고문은 부랴부랴 ‘계급장 발언’을 진화하느라 부심했다. 김 고문측은 “국정현안에 대해 당·청·정간 활발한 토론이 필요하다는 본래의 취지가 잘못 받아들여진 것”이라며 오해의 불씨를 끄려고 했다.
이런 와중에 김 고문과 문재인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지난 18일 서울시내 한 음식점에서 저녁을 함께 했다. 이날 회동에 대해 당사자들은 ‘개인적 친분을 나눈 자리’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정가에선 청와대와 김 고문이 그동안 쌓였던 오해를 풀기 위한 만남이었다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그런데 김 고문이 지난 17일 KBS 2TV <대한민국 1교시>라는 녹화 프로그램에 출연, “저는 중학교 때는 그런(대통령) 꿈이 없었는데, 꿈을 꿔 보겠다”고 말해 또 한 차례 미묘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러자 김 고문은 21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MC와 방청객들의 연이은 질문에 선의로 답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대권 도전’을 시사한 발언이 아니었음을 강조한 것이다.
▲ 지난 5월14일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기각 소식에 환호하는 노사모 회원들. | ||
그래서 일까. 친노 성향 네티즌들이 발끈하고 나섰다. 노무현 대통령의 팬클럽인 ‘노사모’와 노사모에서 파생된 ‘국민의 힘’ 회원들이 인터넷 등을 통해 ‘김근태 죽이기’에 나선 것. 자신들의 ‘노짱’에게 대드는 듯한 김 고문의 발언에 대해 강하게 질타하고 있는 것.
총선 때 김 고문의 지역구 선거운동을 도왔다는 한 노사모 회원은 “(대통령의 분양원가 공개 반대 입장은) 국가 경제의 거시적인 틀 속에서 내려진 결론”이라며 “노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이냐. 계급장 떼고 한판 하자고 하게“라며 김 고문의 ‘계급장 발언’을 강하게 힐난했다. 그러면서 “(김 고문의) 쇼맨십이 지나쳐도 한참 지나쳤다”고 비난했다.
또 다른 노사모 회원은 “노 대통령처럼 사익을 버리고 희생할 줄 아는 미덕을 (김 고문에게서) 발견할 수 없어 몹시 서운했다”며 “아직은 대통령이 되려고 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국민의 힘’의 한 회원도 “계급장 발언으로 속 상해 있던 차에 태연스레 대권도전설이 나와 발끈했다”며 ‘대통령 꿈’ 방송 발언을 비난했다. 그러면서 “계급장이라는 단어는 여당의 당수 위치에 있는 자가 대통령에게 써야할 단어가 아니다”는 불만을 쏟아냈다.
김 고문의 홈페이지에도 친노 단체 회원들의 비난이 빗발쳤다. ‘미래’라는 아이디의 한 네티즌은 김 고문의 ‘국가시스템 우려 발언’에 대해 “(국가의) 잘못된 시스템이 있다면 당신(김 고문)이 고쳐야 할 사람”이라며 “자기 얼굴에 침 뱉고 다니면서 한나라당이나 하던 구태의연한 행동을 서슴지 않고 있어 한심하다”고 강한 실망감을 표출했다. 또 다른 친노 네티즌도 “(김 고문이) 어줍잖은 짓을 계속 해도 ‘오냐, 오냐’ 했더니만, 대통령을 뭘로 보는 거냐”며 노 대통령을 엄호했다.
이 같은 친노 단체 회원들의 잇따른 비난에 대해 김 고문쪽 관계자는 “참여정부의 핵심 지지세력의 정치적인 견해 표출로 보고 있다”며 “비판이라기 보다는 참여정부가 잘 되길 바라는 우려라고 생각하며,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는 자세를 취했다.
한편으로 여의도 정가에선 ‘노무현 친위대’인 ‘노사모’와 ‘국민의 힘’ 등이 조직적으로 작심하고서 ‘김근태 죽이기’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들 단체 핵심관계자들은 한결같이 “김 고문에 대한 비난은 회원 개인의 견해일 뿐 단체의 공식 입장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노사모’의 심우재 대표는 “우리는 그동안 상임운영위원회에서 공식입장을 정리해왔는데, 이번 김 고문을 향한 비난은 우리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라며 “회원 개개인이 자신들의 정치 견해를 표출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국민의 힘’의 함효건 사무국장도 “회원 개인별로 견해를 밝힌 것”이라고만 밝혔다.
그럼에도 여권의 한 인사는 “김선일씨 피살 사건으로 요즘 김 고문에 대한 비난이 다소 누그러지긴 했다. 그러나 앞으로 김 고문이 친노 단체 회원들의 감정을 또 자극할만한 발언과 행보를 보이면 조직적으로 김 고문을 ‘왕따’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김선일씨 피살사건’으로 ‘휴화산’처럼 잠잠해진 친노 단체 회원들의 ‘반김(反金) 감정’이 언제 ‘비난의 용암’을 분출할지 두고봐야 한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