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전 대통령의 조카며느리가 출산 과정에서 사망하면서 소송으로 치달았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 ||
당시 사건은 ‘의료사고’ 분쟁으로 번져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발칵 뒤집어질 정도로 심각한 파장이 예상됐지만 세간에는 알려지지 않고 마무리돼 그 배경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일고 있다. 인의 장막에 둘러쳐져 있었던 탓일까. 아니면 의도적으로 알리지 않았을까. 노 전 대통령은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이 사건에 대한 정확한 내막을 몰랐다는 이야기도나오고 있다.
대체 노 전 대통령의 조카며느리는 무슨 연유로 병원에서 사망한 것일까. 노 정권 시절 ‘비사’라 할 만한 ‘노 전 대통령 조카며느리 사망사건’의 전모를 취재해봤다.
노 전 대통령의 ‘조카’ 김 아무개 씨(사업·38)의 아내가 숨진 것은 지난 2004년 10월 22일이다. 10월 19일 아이를 낳기 위해 서울 강북에 있는 I 산부인과에 갔던 김 씨의 아내 고 아무개 씨는 분만실에 들어간 지 약 12시간 후 강북의 한 대형병원으로 긴급후송됐으나 나흘 만에 사망했다. ‘자궁파열’에 의한 과다출혈이 사망원인이었다. 제왕절개로 꺼낸 아이도 며칠 뒤 숨졌다.
병원에서 고 씨의 분만을 집도한 이는 W 의사(45)였다. 당시 I 산부인과에서 근무했던 A 씨는 “‘문(자궁)이 안 열리던 사람이 갑자기 확 열리더니 머리가 만져져 분만을 하려고 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 인사는 “‘자궁파열’이 의심되는 상황에서 분만을 시도하다 시간이 지체됐기 때문에 자신이 봐도 의료사고로 의심을 받을 만했다”고 전했다.
병원 측에서는 사고발생 며칠 후 김 씨가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병원장에게 내밀고 나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됐다고 한다. 김 씨가 노 전 대통령의 ‘조카’라는 사실을 그때서야 알게 됐던 것.
김 씨의 어머니 노 아무개 씨(57)는 노 전 대통령의 아버지 노판석 씨의 동생인 노만석 씨의 딸로 노 전 대통령과는 사촌지간이다. 따라서 김 씨는 노 전 대통령의 5촌 조카(당질)뻘이다. 노 씨는 경남 김해 진영읍에서 태어나 노 전 대통령과 함께 유년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그는 노 전 대통령과의 관계를 묻자 “친오빠야 친오빠”라며 “어릴 적에 같이 자라 친오빠나 다름없고 아이들도 노 전 대통령을 삼촌이라고 부른다”라고 설명했다. 지난 4월에는 온 가족이 함께 봉하마을 사저에서 하룻밤을 묵고 왔을 정도로 여전히 왕래를 자주하는 사이라고 말했다.
노 씨의 며느리, 즉 노 전 대통령의 조카며느리(정확하게는 ‘종질부’지만 김 씨가 노 전 대통령을 평소 삼촌이라 부르고 자랐기 때문에 조카며느리로 칭함) 사망사건은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 직통 라인으로 보고가 됐다고 한다. 이 사건을 관리했던 사람은 당시 민정수석비서관 밑에 있던 서울시 5급 관료 출신 A 보좌관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 법원의 병원 측 무죄 판결문. | ||
하지만 민정수석실에서 노 전 대통령에게 “조카며느리가 애를 낳다가 죽었다”고만 보고했다고 한다. 의료사고일 가능성에 대해서는 숨기고 보고한 셈인데 이는 “삼촌에게는 그냥 애를 낳다가 죽었다는 정도로만 알려달라”는 김 씨의 요청에 따른 것. 김 씨의 어머니 노 씨 역시 “(며느리 사망 사건으로) 오빠에게 직접 전화를 하거나 연락한 적은 없다”며 “너무 화가 나고 눈물도 나긴 했지만 아들한테 다 맡겼었다”고 전했다.
두 사람 모두 노 전 대통령에게 누를 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사고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의료사고)은 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 씨는 이후 병원과의 손해배상청구소송 재판진행과정에서도 노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청와대 측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청와대 측 인사들이 직접 I 산부인과 병원 측에 압력을 가한 적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의 인사 A 씨는 “당시 청와대나 정부 측에서 전화가 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다만 I 산부인과 병원 측 관계자들은 “(당시) 의약국 블랙 리스트에 병원 이름이 올라갔다는 말이 나왔었다”고 말했다. 당장은 청와대의 보복으로 보일까봐 직접적인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서울시 의약국에서 I 산부인과를 리스트에 올려놓고 차츰 목을 조일 것이란 얘기가 있었다는 것. 하지만 이 역시 사실 확인이 불가능했다.
I 산부인과 측은 피해자의 신분을 알고나서부터는 안절부절못했다고 한다. ‘병원이 폐업되고 담당의사뿐만 아니라 병원장까지 구속될 것’이라는 흉흉한 얘기들이 나돌아 몹시 힘들었다고 A 씨는 말했다.
일반 의료사고와 마찬가지로 병원 측은 피해자 측과 합의를 시도했다. 한때 양측은 거액의 합의금을 놓고 피해자 측이 관련자들의 구속을 면하게 해주고 의약국 리스트에서 I 산부인과를 빼주는 조건으로 흥정하기도 했으나 결국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고 씨가 후송됐던 대형병원에서는 신분을 알 수 없는 사람들로부터 여러 차례 전화가 걸려왔었다고 한다. 이 병원의 원무과장 원 아무개 씨는 “(당시) 전화를 몇 차례 받았다. 그러나 압력이라기보다는 일(환자의 상태)의 진행상황을 묻는 정도였다”고 말했다. 당시 청와대에서는 보좌관쭭비서관쭭서울시 의약국의 단계를 거쳐 고 씨가 숨진 병원으로 연락을 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한 인사는 “청와대에서 전화를 한 것은 병원 측의 진단에 불신감을 갖고 있는 김 씨에게 정확한 사고상황과 경과를 설명해 주기 위해 알아본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노 전 대통령의 조카 김 씨는 결국 I 산부인과 측을 상대로 소송을 벌였다. 3년여의 기나긴 법정다툼이 벌어졌지만 결국 패소했다. 사건을 담당한 서울북부지방법원에서는 지난해 7월 의료사고 혐의에 대해 의사의 무죄를 선고했다.
노 전 대통령의 조카가 의료사고소송에서 패소하고 말았던 것이다. 김 씨는 기나긴 법정공방에 지쳐 결국 항소를 포기했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