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창달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 이후 열린우리당 초선의원들에 대한 당 지도부의 불만이 노골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5월31일 열린우리당의 17대국회 첫 의총 장면과 천정배 원내대표. | ||
특히 당 지도부는 박창달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사태에 큰 충격을 받은 듯하다. 열린우리당 내 선거법 위반 여부를 조사받고 있는 의원들 중심으로 30~40명 정도가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분석됐기 때문이다. 선거법 위반에 걸려있는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대개 초선 의원들이다. ‘박 의원 같은 경우가 언제 내게 벌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 법한 열린우리당 내 반란표의 주역들이 대부분 초선 의원들인 셈이다.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17대 개원 이후부터 ‘백팔번뇌’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당 소속 1백8명 초선 의원들을 통제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동안 당 지도부는 ‘새 정치 패러다임에선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해야 한다’는 논리로 넘어왔지만 박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엔 적잖게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최악의 경우 문제가 많은 초선 의원들을 포기하고 대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여기서 ‘대안’이란 바로 민주당과의 재결합 모색이다.
당 소속 초선의원들에 대한 당 지도부의 불만은 이제 노골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박창달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 다음날인 지난 2일 천정배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체포동의안 부결에 대해 “인사문제여서 의총에서 좀더 자세히 설명했어야 하지만 (박 의원을) 비난하듯 설명하기 힘들어 적극 대처 못한 점이 뼈아프다”고 말했다.
같은 날 오전 한명숙 상임중앙위원은 SBS 라디오에 출연해 “당론을 정하면 다른 의견이 있더라도 승복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해 초선의원들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열린우리당의 한 고위관계자는 “당 지도부에선 선거법 위반에 걸려있는 초선들이 박 의원 체포동의안에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보고 있다. 체포동의안 투표 당일 의총에서 당 지도부는 ‘국회의원 특권 남용의 대표적 사례인 불체포 특권에 대해 의원들 스스로가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자’고 촉구했다. 이는 우리당의 총선 공약이기도 했다”라며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총선과정에서 열린우리당 공천과정에 참여한 한 당직자는 “당 지도부 내에서 (선거법 위반과 관련해) 문제가 많은 초선들을 더 이상 감싸주지 말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6월18일 남궁석 사무처장이 시·도당위원장 회의에서 ‘의원직 상실 위험지구’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읽는 해프닝이 벌어진 바 있다. 이때 거론된 의원들은 이상락(성남 중원) 오제세(청주 흥덕갑) 강성종(의정부을) 김기석(부천 원미갑) 김맹곤(김해갑) 복기왕(아산) 오시덕(공주·연기) 유필우(인천 남갑) 의원 등 모두 초선들이었다. 신기남 의장이 “이런 걸 뭐 하러 냈느냐”고 언성을 높이며 보고서를 모두 거둬들여 일단락됐지만 선거법과 관련해 ‘의원직 상실’ 사태에 이를 수도 있는 초선들에 대한 위기감이 당 지도부에 이미 팽배해 있음을 보여준 사례였다. 현재 1백52석을 갖고 있는 열린우리당은 이날 거론된 초선의원들 중 3명 이상의 의원직이 상실될 경우 과반 의석 확보 정당의 자리를 잃게 된다.
열린우리당의 한 고위관계자는 “박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로 당 지도부가 문제 많은 초선들에 대해 ‘포기 상태’까지 이른 것 같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이 관계자는 “당 지도부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일부 인사들이 ‘허물 많은 초선들 대신 민주당과의 공조를 적극 모색하자’는 의견을 개진한 상태”라 덧붙였다.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이르면 내년 4월에 열릴 재선거에서 현재의 민심을 고려할 때 열린우리당이 한 석도 못 건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힘들게 이룩한 과반 의석 확보는 물거품이 되고 국정이 혼란 속으로 빠져들게 될 것”이라 전망했다.
▲ 우리당-민주당의 공조와 관련해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일정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사진은 지난 6월14일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연설하는 김 전 대통령.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열린우리당의 한 호남권 의원은 “일부 초선 의원들이 의원직을 잃고 나면 열린우리당은 과반 이하 의석을 갖게 될 것이고 이번 지방 재보선에서 기사회생한 민주당이 ‘캐스팅 보트’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그 전에 민주당과의 공조의 길을 터 놓아야 한다”고 밝혔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공조가 말처럼 그리 간단한 것은 아니다. 민주당을 박차고 나간 열린우리당에 대해 민주당 인사들은 아직도 반감을 갖고 있다. 그러나 ‘당대당 통합’같은 극단적 방법까진 못 가더라도 정책 공조 정도는 가능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불법자금 혐의로 검찰은 민주당 한화갑 대표에 대해 구속영장 집행을 하려다 실력저지당한 바 있다. 그런데 영장 재청구를 천명하던 검찰은 6·5재보선 직후 ‘공당의 대표를 구속하기엔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는 이유로 한 대표에 대해 불구속 기소를 했다. 한 대표가 당분간 ‘제약 없이’ 정치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 대표에 대한 영장집행 시도에 대해 ‘여권의 탄압’이라 주장하던 민주당 입장에서도 더 이상 여권을 향해 핏대를 세울 일이 없어졌다. 열린우리당과의 공조 가능성에 대해 민주당 장전형 대변인은 “민주당의 정통성을 훼손하는 일만 없다면 국민들을 위한 정치적 공조는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라 밝혔다.
민주당 인사들과 우호적 관계를 맺고 있는 이해찬 신임 국무총리의 행보도 눈여겨볼 만하다. 국회 총리인준동의안이 가결되자마자 국회 본회의장에서 제일 먼저 이해찬 신임 총리에게 다가가 축하인사를 건넨 사람은 민주당 이낙연 의원이었다. 이 의원은 지난 총선 직후 ‘열린우리당행이 가장 유력한 인사’는 평을 듣기도 했다. 두 사람이 서로를 붙잡고 기뻐하는 모습에 일각의 ‘수군거림’도 있었지만 이낙연 의원측은 “평소 친분이 두터웠기 때문에 축하인사를 건넨 것일 뿐”이라 일축했다.
그러나 정가에선 노 대통령이 이 신임 총리에게 ‘국회와의 원활한 관계 구축’을 당부한 점이나 노 대통령 측근인 문희상 의원이 총선 직후 민주당 소속 낙선자들 모임에 참석하는 모습을 보면서 ‘열린우리-민주’공조 가능성을 높이 점치는 시각이 늘어나고 있다. ‘열린우리-민주’공조의 첫 단추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행보를 통해 가능할 것이란 평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여권에서 DJ 대북특사론이 재부상하는 등 정국타개의 해법을 DJ의 행보를 통해 찾으려는 단서들이 발견되고 있다.
지난 1일 천정배 원내대표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가까운 시일 내에 여야 지도부가 함께 북한을 방문해 북한의 책임 있는 인사들과 남북 국회회담을 비롯한 다양한 교류방안을 진지하게 논의하자”고 말하면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까지 촉구했다. 김 위원장의 답방은 DJ가 지난 2000년 방북했을 당시 김 위원장으로부터 ‘약속받은’ 사항이다. 지난 6월29일부터 중국을 방문중인 김 전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의 특사와 만나 김 전 대통령의 방북문제와 김 위원장의 답방문제에 대한 협의를 가졌다는 이야기가 열린우리당 내에 퍼져있는 상태이기도 하다.
열린우리당의 한 관계자는 “현재 우리당 지도부는 선거법 위반에 걸려있는 열린우리당 초선의원들의 대거 의원직 상실로 여권의 과반의석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민주당과의 공조가 검토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DJ를 매개로 한 대북 정책 공조가 그 연결고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합당 논의까지는 좀 더 두고봐야겠지만 내년 4월 재보선 이전엔 가시적 성과를 내야하지 않겠나”라며 양당 공조를 위한 물밑 작업이 급물살을 탈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