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잠적 40일 만에 지팡이를 짚은 채 모습을 드러냈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14일 김정은이 평양에 완공한 위성과학자주택지구를 현지 지도했다고 보도했다. 연합뉴스
김정은이 다시 등장했다. 지난 9월 3일 모란봉악단 신작 음악회 관람을 끝으로 자취를 감춘 지 무려 40일 만이다. 김정은은 9월 25일 최고인민회의와 10월 10일 당 창건기념일(일명 쌍십절) 등 굵직한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더욱 의문을 자아냈다. 무엇보다 건강이상설에 휘말리며, 한때 북한 내 급변사태가 일어난 것 아니냐는 소문이 국제사회에서 설득력을 얻기도 했다.
40일 만에 등장한 김정은은 이러한 의혹을 다소나마 불식시켰지만, 그의 모습은 정상이 아니었다. 평안남도 위성과학자주택지구 건설현장에 모습을 드러낸 김정은은 지팡이에 의지하고 있었다. 40일 전, 절뚝거리던 그의 다리는 여전히 불편해 보였고 이전과 비교해 고도비만 역시 심각해 보였다. 도무지 갓 서른을 넘긴 청년의 모습이라고는 보기 어려웠다.
영국 <데일리메일> 등 외신에서는 김정은이 최근 중국에서 고도비만 치료를 위해 ‘위절제술’을 받고 왔다는 보도를 하기도 했다. 국내 의학계 관계자들도 심각한 수준의 고도비만으로 하체 골격과 근육계에 이상이 온 것으로 추측하기도 했다. 심지어 현재의 상황을 놓고 볼 때, 혈관질환을 포함한 내분비계에도 문제가 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여기에 서른도 안 돼, 갑작스레 나라를 짊어진 젊은 지도자가 겪을 압박과 정신적 스트레스 역시 그의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여겨졌다.
북한 표현에 의하자면 영도자의 건강이상은 곧 체제의 불안을 의미한다. 현재 김정은의 상황만 놓고 본다면, 북의 내부에서도 만에 하나 있을 수 있는 급변사태를 대비하기 위한 준비는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이에 따라, 김일성 일가를 뜻하는 ‘백두산 줄기’, 이른바 로열패밀리의 구성원들의 역할과 향후 권력 구도가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김정은을 둘러싼 백두산 줄기 인사들 중 가장 주목을 받는 이들은 세 명이다.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43), 이복누나 김설송(41), 그리고 동복동생 김여정(26), 이른바 ‘3김’이다. 이밖에 김정은의 작은형인 김정철(33)은 일찌감치 후계자 경쟁 탈락 이후 현재 상당 시간을 해외에서 머무는 것으로 관측된다. 이 때문에 향후 권력구도에 있어서 김정철의 역할은 상당히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앞서의 3김은 같은 백두혈통 인사지만, 그 배경과 구도의 차이는 확연하다.
사실 최근 일었던 북한의 급변설과 함께 가장 주목 받은 인사는 김정남이다. 그는 현재 중국의 절대적 보호 아래 홍콩과 마카오 등지서 기거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NK지식인연대 박건하 사무총장은 “중국 입장에서 북한의 급변사태가 발생한다면, 현재로선 김정남을 활용할 가능성이 제일 높다”며 “현재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함부로 김정남을 손대지 못하는 것은 그 뒤에 자리 잡고 있는 중국의 힘 때문”라고 지적했다.
이윤걸 대표 역시 “(아직 일부 잔존세력이 존재하긴 하지만) 중국과 연결된 장성택 라인은 끝났다. 중국 입장에서 김정남은 훗날 사용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카드”라고 전제한 뒤 “북한의 체제가 완전히 망하지 않는 한, 어차피 백두혈통 인사가 필요할 것이다. 중국 입장에서 본인들이 가장 원하는 북한의 중국식 개혁개방을 실현할 적임자는 김정남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또 한 가지, 김정남이 쥐고 있는 카드는 아직 김정은에 ‘인수인계’가 되지 못하고 있는 비자금의 존재다. 김정남은 줄곧 해외에 머물며 아버지 김정일의 비자금 상당 부분을 해외 각급 인사들과 함께 관리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국제사회의 조치로 인해 상당액의 통치자금 인수인계가 어려워진 상황 속에서도 그 열쇠를 풀 인사는 김정남밖에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더군다나 해외 비자금 관리에 있어서 큰 지분이 있었던 장성택의 죽음으로 인해 이러한 점은 더욱 부각될 전망이다.
중국이라는 배경과 함께 돈줄을 쥐고 있는 김정남의 최대 장점은 어찌됐건 외부에서 기인하는 힘이다. 반대로 그는 여전히 북한 내부에서 적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다. 급격한 수준의 사태가 발생해 중국을 포함한 외부의 개입 여지가 생기지 않는 이상, 그의 배경과 힘 역시 북한 내부에서 발현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김정남과 다르게 주목받고 있는 김설송과 김여정은 북한 내부에 기반한 백두혈통이다. 하지만 두 명의 스탠스 역시 확연하게 갈린다. 우선 김정은 시대 들어 표면적으로 주목 받고 있는 인사는 김여정이다. 1988년생으로 추측되는 김여정은 김정은의 유일한 동복 여동생으로서 이전 김정일 시대의 김경희와 비견되고 있다. 김정은 입장에서 가장 가깝고 믿을 수 있는 인사는 김여정이다. 즉 김여정의 스탠스는 현재의 최고지도자이자 친오빠인 김정은에 두고 있다.
이러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듯, 김여정은 김정은 시대에 유일하게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백두혈통 인사다. 그는 줄곧 김정은의 현지지도 현장에서 지근거리에 위치하며 오빠를 보좌했다. 현재 그의 정확한 직책은 알려진 바 없지만, 당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조직지도부의 수장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김여정의 지위는 다소 과장된 해석이라고 반박하는 시선도 만만찮다. 이윤걸 대표는 “김정은의 조직 장악력은 예전의 김정일과는 비교가 안 된다. 겉으론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대외관계에 있어선 상당히 궁지에 몰린 북한이다. 이는 결국 그의 경험과 어린 나이에서 오는 어쩔 수없는 현상”이라며 “하물며 김정은도 현재 어려운 상황인데, 이보다 나이가 더 어리고 경험도 일천한 김여정이 얼마나 큰 힘을 쥐고 있겠는가. 현재로서 무척 불안한 김정은이 무너진다면 김여정은 아무 것도 없다”고 주장했다.
3김 중 가장 큰 변수는 김정은의 이복누나인 김설송이다. 김설송은 여전히 단 한 번도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아직 확인된 공식 직함 역시 없다. 줄곧 모습을 드러낸 앞서의 김여정이나 해외에서 이따금 목격된 바 있는 김정철과는 확연한 차이다. 한 북한 전문가는 “사실 우리 정부에도 김설송과 관련한 확실한 정보는 많지 않다. 지금으로서 나머지 인사와 비교해 가장 주목하고 있는 인물은 김설송”이라며 “그가 미칠 향후 권력 구도에서의 영향력이나 여파 역시 예측이 어렵다”고 진단했다.
다만 최근 북한 내부의 정보에 따르면, 김설송이 당에서 차지하고 있는 지분은 상당하며, 더 나아가 실질적인 체제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있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무엇보다 선대인 김정일이 슬하의 자녀 중 가장 아낀 이가 김설송이었으며, 실질적인 유훈집행자로 그가 지목되기도 했다. 앞서의 김여정이 김정은에 스탠스를 두고 있다면, 김설송은 김정은의 후견인으로서 앞서의 김정일에서 비롯된 실질적인 힘을 소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윤걸 대표는 “김정은은 국가안전보위부를 제외하곤, 자신이 키운 세력이 미미하다. 실제 김정은의 백그라운드이자 안전장치는 김설송의 역할”이라며 “만약 김정은이 변고가 생긴다면, 김설송이 나설 것이다. 다만 본인이 직접 나서기보다는 김정철과 같은 타자를 내세우며 지금과 같은 후견인으로서의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어찌됐건 북한은 여전히 여성이 전면에 나서기 어려운 사회”라고 지적했다.
김정은의 건강이상설이 계속되는 한, 북한 내부의 변고 및 급변사태 가능성은 꾸준히 제기될 전망이다. 향후 이에 대해 대비하고, 대안을 세워야 할 당사자인 백두혈통 3김의 동향은 유심히 지켜볼 대목이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