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계천 복원 후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어 상권이 무너진 청계천 주변의 상가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단일 상가로는 아시아 최대인 동남권유통단지가 오는 12월에 완공을 앞두고 있다. 10월부터는 계약도 시작된다. 하지만 계약이 코앞에 다가왔는데 청계천 상인들은 이주에 대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청계천상인대책연합회의 조사에 따르면 “당초 이주를 원했던 상인 6000여 명 중 소수만이 계약에 참여할 것”이라고 한다. 청계천 상가들은 어차피 서울시의 도심 부적격 사업 정리 계획에 따라 점점 더 영업을 하기 힘들어진다. 게다가 하천 복원 이후 상권이 무너져 업소의 매출도 예전에 훨씬 못 미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동남권유통단지 이주를 거부하고 있다. 오히려 상인들은 “서울시가 동남권유통단지를 미끼로 자신들을 이용했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청계천 상인들의 항변과 함께 서울시의 입장도 들어보았다.
한때 청계천 상가는 상인과 손님들로 늘 북적이던 곳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사정이 다르다.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사람들은 도로 밑으로 뻗어있는 하천을 따라 걷는다. 게다가 관광을 목적으로 찾아오기 때문에 상가를 찾는 사람들은 드물다. 상가 주변의 유동인구가 없어진 셈이다. 심지어 “아직도 청계천에 상가들이 있나”라고 묻는 시민들이 있을 정도다. 그만큼 상권이 망가졌다.
청계천에서 공구점을 운영하고 있는 청계천상인대책연합회(상인회) 원명학 회장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점포 매출이 청계천 복원 공사 이전에 비해 4분의 1로 줄었다. 2억 5000만 원에 달했던 권리금은 날아간 지 오래다. 청계천 상가 거리에는 물건을 사러 온 사람은 없고 주변 상인들만 서성거리고 있다. 원 회장은 “그나마 도로변에 위치한 점포는 입에 풀칠은 하지만 상가 건물 안쪽의 업체들은 이미 손 털고 나간 곳이 많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은 청계천 복원 사업을 하면서 이미 예견됐던 일이었다. 그래서 상인들은 하천 복원을 맹렬히 반대했다. 그 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당시 청계천 상인들에게 동남권유통단지 이주를 약속했다. “하천 복원되면 상권이 죽는다”는 상인들의 반발을 무마시키기 위한 묘책이었다. 상인들의 주장에 따르면 당시 이명박 시장은 “조성원가 분양은 물론, 4.5%의 저리로 100% 융자해주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한다.
서울 송파구 문정동의 동남권유통단지는 꽤 유망한 상권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강남 인근인 데다 근처에 송파신도시, 법조타운까지 들어서는 곳이라 입지 여건이 굉장히 좋은 편”이라고 설명한다. 입지 여건도 좋고 조성원가에 분양받을 수 있는데다 저리로 융자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제반 조건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청계천 상인 6000여 명이 이주 신청을 했다. 그리고 청계천 복원 반대 여론도 잠잠해졌다.
그런데 상황이 변했다. 4.5%의 저리 융자가 아닌 7%의 대출 이율이 책정됐다. 그동안 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한 탓. 또 조성원가도 많이 올랐다. 당초 서울시에서 평균 8000만~1억 원이면 7평 규모의 점포를 분양받을 수 있다고 상인들을 설득했으나 공사가 막바지에 다른 현재는 분양가가 평균 1억~1억 6000만 원, 목이 좋은 자리는 2억 원이 넘었다.
▲ 청계천 상가들이 이주할 예정인 서울 송파구 문정동의 동남권유통단지의 건설 현장 모습. | ||
하지만 청계천 상인들은 “허허벌판에 건물만 있는 곳에 가서 관리비와 인건비만 축내고 어떻게 장사를 하란 말이냐”고 즉각 반발하며 “적어도 2년 정도 이중영업을 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만 이주를 할 수 있다”고 요구했다. 또 상인들은 “현재 청계천 상권이 죽어 적자에 허덕이는 상황에서 아무런 상권이 없는 곳에 이주하라는 것은 죽으라는 얘기”라고 항변했다.
상인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서울시도 한 발 물러섰다. 3개월 동안 이중영업기간을 보장한 것이다. 하지만 상인들이 “동남권유통단지의 상권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최소 3년이 필요한데, 3개월이란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서울시 청계천 이주기획팀 관계자는 “시에서도 현재 상인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어 이중영업기간을 연장할지에 대해서 재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조성원가나 대출 금리 등은 조정 불가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조성원가는 상가의 특수성을 감안해 설계하다 높아진 측면이 있고 원자재 가격 상승, 부대시설 증가에 따른 전용면적의 증가 등의 요인으로 상승한 것이며 금리 또한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청계천 상인들이 100% 이주하기를 바라고 있다. 동남권유통단지에 청계천 상인이 입주하지 않으면 원래 조성 취지가 무색해지기 때문이다. 상인들의 반발이 심해지면서 이주에 차질을 빚을까 우려한 서울시는 최근에 이주 신청을 한 6000여 명의 상인들을 대상으로 재차 확인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이주 신청한 상인들 중 76%가 이주할 생각이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상인회의 자체 조사에 따르면 “실제로 계약을 할 회원은 10%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주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는 영세업자들일수록 더 강도가 심했다. 청계천에서 만난 한 상인은 “그나마 돈이 있는 사람들이나 이주를 생각할 수 있지 우리 같은 일반 상인들 엄두를 못 낸다”고 전했다. 또 다른 상인은 “이주를 하겠다는 상인들 중 대부분은 실제 장사가 아닌 투자 목적”이라고 꼬집으며 “어떻게든 청계천에서 버텨보다가 안되면 다른 곳에 가서 장사를 하겠다는 상인이 대부분이다”고 전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실제로 “동남권유통단지를 감정평가한 결과 조성원가의 두 배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런 점 때문에 투기의 소지가 다분해 전매 제한 3년으로 못 박았다. 하지만 이 전매 제한 역시 이주를 계획한 상인들이 계약을 꺼리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기도 하다.
이래저래 동남권유통단지로 이주할 청계천 상인은 소수가 될 분위기다. 상인들은 이에 대해 “그동안 서울시가 우리를 청계천 복원을 위해 이용했다”며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서울시 역시 동남권유통단지가 텅텅 빈 상태로 ‘오픈’하게 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일반 분양을 해서라도 100% 입주를 통해 상권을 활성화시키는 게 이주를 한 청계천 상인들을 위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반분양을 하게 되면 여기서 발생하는 시세차익에 대한 논란과 청계천 상인들의 이주라는 원래 취지가 달라졌다는 비난 여론이 거셀 것으로 예상된다. 아시아 최대의 단일상가인 동남권유통단지가 자칫 ‘애물단지’로 전락할 수 있는 상황이다.
류인홍 기자 ledh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