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2년 3월16일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 광주 경선에서 당시 노무현 후보가 예상을 뒤엎고 1위를 기록했다. 이 ‘광주혁명’이 사실상 참여정부 출범의 일등공신이 된 셈이다. | ||
특히 그동안 정치권 내에서 ‘말로만 떠돌았던’ 호남지역 인사의 ‘홀대’와 관련 구체적인 숫자를 거론한 문제제기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당 관계자는 “최근 열린우리당 호남지역 의원들 사이에서 공감대를 얻고 있는 문제의식을 총정리한 것으로 열린우리당에 대한 호남지역의 민심을 대변한 보고서”라고 보고서 성격을 규정했다.
보고서의 전문을 입체적으로 분석해봤다.
‘호남의 민심동향과 지원방안’이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호남소외론의 심각성과 함께 지역현안들과 관련된 ‘지역의 요구사항’을 담고 있다. 특히 호남소외론이 나오게 된 원인에 대해 이 보고서는 “영남중심적 사고가 가장 큰 문제였다”고 지적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먼저 호남소외론이 나오고 있는 배경에 대해 이 보고서는 “영남중심사고와 정책으로 호남지역에서 반감이 발생했으며 그동안 절대적 지지를 보여준 호남지역의 정치적 선택에 비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면서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또 당과 정부의 영남중심적 사고의 근거로 “지난 도지사 보궐선거 당시 김혁규 의원의 대통령 선물발언, 당지도부와의 만찬에서의 대통령의 영남인사 배려 발언, 김혁규 총리후보 지명 파동, 일부 영남인사들의 낙후지역 발언, 영남발전특위 구성 파동, AFEC회의 부산개최 결정” 등을 들었다.
보고서 내용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정부의 인사정책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 부분. 그동안 인사문제에 대해서는 ‘설’만 무성할 뿐 구체적인 정황을 적시한 비판이 가해진 예는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사문제의 범위를 청와대뿐 아니라 행정부·경찰·검찰 등 정부 각 부처로 확대시켰다는 점, 구체적인 숫자를 거론하고 있다는 점 등이 눈에 띈다.
이 ‘호남보고서’는 “호남소외론의 근거 중 인사문제가 가장 심각하다”고 전제하고 “외형적 통계상 지역별 균형감을 갖추고 있는 듯하나 청와대와 행정부, 검찰·경찰 등의 핵심요직에는 호남인물이 절대적인 약세를 보이고 있다”고 적고 있다. 먼저 청와대 인사와 관련, “출신지가 확인된 42명의 비서관 이상의 직급에서 영남은 22명(부산 4명, 경남 11명, 대구 1명, 경북 6명)인 반면, 호남은 불과 9명(전남 6명, 전북 3명, 광주 0명)으로 호남출신 배치가 절대적으로 약세이며, 특히 핵심정책 결정라인이라 할 수 있는 주요 수석과 비서관직에는 인사수석을 제외하고 거의 영남인맥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청와대 인사정책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나아가 “이러한 인적구성으로 인해 청와대의 주요 정책결정과정과 공직인사 등에 있어 영남 중심적 판단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호남 소외론’의 판단적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부분과 관련, 호남지역의 당 관계자는 “실제로 호남지역의 여론이나 민원을 청와대 측에 전달하고자 해도 통로가 없다”고 말하고 “정찬용 수석 정도가 호남지역에서는 ‘우리사람’으로 통하는데 인사수석이라는 자리에 있는 분에게 지역민원을 부탁하기가 쉽지 않다. 반면 영남의 경우 청와대의 주요 요직이 영남권 출신으로 채워져 있지 않나”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노무현 정부의 행정부처에 대해서도 “지역 예산과 산업 육성에 영향이 큰 정보통신부, 산업자원부와 기획예산처의 장·차관에는 호남출신은 전혀 없고 영남출신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지적하고 “산업자원부와 기획예산처는 장·차관이 모두 영남출신으로 배치되어 있어 역대 정권에서도 보기 힘든 인사라는 비판이 있으며 핵심사업에 대한 지역별 지원과 내부 인사에서 호남출신의 소외가 심하다는 비판이 있다”고 민심을 전했다.
검찰·경찰 인사에 대한 지적도 눈에 띄는 부분. 보고서에 따르면 “검찰의 경우 대검 차장급 이상 출신지별 비교는 호남출신이 24.8%인 반면 영남출신은 40.7%에 이르는 심각한 불균형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의 경우 호남출신 간부들은 참여정부 이후 한직에 발령받거나 핵심라인에서 벗어나 있다”고 밝히고 있는데 특히 경찰부분에 대해서는 “영남과 충청 출신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경찰의 수뇌부가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 지지자였다는 사실이 호남지역 출신의 경찰들의 사기저하와 불만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부분은 사실관계가 불분명한 것으로 만약 사실로 드러날 경우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실제로 검찰·경찰의 지역별 편중인사 문제는 참여정부 초기부터 문제로 지적돼 왔던 부분이었다. 그러나 이전 정권에 비해 비교적 공정인사가 이뤄져 왔다고 정부와 여당은 지금까지 주장해왔다.
지난해 4월 법무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검찰의 경우 검사장급 이상 고위 검찰 간부의 경우 영남 44.7% 호남 21%였다. 당시 법무부는 “검사장 이상 고위간부를 배출한 연수원 3~9기의 검사 50명 가운데 영·호남 출신이 각각 46% 18% 인 점을 감안하면 특정지역 편중은 없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6월23일 청와대에서 수석 보좌관 회의를 주재하는 장면. ‘호남의 민심동향과 지원방안’ 보고서는 ‘청와대 핵심요직에 영남인맥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또 이 관계자는 “지난 정권에서 호남은 역차별이라는 말까지 들어가며 영남지역에 대한 배려를 해왔다. 그래도 당시에는 정권의 주류가 호남지역 인사들이었기 때문에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정권의 영남지역 출신들은 지난 정권 당시 호남인사들이 영남에 보여준 배려의 절반도 (호남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이 보고서는 인사문제만큼이나 지역개발문제에 대한 정부 지원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보고서는 “개발독재시대의 정치적, 경제적 소외로 낙후된 지역기반을 지니고 있는 호남은 참여정부에서 이러한 폐단이 시정되기를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며 “그러나 참여정부의 균형발전 정책이 지역간의 형평성에 치우치다 보니 영남지역에 비해 수십 년 낙후되어 있는 차이를 극복하기 어려운 한계를 나타내고 있다”고 밝혔다.
나아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외론에 근거한 호남민심의 실체를 분명하게 직시할 필요가 있으며, 정부의 차별화된 지원정책과 핵심직위에 대한 인사배려 등 가시적이고 구체적인 조치를 통해 민심의 회복을 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역발전 문제와 관련, 보고서는 ‘광주문화수도 조성사업 관련’, ‘광주를 FTTH 선도모델도시로 구축’, ‘호남고속철도계획 조기확정 및 착공’, ‘첨단과학산업단지의 R&D특구 지정’, ‘통합전산센터 광주 유치’, ‘공공기관 지방이전’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이 ‘호남보고서’와 관련 열린우리당의 한 관계자는 “그 동안 호남지역에서는 청와대를 상대로 수차례에 걸쳐 민심동향과 호남지역 발전문제 등을 포함한 각종 의견을 개진해 왔고 답변을 기다려 왔다. 그러나 현재 정부의 대 호남인식은 우리를 실망시키기에 충분했다”며 “집권 초기부터 호남관련 정책을 계속 올렸음에도 정부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지역에서는 배신감을 넘어 현 정부에 대한 분노를 느끼는 수준이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또 “청와대측으로부터 합당한 답변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지금 호남지역은 지난 전남도지사 선거 패배 이후 비상상황을 맞고 있다. 청와대에서도 이러한 긴급함을 충분히 인지하여 우리를 이해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만약 이번에도 지금까지처럼 미봉책으로 일관함으로써 호남 끌어안기에 정부가 적극 나서지 않는다면 호남지역도 나름대로의 살길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해 정부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대결할 수도 있음을 강력히 시사했다.
호남 지역에서 느끼는 소외감은 지난 전남지사 선거 이후 급속히 커져가고 있다는 것이 당 관계자들의 설명. 보궐선거에서 패배한 이후 올 10월로 예정된 광주시장 보궐선거 결과가 불투명하다는 여론이 커지면서 위기감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당 관계자는 “이대로라면 10월 광주시장 선거는 필패할 수밖에 없다. 민심의 이반이 정도를 넘어서고 있다. 정부와 열린우리당을 지지해 주었던 호남민심이 다시 민주당으로 돌아가고 있고 반 열린우리당 정서마저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며 “정부 차원의 특단의 조치가 없는 이상 호남을 잃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게 된다면 이 정권의 근간이 흔들리게 될 것이다”고 위기감을 표현했다.
한편 지난 8일 전남지역 의원 5명은 주승용 의원(여수갑)실에서 모임을 갖고 오는 13일 성명을 발표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 소식이 전해진 이후 열린우리당 광주지역 국회의원들과 정찬용 청와대 인사수석은 같은 당 전남지역 의원들을 상대로 성명서 발표 자제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와 관련, 양형일 광주시당 위원장은 “성명 발표가 순기능적인 역할도 있지만 내년도 예산투쟁을 앞둔 중요한 시점에서 적절치 않다는데 광주의원들이 공감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정 수석도 “정부 각 부처 장관들을 만나 지역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게 낫다”며 집단행동에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재선인 김태홍 의원(광주 북구을)은 여권 일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호남소외론 조장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광주와 전남 의원들이 힘을 모아 공동성명서를 내야 한다고 주장을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