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간 신출귀몰하며 한 자동차 공업사만을 50여 차례 넘게 털어왔던 한 절도범을 잡은 후 경찰이 밝힌 소감이다. 일주일간 힘겨운 잠복 끝에 범인을 검거한 경찰의 말치고는 이례적이지만 이 공업사의 주인도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는 후문이다. 과연 범인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리고 그는 무슨 억하심정에서 이 가게만을 노렸던 것일까.
자동차 공업사를 운영하던 신 아무개 씨(55)는 지난 1년간 단 한 번도 맘 편히 잠을 자본 적이 없었다. 1년 전부터 자신이 운영하던 가게에서 밤 사이 사소한 물건들이 사라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값비싼 기구 같은 것들이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끊임없는 도난사고는 신 씨에게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니었다.
도난 사고가 계속 이어지자 신 씨는 ‘내부자’들을 가장 먼저 의심했다. 현금이 없어져도 1만~2만 원씩이고 고물이 사라져도 소량이라 신 씨는 범인이 내부자일 거라고 생각했다는 것. 전문 절도범의 소행이라고 하기엔 피해 규모가 너무 작았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신 씨는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직접 범인을 잡기로 결심했다. 붙잡아서 따끔하게 혼을 내주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신 씨는 우선 공업사 직원들 몰래 250만 원을 들여 CCTV(폐쇄회로 텔레비전)를 설치하고 매일 아침 확인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드디어 신 씨는 CCTV 속에서 범인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신 씨의 예상과는 달리 CCTV 화면 속에서 여기저기를 뒤지며 돌아다니고 있는 사람은 생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간의 고생 탓이었을까. 신 씨는 범인을 직접 잡고 싶었다. 신 씨는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직원들과 상의해 잠복에 들어갔다.
하지만 좀처럼 범인을 잡을 수 없었다. 희한하게도 범인은 신 씨가 어쩌다 잠복을 안할 때만 공업사를 ‘방문’했다.
결국 신 씨는 직접 범인을 잡는 것을 포기하고 사건이 시작된 지 약 1년 만인 지난 10월 11일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곧바로 잠복에 들어갔다. 정확히 일주일 후인 지난 18일 새벽 2시경. 비가 추적추적 오던 그날 경찰은 안개 속에서 나타난 범인 이 아무개 씨(49)를 마침내 검거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씨를 잡은 경찰들은 “범인을 잡고 나면 홀가분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마음이 불편해졌다”고 밝히고 있다. 일주일간 잠복하느라 몸도 마음도 지친 경찰이 이런 말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이번 사건을 담당했던 청주 흥덕경찰서 형사 5팀 이상목 형사는 “그는 질 나쁜 놈도 파렴치범도 아닌 불쌍한 사람이었다”며 혀를 찼다.
경찰에 따르면 이 씨는 10년 전까지만 해도 청주의 한 버스업체에서 정비사로 일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회사가 경영난을 겪으면서 직장을 잃자 ‘막노동’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 왔는데 2년 전쯤부터는 그나마 있던 일용직 자리도 끊기고 말았다고 한다. 더구나 이 씨는 실직 후 속상함을 술로 달래왔는데 얼마전부터는 알코올중독 증상까지 보여 일자리를 구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가족도 집도 없던 이 씨가 2년이 넘게 생활했던 곳은 버려진 승용차 안이었다. 이 씨는 경찰에서 “여름에는 그나마 밖에서 잠을 잘 수 있었지만 한 겨울이 되면 아무리 이것저것 덮고 자도 추위를 견디기 힘들었다”며 “배가 고파서 어쩔 수가 없었다. 죄송하다”고 울먹였다고 한다. 이 씨가 생활했다는 자동차를 직접 봤다는 한 경찰은 “도저히 사람이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다 찌그러진 자동차 안에서 한 겨울을 보낼 생각을 해봐라”며 “어쩌면 이 씨가 이번 겨울을 나기엔 차라리 감방 안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씨가 이번에 공업사에서 훔친 물건의 목록만 봐도 이 씨가 얼마나 지독한 생활고를 겪어 왔는지 알 수 있다.
현금 130만 원 등도 있었지만 이 씨가 훔친 물건은 대부분 생계형 품목이었다. 경찰이 밝힌 목록은 라면 90봉지, 일회용 커피 40봉지, 담배 22갑, 소주 10병, 아이스크림 4개 등이었다. 그렇다면 이 씨는 왜 유독 신 씨의 가게만을 노려왔던 것일까. 경찰에 따르면 여기에도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 씨는 “그간 조금씩 물건을 훔쳤는데 들키지 않은 줄 알았다”며 “훔치지 않으려고 하다가도 춥고 배고프다 보니 밤이 되면 나도 모르게 그 곳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