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대표는 의원회관 사무실에 자신의 사진 대신 박정희 전 대통령 부부의 사진을 걸어놓고 있다. | ||
박 대표는 일단 ‘계승 박정희’ 쪽으로 방향을 잡았지만 당내에선 박 전 대통령과 확실하게 결별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 논란을 빚고 있다. 특히 이 같은 논란은 최근 불거진 박정희 전 대통령 향수 열기 및 친일진상규명특별법 등과 맞물려 증폭되고 있다.
실제 박 대표는 최근 부쩍 박 전 대통령과 관련된 향수를 드러내고 있다. 박 대표는 4·15 총선과 6·5 재보선 당시 지방을 다니면서 의도적으로 박 전 대통령의 향수를 자극할 만한 곳을 방문하거나 발언을 해왔다. 예를 들어 경북 구미를 방문해서는 “아버지께서 가장 애정을 쏟으시던 곳”이라고 말하는 등으로 박 전 대통령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박 대표는 대표 경선 당시에도 “신에게 12척의 배만 있다면 나라를 지키겠다”는 충무공 정신을 적극 활용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충무공의 골수팬이며, 충무공을 통해 박 전 대통령과의 연결을 시도한 셈이다. 이는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근 인터넷에 유포되고 있는 박 전 대통령 및 박 대표의 동영상도 같은 맥락이다. 박 전 대통령이 장모의 생일잔치에서 ‘아 으악새 슬피우던’으로 시작되는 <짝사랑>을 부르고, 박 대표는 새마을운동가를 불렀다. 박 대표의 머릿속에 뿌리깊게 박힌 박 전 대통령의 그림자를 쉽게 볼 수 있다.
박 대표는 자신의 인터넷 사이트에도 과거 박 전 대통령과의 추억을 드러내는 사진들을 다수 게재해놓고있다. 또 박 대표의 의원회관 사무실에도 박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다정했던 사진 두 장을 걸어놓고 있다. 자신의 독자적인 사진은 없다.
박 대표의 주변 여러 곳은 은근히 박 전 대통령의 이미지로 포장돼 있는 셈이다.
박 대표가 수첩을 들고 다니며 메모하는 습관도 아버지를 본받은 것이며, 개인적인 이해보다 애국심을 강조하는 모습도 박 전 대통령의 사고방식을 빼다 박았다는 지적이다.
한나라당에선 시간이 갈수록 박 대표가 더욱 더 박 전 대통령과 이미지 유착을 하는 것으로 분석하고있다. 이는 현재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인기가 50%를 상회하는 조건 속에서 나름대로 박 대표 인기를 유지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분석이다.
사실 정치입문 초기만 해도 박 대표는 박 전 대통령의 딸이란 사실을 상당히 부담스러워했다. 박 대표는 박 전 대통령의 유산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계승할 것은 계승하고, 아버지가 못다 이룬 민주화는 제가 마무리하겠다”고 강조해왔다. 당시엔 아버지 유산의 계승보다, 민주화를 이루지 못한 데 대한 부담을 먼저 가진 것으로 해석돼 왔다.
하지만 박 대표는 최근 들어 그 같은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박 대표는 대표직을 유지하면서 박 전 대통령의 애국심과 나라사랑 열정, 경제개발 등의 유산에 대해 오히려 관심을 높여온 것으로 분석된다. 박 대표는 대북정책 등에서도 유연했던 과거 입장과 달리 최근엔 “나라 경제가 먼저”라며 다소 보수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박 대표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연결짓는 것이 이젠 자연스럽고, 오히려 측근들에 의해 조장될 때도 있을 정도다.
반면 한나라당 소장파와 비주류들은 박 대표가 박 전 대통령의 이미지에서 적극적으로 탈피해줄 것을 주문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의 인기가 비록 현재 높게 나타나고 있지만, 이는 언제 꺼질지 모른다는 게 이들의 분석이다. 비주류들은 유신에 대한 여권의 검증이 본격화되면 박정희 신드롬이 순식간에 가라앉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오히려 박 전 대통령의 어두운 이미지가 확대되고, 박 대표가 독재자의 딸로 묘사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박 대표가 상생의 정치를 외치는데도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답보하는 것도 박 전 대통령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박 대표가 새롭고 건설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기보다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데 안주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재오 홍준표 의원 등은 특히 여권이 문화권력을 장악, 영화나 TV 등을 통해 박 전 대통령 깎아내리기에 나설 경우 박 대표의 인기도 한꺼번에 꺼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여권과 가까운 영화감독들이 벌써부터 유신의 문제점을 부각하는 영화를 5~6편 계획하고 있고, 방송에서도 유신시대의 어두운 과거를 부각하는 드라마들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친일진상규명법 역시 박 대표를 겨냥하고 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여권은 친일진상규명법에 박정희 전 대통령을 조사대상으로 포함시켰다. 지난해 말 국회에서 통과시킨 법안에선 박 전 대통령이 빠졌으나 열린우리당은 이번에 굳이 박 전 대통령을 포함시킨 개정안을 만들어 밀어붙이고 있다. 박 대표도 이는 아버지 이미지를 깎아내리려는 의도로 보고 여권을 비판하고 있다.
비록 지금은 박 전 대통령을 포함시킨 게 지나치다는 여론도 일정부분 조성되고 있지만 실제 친일진상규명에 들어갈 경우 박 전 대통령은 친일 인사로 낙인 찍혀 이미지에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최근 여권의 표가 다시 결집하는 것도 이와 연관돼 있다는 지적이다. 여권이 개혁적인 정책을 펴면 펼수록 사회적 논란이 확산되겠지만 여권표는 결집되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친일법의 경우도 어차피 개혁적 성향의 표를 결집시키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 상당수는 장기적으로 박 대표의 ‘박정희 마케팅’이 도움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다. 박 대표의 성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미지에서 얼마나 빨리 탈피해 독자적인 이미지를 형성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박 대표도 이 같은 점을 의식, 전당대회 이후 독자적인 개혁 아젠다를 선점하는 등 대변신에 나설 것을 검토중이다. 하지만 박 대표는 기본적으로 나라에 대한 걱정이 너무 앞서다 보니 박 전 대통령의 스타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박 대표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그늘에서 어떻게 벗어나느냐가 결국 대권가도에 나선 박 대표의 가장 큰 과제로 떠오르고 있는 셈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뉴스의 중심인물로 부각되면 될수록 박 대표는 딜레마에 빠져들 수 있는 역설적 상황이다.
이필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