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 발인식 추도사를 읊는 안철수 의원의 목소리가 슬픔에 잠겼다. 슬하에 1남 3녀를 둔 고 김우현 씨는 전남 지역 최대 봉사단체 중 하나인 로터리클럽 3610지부 총재를 역임하는 등 지역에서 덕망이 높았고, 특히 4남매 모두를 서울대에 보낼 정도로 교육열과 자식사랑이 남다른 것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그의 슬픔과 무관하게도 정치권에서는 ‘조문 리스트’에 관심이 쏠렸다. 장례식장 입구에는 정의화 국회의장,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황우여 교육부 장관, 성낙인 서울대 총장, 박원순 서울시장, 김상현 네이버 대표, 최세훈·이석우 다음카카오 대표이사 등이 보낸 조화와 근조기가 눈에 띄었다. 첫날부터 조화가 복도에 가득 차 이튿날부터는 이름이 새겨진 근조 리본만 겨우 들여올 수 있을 정도였다.
빈소를 가장 먼저 찾은 야권 정치인은 박주선 의원이었다. 박 의원은 제19대 국회 초반 무소속 의원 신분으로 같은 무소속이자 초선인 안 의원과 긴밀하게 소통하며 조력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날 이석현 국회 부의장과 주승용 이윤석 우원식 변재일 장병완 김승남 이목희 등 현역 의원 10여 명이 빈소를 찾았다.
함께 새정치연합 공동대표를 역임한 김한길 의원 역시 첫날 문상을 왔다. 지난 7월 대표직에서 사퇴한 이후 외부 활동을 자제해 온 김 의원이었지만 누구보다 먼저 안 의원을 위로하기 위해 발걸음을 한 것이다. 오후 5시 30분경 모습을 드러낸 김 의원은 정치적 언급은 자제한 가운데 짧게 조문을 마치고 장례식장을 빠져나갔다.
이튿날부터는 조문객들 발길이 부쩍 늘었다. 특히 문희상 비대위원장 조문 소식이 알려지자 취재진들도 하나둘 늘기 시작했다. 문희상 위원장은 오후 2시 30분경 박홍근 비서실장, 문병호 전략홍보본부장, 한정애 대변인과 함께 나타났다. 여수시장 역시 문 위원장 조문 시각에 맞춰 빈소를 찾았다.
문재인 의원이 10월 29일 안철수 의원 장인인 고 김우현 씨의 빈소가 차려진 전남 여수장례식장을 찾아 안 의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최준필 기자
문 위원장은 조문 자리에서 안 의원에 “(당 대표 경험에 관해)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었음을 나중에 깨달을 거다. 얻은 것도 많고 잃은 것도 많지만 내가 볼 땐 꼭 거쳐야 할 과정”이라고 전했다. 안 의원은 “값진 경험이었다”고 짧게 화답했다.
이날 저녁 문재인 의원이 빈소를 찾는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취재진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지난 2012년 대선 이후 서먹한 관계를 유지하던 터였다. 특히 올 3월 새정치연합 창당 이후 공식적인 회동이 없었기에 더욱 눈과 귀가 모였다.
문 의원은 국회 상임위 일정 등을 마친 뒤 마지막 여수행 비행편을 통해 오후 7시 5분경 김기준 의원과 함께 빈소를 찾았다. 권은희 의원 역시 같은 비행편으로 여수에 도착했지만 문 의원 측과 따로 이동했고, 조문 인사 역시 별도로 나눈 이후 문 의원이 있는 테이블에 합석했다.
문 의원은 이 자리에서 “안 의원이 호남의 사위란 말이 실감난다”며 “옛날에 아버지께서 젊은 나이에 아침에 일하러 나가셨다 주검이 돼 돌아왔다. 어머니가 늘 하는 말씀이 ‘병간호라도 좀 해봤으면’이었다. 그런 것이 한이 되시는 것 같더라”는 본인의 경험을 전하며 안 의원을 위로했다. 안 의원은 “부모님들이 나이 드시면 가까이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안철수 의원 빙부상 장례식장에는 김한길 전 대표와 문희상 비대위원장 등 거물급 정치인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최준필 기자
이와 함께 고인의 장지가 천주교 묘역인 점을 눈여겨본 문 의원은 “교리는 받았지만, 영세는 하지 않았다”는 안 의원에게 “마저 하시고 국회 천주교 모임에 들어오시라”고 권하기도 했다. 둘째 날은 정세균 원혜영 유인태 노웅래 김영환 의원 등이 빈소를 다녀갔고, 여당에서는 이정현 의원이 유일하게 직접 조문했다.
문 의원의 조문 이후에는 정계은퇴 후 전남 강진에 칩거 중인 손학규 전 고문의 조문 여부에 관심이 쏠렸다. 안 의원이 지난해 형수상을 당한 손 전 고문을 직접 찾기도 한 만큼 보답 차원에서라도 발걸음을 하지 않을까 추측이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날 손 전 고문은 끝내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손 전 고문 측 관계자는 “어디서 문상 이야기가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전혀 계획한 바가 없었다”며 “현재 바깥소식을 거의 모르고 계시고, 아신다고 해도 오해를 살 수 있는 자리에 가시지 않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안철수 의원은 장인상 당일 자신의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 총회와 이사회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내일은 이날 총회에서 새로운 이사진을 꾸려 새 출발을 예고했다. 신임 이사에는 안철수 의원을 비롯해 박원암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이옥 덕성여대 명예교수, 정연호 변호사가 선출됐다. 내일은 11월부터 ‘삶의 정치’를 중심으로 한 ‘새정치 2기’를 모색할 예정이다. 안 의원은 발인일 저녁 슬픔을 딛고 예정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곧바로 지역구인 서울 노원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전남 여수=김임수 기자 imsu@ilyo.co.kr
‘안철수 키즈’ 요즘 뭐하나 후사도모 위한 독자활동 전개 안철수 의원 장인상에 야권 정치인과 함께 옛 측근들 조문이 이어지면서 그간 소원해진 관계가 회복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올해 의원실을 떠난 이수봉 전 보좌관, 조현욱 윤태곤 비서관 등이 일찍 빈소를 방문했고, 2012년 대선 때부터 안 의원을 도운 강인철 변호사, 김경록 전 부대변인, 정기남 전 진심캠프 비서실 부실장, 이태규 새정치연합 당무혁신실장 등도 모습을 비췄다. 지난 7월 재보선 공천 과정에서 안 의원과 소원해진 금태섭 변호사 역시 둘째 날 오전 빈소를 찾았다. 금 변호사는 지난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드라마 <오만과 편견> 기획 단계에서부터 이런 저런 자문을 해드렸다. 이번엔 주인공을 저를 모델로 만들었다고 한다”는 깜짝 소식을 알리기도 했다. 그동안 별다른 직함 없이 안 의원을 물심양면 도운 조광희 변호사는 ‘정책네트워크 내일’ 감사직을 맡아 측근으로서 위상을 다시 한 번 드러냈다. 안 의원의 숨은 조력인으로 꼽히는 삼성경제연구소 출신 곽수종 박사는 지난 9월 <케인스에게 다시 경제를 묻다>라는 제목의 경제서 번역을 맡기도 했다. 곽수종 박사와 박경철 원장은 새정치연합 창당과 6·4 지방선거 전후로 각기 장기 여행에 나서며 정치권과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여 왔지만 최근 SNS(사회관계망서비스) 활동 및 강연에 나서며 조금씩 활동을 재개하고 있다. 한편 안철수 신당 창당을 위해 노력했던 인사들은 최근 백두산 트레킹을 나서 “안 의원과 거리를 두고 각자 역할에 충실한 뒤 후사를 도모하자”고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