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 최고의 뜨거운 육체 패멀라 앤더슨과 토미 리는 은밀한 부부관계 동영상이 유출돼 곤욕을 치렀다. 원안은 동영상 속 한 장면.
패멀라 앤더슨의 인생은 육체의 발굴에서 시작되었다. 1989년, 스물두 살의 순박한 캐나다 처녀는 풋볼 게임을 보러 갔다가 우연히 카메라에 잡혔고, 전광판을 가득 채운 그녀의 모습에 관객들은 열광했다. 그렇게 시작된 그녀의 연예계 생활은 탄탄대로였다. 당시 라바트 맥주 티셔츠를 입고 있던 그녀는 당장에 맥주 CF 모델이 되었고, <플레이보이> 핀업걸로 발탁되었으며, 1991년엔 시트콤에 진출했고, 1992년엔 <SOS 해양 구조대> 시리즈에 합류했고, 36인치의 가슴을 자랑하는 섹시 스타가 되었다. 그는 1990년대의 마릴린 먼로였다.
첫 연인은 1989년에 플레이보이 맨션의 파티에서 만난 스콧 바이오. 4년 동안 유지되던 그들의 관계는 패멀라가 한 남자에게 첫눈에 반하면서 끝나고 만다. 그 남자는 바로 토미 리. 헤비메탈 그룹 머틀리 크루의 드러머였다. 그는 이미 두 번 결혼한 적이 있었다. 첫 아내는 모델인 엘레인 스타척. 이혼 후 1986년엔 배우 헤더 로클리어와 결혼했지만 1993년에 다시 이혼했다. 패멀라와 토미, 두 사람은 LA의 한 클럽에서 만났다. 이때 패멀라는 다른 테이블의 토미에게 술을 보냈고, 그렇게 시작된 그들의 관계는 속전속결이었다. 만난 지 4일 만에 결혼한 것. 그들은 1995년 2월 19일 멕시코 칸쿤의 해변에서, 8명의 하객을 증인으로 부부가 되었다. 패멀라는 맨발에 비키니 차림이었고, 결혼식이 끝난 후 토미는 패멀라를 안고 바닷물로 뛰어들었다. 한편 패멀라의 엄마인 캐럴 앤더슨은 딸의 결혼 소식을, 신문을 보고서야 알았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전형적인 록그룹 출신의 문제아였던 토미 리와의 결혼생활은 결코 쉽지 않았다. 첫 아들인 브랜든 토머스 리를 낳은 1996년, 남편의 음주벽에 지친 패멀라는 이혼소송을 제기한다. 다행히 화해 후 10일 만에 고소를 취하한 그녀는 1997년에 둘째아들 딜런 재거 리를 낳았고, 잘나가던 <SOS 해양 구조대>도 하차한 후 육아에 전념한다. 하지만 토미의 상태는 점점 안 좋아졌고, 급기야 패멀라에게 폭력을 휘둘러 6개월 동안 감옥 생활을 하기도 했다. 패멀라는 1998년에 다시 이혼소송을 했고, 결국 2001년에 두 사람은 법적으로 남남이 된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혹은 아이로니컬하게도 그 광경은 수많은 사람들과 공유되었고, 여기엔 극도로 은밀한 모습까지 담겨 있었다. 바로 섹스 비디오다. 비디오로 출시되었을 때 30만 장 이상이 팔렸고 한때 인터넷 다운로드 부문 기네스북에 올랐던 이 동영상은 1990년대 미국, 아니 전세계를 뒤흔든 사건 중 하나였다. 패멀라와 토미는 신혼 시절부터 자신들의 일상을 비디오에 담았고 그 테이프들을 금고에 보관했는데, 리모델링 공사를 할 때 온 인부들 중 한 명이 금고를 몰래 딴 후에 테이프를 훔쳐갔다는 것이다. 전직 포르노 배우인 그 인부는 하드코어 성인 잡지인 <펜트하우스>에 그 원본을 넘겼고, 그 영상을 캡처한 사진이 곧 잡지에 실릴 거라는 얘기마저 있었다. 한편 이 시기 부부는 제이 레노의 <투나잇쇼>에 출연했을 때 비디오 관련 질문을 받았는데, 이때 패멀라는 그 테이프들이 사적인 것이며 도둑맞았다는 걸 시인했다. 대중의 궁금증은 급격하게 커졌다.
드디어 1995년 <펜트하우스> 미국판 6월호에 그들의 사진이 실렸다. 토미 리의 발기된 페니스, 다리를 벌리고 있는 패멀라, 오럴섹스와 삽입…. 적나라하게 모든 것이 드러난 것이다. 두 사람은 해당 호가 더 이상 출간되지 않도록 만들기 위해 사생활 침해로 소송을 걸었지만 법원은 기각했다. 사진의 배경이 된 호수 위 보트나 고속도로 근처의 공터에 주차된 자동차는 사적인 장소로 보기 힘들다는 이유였다. 1997년 3월에 다시 소송을 걸었을 때도 기각되었다. 이후 그들은 하워드 스턴의 라디오 쇼에 출연했는데, 스턴은 체위나 당시 상황에 대해 질문을 던졌고, 부부는 이 부분에 대해 코멘트를 하기도 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펜트하우스>는 테이프를 인터넷 포르노그래피 업체인 IEG(인터넷 엔터테인먼트 그룹)에 넘겼다. 설립자인 세스 워셔브스키는 미국 인터넷 포르노 산업의 개척자로, ‘클럽러브닷컴’(Clublove.com)을 통해 화제를 몰고 온 인물. 그는 1997년 11월에 동영상을 띄웠고, 사이트 트래픽은 세 배 이상으로 뛰었다. 패멀라와 토미는 IEG 쪽과 중재를 시도했고, 그들이 서비스를 중단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IEG는 잠시 내렸던 동영상을 다시 올렸고, 아예 VHS 테이프로 출시했다. 부부는 다시 소송에 들어갔지만, 1998년 법원은 그들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두 사람은 이미 자신들의 권리를 포기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판사는 어떤 근거로 그런 판결을 내린 걸까? 그 자세한 내막은 다음 주에 이어가겠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