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리는 <왔다! 장보리>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악역을 연기해 큰 인기를 얻었다. 왼쪽은 tvN <노란복수초> 제작발표회 당시 모습. 연합뉴스
이유리는 10여 년 동안 시청자와 친숙했던 연기자다. 요즘에 와서야 스타 대접을 받는 게 오히려 새삼스러울 정도다. 2001년 KBS 2TV 드라마 <학교>로 데뷔했고, 연기자로 활동해온 시간도 햇수로 13년째다. 그동안 숱한 드라마에 얼굴을 비추며 악역을 연기한 적도 많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최근 막을 내린 MBC 주말드라마 <왔다! 장보리>를 통해 13년 만에 비로소 전성기를 맞고 있다.
이유리가 보여준 악역은 질타의 대상을 뛰어넘어 강렬한 카리스마까지 느껴지게 했다는 평가다. <왔다! 장보리>가 근래 방송한 드라마로는 이례적으로 30%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할 수 있던 원동력으로 이유리를 꼽는 데 이견이 없을 정도다. 심지어 극 중 배역 이름을 빗대 드라마 제목을 ‘왔다! 연민정’으로 부르는 시청자들도 많았다.
물론 10여 년 가까이 연속극이나 드라마 조연에 머물러야 했던 이유리에게 콤플렉스가 없었던 건 아니다. 자신과 함께 데뷔한 배우 임수정이 스크린 스타로 승승장구하는 모습에서는 질투심도 느꼈다고 했다. 최근 SBS <힐링캠프>에 출연한 그는 임수정을 언급하며 “높은 하늘만 쳐다보면 당연히 부러웠다”고 털어놓았다. 스타덤에 먼저 오른 동료들에게 흔히 가질 수 있는 부러운 감정이지만, 이유리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면 수많은 연기자들이 있다”고 말한 그는 “연기자들 중에서도 활동하다가 사라지는 사람이 많다. 단역이라도 연기하는 데 있어서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늘 현실에 감사하며 연기해야겠다고 결심하며 지냈다”고 돌이켰다. 진심이 통한 덕분일까. 이유리는 데뷔하고 처음으로 MBC 연기대상 수상까지 점쳐지고 있는 데다 드라마를 끝내고 받은 광고 모델 제의만 20여 건이 넘는다.
왼쪽부터 황영희, 이국주, 유연석.
‘긍정의 마인드’는 대기만성 스타들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이유리와 더불어 안방극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연기자 황영희는 20년 동안 연극에서 활동하면서도 연기에 대한 열정은 여전히 뜨겁다. 연극만으론 생활이 어려웠던 탓에 간간이 건강식품을 팔거나 부동산 관련 일도 했지만 연기는 포기하지 않았다. 뒤늦게 기회는 왔다. 이유리의 엄마 역으로 출연한 <왔다! 장보리>의 성공이다. 긍정적인 마음은 황영희를 움직이는 힘이다. “연기자로 생활하면서도 ‘스타가 되겠다’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는 목표는 한 번도 갖지 않았다”는 그는 온전히 연기를 즐긴 덕분에 “무명시절마저 행복했다”고 했다.
배우 유연석도 대기만성 스타를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만년 신인’에 가까웠지만 불과 1년 만에 상황은 달라졌다. 유연석은 영화계에서 가장 많이 찾는 주연배우가 됐다. 2003년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로 데뷔한 지 꼭 11년 만에 이룬 성공이다.
사실 유연석은 10여 년간 영화 단역과 조연을 마다하지 않으며 활동해왔다. 400만 관객을 모은 <건축학개론>에도 600만 명의 선택을 받은 <늑대소년>이나 200만 명을 동원한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에도 출연했지만 그를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 주인공 곁에 있는 비중 낮은 조연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유연석이 두각을 나타낸 건 지난해 케이블채널 tvN이 방송한 <응답하라 1994>부터다. 드라마가 1990년대 향수를 자극하며 신드롬을 일으킨 덕분에 유연석 역시 스타덤에 올랐다. 달라진 자신의 상황을 두고 유연석은 “통장 잔고가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바뀌었다”고 간단하게 설명했다. 늘어나는 잔고만큼 출연작도 많아진다. 최근 개봉한 <제보자>에 이어 개봉을 앞둔 사극 <상의원>, 멜로 <은밀한 유혹>, 로맨스 <그날의 분위기>의 주인공은 모두 유연석이다.
뒤늦게 빛을 보는 배우들 못지않게 오랫동안 부침을 겪다 비로소 자신의 입지를 다진 개그우먼 이국주도 화제다. 마치 혜성처럼 나타난 신인으로 보이지만 그는 2006년 MBC 공채개그맨으로 데뷔한 경력 9년의 베테랑이다.
이국주가 보낸 무명의 시간은 유연석보다 더 ‘암담’했다. 방송사들은 개그 프로그램을 폐지하거나 줄였고, 그나마 남은 무대에 오르기 위해선 치열한 경쟁을 거처야 했다. 버티니까 기회는 왔다. tvN 프로그램 <코미디 빅리그>다. 이 프로그램이 인기를 모은 데는 이국주의 역할이 상당했다. 배우 김보성을 흉내 낸 ‘으리’ 시리즈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개성을 살린 ‘식탐송’으로 화제를 더했다. 여세를 몰아 SBS 예능 프로그램 <룸메이트2>에도 주요 출연자로 합류했다. 이국주는 “9년 동안 활동하면서 TV에 출연하는 일 자체가 쉽지 않았다”며 “가장 주목받는 지상파 예능프로그램 출연 섭외를 받았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며 더욱 활발한 활동을 예고하고 있다. 한류스타 김우빈과 함께 3편의 CF에 출연하고 있는 이국주의 근황은 그의 ‘위치’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