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대학에 다니다 베트남전에 파병돼 포로가 되면서 뒤엉켜버리기 시작한 차 씨의 기구한 인생은 <여명의 눈동자> <태백산맥> <태극기 휘날리며> 등 그동안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다룬 영화나 소설 속의 주인공보다 더 극적이고 때로는 처절하기까지 했다. 한마디로 차 씨의 인생은 앞선 세 작품의 주인공들이 겪은 파란만장한 인생을 모두 합쳐 놓은 듯했다.
▲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한 장면. | ||
미국 버지니아 주에 살고 있는 차 아무개 씨는 올해로 63세를 맞았다. 차 씨가 한국 땅이 아닌 머나먼 미국 땅에 있는 데는 말 못할 아픔이 숨겨져 있다.
차 씨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것은 그가 세 살 되던 해 일어난 한국전쟁이었다.
차 씨의 아버지는 한국전쟁 당시 해병대 장교였으나 전쟁 막바지이던 1952년 북한군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차 씨의 어머니 역시 자식들을 데리고 피난하던 중 총격으로 사망했고, 이로 인해 같이 피난을 가던 그의 형과 쌍둥이 동생 등 삼형제는 피난대열에 휩쓸려 졸지에 이산가족이 되고 말았다. 고아의 몸으로 보육원에서 자라며 악착같이 인생을 산 차 씨는 주경야독으로 서울대 영문학과를 입학했고 2학년이 되던 해에 군에 입대했다. 차 씨가 배치된 청룡부대는 베트남 전쟁 막바지인 1970년대 초 베트남으로 파병됐고 차 씨는 전쟁의 물결에 다시 한 번 휩쓸렸다.
부모의 죽음으로 이산가족이 된 지 20년. 형제들이 어디서 살고 있는지도 모르는 차 씨가 우연한 기회에 형제를 만난 곳은 다름 아닌 베트남전 현장에서였다. 전투 중 베트남군의 포로가 된 차 씨는 잡혀있는 미군 포로 중 자신과 똑같이 생긴 찰리(가명)를 만났는데 그는 다름 아닌 피난 당시 헤어진 자신의 쌍둥이 동생이었다. 피난 당시 부모와 형제를 잃은 갓난아기 찰리를 후퇴 중이던 미군이 데리고 가 입양했다. 찰리는 미국 유명 법대를 나온 후 역시 장교로 베트남전에 참전했고, 차 씨와 마찬가지로 전투 중에 베트콩의 포로로 잡혀 있었던 것.
형제를 만났다는 기쁨도 잠시. 두 사람은 곧바로 군사재판에 회부됐고 사형선고를 받았다. 하늘이 도왔던 것일까. 사형대에 손이 묶여 사형당하기 일보 직전 형제를 구했던 것은 피난 중 헤어졌던 삼형제 중 첫째인 최 아무개 씨였다. 자신의 성도 모른 채 어렸을 때 헤어진 세 형제는 각기 다른 성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사형을 집행하기 전 북한으로의 귀순을 권유하기 위해 온 북한 영사관의 영사였던 것.
세 형제는 그렇게 극적으로 상봉했으나 때마침 미국이 베트남전에서 손을 떼겠다는 발표를 하면서 다시 생이별을 하게 됐다. 함께 살기에는 세월의 간극이 너무나 컸고 이념의 차이도 좁혀지지 않았다. 쌍둥이 형제와 최 영사는 누구 하나도 자신의 조국을 포기하지 않았고 다시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게 됐다.
파란만장했던 차 씨의 인생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전쟁이 끝나 포로 교환을 위해 다른 포로들과 함께 하노이의 포로수용소로 옮겨지던 도중 차 씨는 자신을 군사재판에 회부했던 베트남군 여법무관의 책략으로 포로수용소로 가지 못하게 되고 법무관과 짧은 동거 생활을 하게 됐다. 이때 여법무관은 차 씨가 이미 죽었다고 베트남 정부에 보고했고 이는 그대로 한국 정부에 통보돼 차 씨는 한국에서는 전사자로 처리돼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동거생활도 잠시. 차 씨는 여법무관과 헤어졌고 이후 베트남, 태국 등지를 떠돌면서 하루 일당을 벌어 연명하는 떠돌이로 전락했다. 돈이 되는 일이면 무슨 일이든 가리지 않고 해야 했던 차 씨는 우연히 불법 무기 거래에 참여하게 됐고, 이후 크메르루주, 캄보디아 공산당 등에게 무기를 파는 불법 무기 거래상이 되고 말았다. 무기 거래를 하며 번 돈으로 그는 태국 등에서 벌목 사업을 시작했고 이로 인해 적지 않은 돈을 손에 쥐게 됐다. 돈이 모이자 차 씨는 고향 땅으로 다시 돌아가겠다고 마음먹었으나 차 씨는 이미 한국에서는 전사자로 처리돼 있는 데다, 국제적으로는 공산국가에 불법으로 무기를 팔았다는 이유로 인터폴에 수배령이 내려져 있어 입국이 불가능했다.
자신이 인터폴에 의해 수배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차 씨는 태국, 호주 등을 전전하다 후에 사면이 돼 미국 버지니아에 자리를 잡게 됐다.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 등 두 번의 전쟁으로 인해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어버린 차 씨는 4년 전 자신의 인생을 한번쯤은 정리해봐야겠다고 생각했고 이후 꾸준히 집필 작업을 해왔다.
차 씨는 “한국의 젊은 세대들이 현대사의 아픔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얼마전 자신이 집필한 원고를 들고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던 차 씨는 현재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책으로 내기 위해 출판사를 노크하고 있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