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3년…6백원짜리 소주에 1천5백원짜리 파전이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다.’ 맨 뒤쪽 안경 쓴 이가 성균관대 81학번 이화영. | ||
이 의원과 동료들은 세미나나 집회 후 최루탄에 찌든 몸을 정화라도 하듯 학교 앞 ‘시골집’이라는 주점에서 하루를 정리하곤 했다. 이 의원은 이곳을 “대학시절 가장 뜨거웠던 젊음을 보낸 추억의 장소”라고 말한다. 그만큼 이 술집은 젊은 시절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명소다.
“6백원짜리 소주와 1천5백원짜리 파전을 먹으며 세상에 부족한 것이 없었을 것 같은 시간이었다.” 이 의원은 그 시절을 이렇게 회상한다. 당시 각종 조직사건과 캠퍼스에 상주하던 경찰의 감시로 친구들과 자주 어울리지도 못했고 더구나 사진을 같이 찍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이 의원의 대학시절은 감옥이나 공장에서 보낸 시간이 학교에서 보낸 시간보다 훨씬 길었다. 그래서 이 사진은 대학시절이 담긴 유일한 사진이라고 한다.
사진의 주인공들은 83년 이 의원과 뜨거운 젊음을 함께했던 소중한 친구들이다. 맨 오른쪽은 현재 동북아평화연대 사무국장인 김현동씨(사회학과 81학번). 김씨는 부천에서 위장취업해 공장생활을 하던 중 잠깐 집에 들렀다가 붙잡혀 당일 팬티바람으로 강제징집당한 것으로 유명했다고. 현재는 아시아 평화 문제와 고려인 문제 해결을 위해 연해주에서 활동중이다.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이 의원, 세 번째의 장수행씨(도서과학과 81학번)는 부천 공단 일대에서 육아공동체운동을 하다가 최근에 귀농해 경북 봉화에서 농촌에 도서관 짓기 운동과 환경운동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며 텃밭을 가꾸고 있다.
마지막 김재곤씨(회계학과 81학번)는 졸업 이후 몸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이후 아무런 근황을 몰라 애태우고 있다고 한다.
어느 학교 앞이나 유명한 술집이 있듯이 이 곳도 그랬다. 당시 경찰들은 ‘시골집’에 잘 오지 않아 일종의 ‘해방구’ 역할을 했다. 그로부터 긴 세월이 흘러 이 의원이 2년 전 이 선술집을 찾았을 때 친근한 주인은 이 의원 일행의 이름을 일일이 다 떠올렸고 심지어는 외상값까지 기억하며 이들의 안부를 물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선술집은 최근에 경영난으로 문을 닫아 추억의 갈피 속에서만 남아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