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원가의 대형화 차별화 바람이 동네 생계형 학원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진은 목동 하이스트학원.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가장 대표적인 해외자본 투자 사례로 손꼽히는 것이 얼마 전 가수 신해철을 광고 모델로 활용해 논란을 불러일으킨 통합 학원 브랜드 ‘하이스트’다. ‘하이스트’는 미국계 사모펀드 티스톤으로부터 600억 원 이상을 투자받아 설립된 타임교육홀딩스가 만든 학원 브랜드다. 2007년 설립돼 특목고 준비 중등학원으로 시작해 이후 성장을 거듭해 초중고 전학년으로 확대시키며 단일 학원 브랜드로는 국내 매출 1위를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이스트가 급성장하게 된 배경은 다름 아닌 600억 원이라는 막강한 자본력에 있다. 시작부터 강북 학림학원, 동부 청산학원, 서부 하이스트, 일산 푸른학원, 마포 길잡이학원 등 각 지역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5개 대형 학원들을 통합하면서 화려하게 출범했기 때문이다. 하이스트는 설립 초기 각자의 학원 이름으로 영업을 이어나가다가 지난 4월 15일 모든 학원의 이름을 하이스트로 통일하고 거대 학원 브랜드를 형성탄생시켰다.
현재 하이스트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학원은 전국적으로 무려 44개에 달한다.하이스트 측은 수강생이 5만여 명에 달해, 수강생들만으로도 전국 규모의 모의고사를 치를 수 있을 정도라고 밝혔다. 실제로 하이스트는 지난달 28일 제1회 전국 학력평가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와 같이 하이스트 등 대형 학원 브랜드의 문어발식 확장에 움츠러들고 있는 곳은 주택가 보습학원들이다.
과거에는 대형 학원들이 주로 학원들이 밀집된 지역에만 존재해 나름대로 틈새시장이 존재했지만 하이스트가 지속적인 M&A를 통해 주요 학원가를 넘어 중견급 학원들을 계속 흡수하면서 상대적으로 마케팅이나 자본력이 약한 소형 학원들이 직접적인 타격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사교육 업계에도 빈익빈 부익부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침체된 가계 경기로 인해 동네 소형 학원들은 미납된 학원비로 인한 누적 적자를 버티지 못하고 폐업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어, 이러한 자본력을 갖춘 대형 학원들에게 갈수록 밀리고 있는 실정이다. 사교육업계에 대한 해외 투자사례는 비단 하이스트뿐만이 아니다. AIG그룹은 지난해 7월 초중등 영어학원인 아발론교육에 600억 원을 투자했다. 또한 2007년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칼라일펀드는 특목고 전문 학원 브랜드 토피아아카데미에 2000만 달러(약 270억 원)를 투자하기도 했다.
일본 자본인 소프트뱅크 벤처스는 확인영어사에 1000만 달러(약 135억 원)를 투자했다.이렇듯 해외 자본은 그동안 소리없이 우리 사교육시장을 잠식해 왔고 일부에선 아예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해외 자본들이 우리 사교육시장을 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두말할 필요도 없이 ‘당분간 한국 사교육 시장은 망할 우려가 없고 더 팽창할 것’이라고 전망하기 때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미FTA 타결에 대한 기대와 현 정부의 교육정책 등을 감안할 때 해외 자본들이 한국 사교육시장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판단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들이 자본투자 형식으로 참여하는 데에도 이유가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교육개방이 완전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현재 한국 교육시장 진출을 위해서는 자본 투자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최근 불고 있는 교육업체들의 잇단 증시 상장 움직임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반드시 상장하지 않더라도 일단 자본투자로 지분을 소유한 다음 한미FTA 체결 이후 한국에 진출하려는 해외 교육 서비스 업체들에게 지분을 매각하면 차익을 챙길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려 있을 것이라고 해당 관계자는 덧붙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해외 투자를 받은 업체들이 무조건 잘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전했다. 그는 “투자를 하면 그에 따른 여러 가지 조건과 간섭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어려움에 처한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부분 매출 실적에 따라 투자가 단계적으로 이뤄지는 데다가 회수 조건도 까다롭다는 것이다. 게다가 대형 학원 프랜차이즈의 경우 상당히 많은 고정비와 마케팅비를 지출하기 때문에 소위 ‘앞에서는 남고 뒤에서는 밑지는 장사’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그러나 업계 대부분 관계자들은 해외자본의 국내 사교육 진출에 대해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단순한 자본 투자뿐만 아니라 영어를 중심으로 해외 교육 시스템이 국내에 직접 진출할 경우 파급력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특히 이러한 사교육 시장의 해외 투자 바람은 90년대 유통 시장 개방과도 닮은꼴이라는 시각도 있다.
해외 자본과 업체들이 물밀듯이 밀려오고 난 다음 동네 슈퍼마켓이나 소규모 마트 등이 급속하게 도산한 사례처럼 사교육 시장도 그와 같이 재편될 가능성이 높고, 일부 지역에서는 벌써 그런 조짐이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연 40조 시장으로 평가받고 있는 한국 사교육 시장에 진입하는 해외자본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인 것 같다.
이진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