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통합진보당 해산 및 정당활동정지 가처분신청 사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3차 변론이 서울 종로구 헌재 대심판정에서 진행되는 모습. 왼쪽 작은 사진은 이정희 대표와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수감 중인 이석기 의원.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이후 내부 노선 갈등 속에 진보신당의 분열 등 부침을 겪기도 했지만 2011년 국민참여당, 새진보통합연대(진보신당 후신) 등과 다시 뭉쳐 통진당을 출범시키면서 다시 한 번 대표적 진보정당으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하지만 1년 만인 2012년 통진당은 비례대표 경선 부정 의혹 등과 관련해 당내 폭력사태를 겪으면서 다시 분당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구당권파를 중심으로 남겨진 통진당은 당을 추스르고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려 했지만 결국 운명을 결정할 거대한 사건과 마주했다. 지난해 말, 이석기 의원이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됐고, 법무부는 전격적으로 “통진당을 해산해 달라”며 헌재에 정당해산 심판을 청구했다. 어떤 결과가 나와도 정치권과 법조계에 격랑이 몰아칠 전망이다. 이제 통진당의 운명을 쥐고 있는 헌재는 이달 말 최종변론과 선고만 남기고 있다.
#‘종북정당’ 맞나…“컴퓨터도 못 보게 하더라”
이념적 색채가 강한 통진당은 전신인 민노당 시절부터 종북 논란을 계속 일으켰다. 북한 지령을 받아 당을 운영한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됐고, 당 강령 중 ‘진보적 민주주의’는 북한의 사상에 동조하기 위한 것이란 주장이 나왔다. 종북 성향의 경기동부연합, 광주전남연합 등 전국연합 출신 인사들이 당권을 장악하고 이 같은 종북 성향의 당 운영을 주도했다는 것이다.
사실 지난 이명박 정권 말부터 여권은 통진당의 이적성 여부를 조사하면서 해산심판 청구 가능성을 검토해 왔다. 검토 단계 사실을 언론에 흘리며 정치권과 여론 반응을 살펴보기도 했지만 정작 마땅한 ‘기회’가 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지난해 경기동부연합의 실체가 폭로되고 당내 혁명조직인 RO(revolution organization)의 존재가 터져 나왔다. 주동자로 지목된 이석기 의원이 이 일로 지난해 9월 구속됐다.
결국 법무부는 지난해 11월 헌재에 통진당 해산심판 및 정당활동정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헌정사상 첫 정당해산심판이다. 통진당 해산과 함께 그 결정이 나기 전까지 정당 활동을 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신청도 함께 냈다.
법무부는 통진당의 최고 이념인 ‘진보적 민주주의’가 사실은 북한 지령에 따라 강령에 포함된 것이고, 그 구체적인 내용이 현 정권을 타도하고 북한과 연방제 통일을 이루겠다고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통진당이 북한의 지령을 받아 ‘북한식 사회주의 실현’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석기 의원이 주도한 RO는 이를 행동에 옮길 ‘특공대’인 셈이라고 했다.
분당 전까지 통진당에서 활동했던 진보신당계 출신 인사는 “통합됐을 시기의 통진당이 종북적 활동을 했거나 그런 목적을 갖고 있었다고는 볼 수 없다”면서도 “이른바 ‘당권파’로 불리는 세력이 독자적인 활동을 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RO의 존재는 아무도 몰랐다”고 했다.
통진당 내부에서는 언론에 보도되기 전까지 ‘경기동부연합’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극소수였다고 한다. 당내 핵심 사무를 맡았던 한 당직자(국민참여당 계열)는 “당내 계파야 많았지만 경기동부연합이니 광주전남연합이니 하는 말은 몰랐다. 언론에서 그 계열 소속이라고 나온 인사들이 모두 은밀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느낌은 있었다”며 “심지어 같은 업무를 하는 사람이어도 그들은 자신의 컴퓨터에 비밀번호를 걸어두고 아무도 못 보게 했다. 그가 밖에 나가 있을 때 급하게 처리할 일이 있어도 그 사람을 통해 그쪽 사람이 와서 컴퓨터를 확인하게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통진당은 여전히 ‘경기동부연합’의 실체를 부인하고 있다. ‘진보적 민주주의’ 강령에 대해서도 “3·1 운동과 4·19 혁명을 계승하고, 6월 항쟁에 기초해 제정된 우리 헌법에 합치되는 강령”이라고 법무부 주장에 반박하고 있다.
#연내 선고될 듯…해산 여부는 의견 갈려
통진당 해산심판은 헌정사상 최초의 일인데다 정치적 파급력도 엄청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신중한 선고가 예상됐다. 헌재가 검토해야 할 자료만도 16만 페이지에 달한다. 헌법재판소법은 사건을 접수한 날부터 180일 이내에 선고를 하도록 하고 있지만, 최소한 법무부가 이적성의 근거로 삼았던 이석기 의원의 RO 사건 판결이 날 때까진 선고가 이뤄지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내란음모’ 혐의 이석기 의원 등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일인 8월 11일 보수단체 회원들이 ‘이석기 의원 중형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하지만 박한철 헌재소장이 지난 국회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들과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올해 안에 선고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 사실이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을 통해 전해지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새누리당과 보수층은 ‘통진당 심판이 늦어지면서 국고보조금 등 국가적 손실이 커지고 있다’며 반발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지난 4일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 등에 대한 신문을 끝으로 증인신문을 마친 헌재는 25일 이정희 통진당 대표와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나서는 최종변론을 듣기로 했다. 최종변론 후 한 달 정도 검토를 하더라도 연내 선고가 가능해진다. 현재로서는 통진당 측에서도 연내 선고에 대한 큰 불만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전망은 갈린다. 정치적 이해관계에서도, 법적 해석에서도 각자 다른 해석이 나오고 있다. 한 정당의 일인 만큼 정치권의 해석이 엇갈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15차례까지 진행된 변론 과정을 보고서도 법관들의 예상이 각자 다르다는 건 이 사건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는 반응이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이석기 의원에 대한 법원 판단도 그렇고 법무부가 제출한 자료로도 충분히 통진당의 이적성이 증명된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헌재의 한 연구관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정부가 통진당 해산 필요성을 인정할 만큼 이적성을 증명했는지 의심이 든다”고 전했다. 대검의 한 간부는 “어느 쪽으로 결정해도 논란이 생길 상황”이라며 “재판관 개인 성향의 문제에 달린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다만 정치적 요소를 감안한다면, 정치적 격랑에 휘말릴 수밖에 없는 이 사건에서 헌재가 쉽게 해산 결정을 내릴 수 있겠느냐는 의견이 상당수다. 법적으로 상당히 인용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쪽도 결정 자체는 기각이 될 것으로 예측하는 법관이 많다. 박한철 소장이 ‘연내 처리’를 공언한 것 역시 기각 쪽에 무게를 두고 있기 때문 아니겠느냐는 의견이 있다. 해산 결정을 예상보다 빨리 내면 자칫 여당과 정부에 떠밀렸다는 비판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이유다.
하지만 한때 선거연합을 맺었던 새정치연합까지 등을 돌린 지금 상황에서 우군이 없는 통진당의 운명은 이미 결정 난 것이나 다름없단 회의론도 나온다. 헌재 심판 결과와 관계없이 국민의 외면 속에서 앞으로 국회의원을 배출하는 원내정당으로 남아있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통진당은 이미 분당과 내부 분열 등으로 당세가 상당히 위축돼 있다.
조정수 언론인
노회찬, 통진당 강력 비판 막후 “해산은 No…사상엔 사상으로 맞짱” 그는 책으로 엮인 인터뷰에서 “당내에 정파라는 것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은밀하게 존재해온 정파는 이제까지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해왔다. 경기동부연합이라는 정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쪽 사람들 한 명이라도 시인한 바 없다. 대한민국에서 좌우를 막론하고 2시간 안에 130명 모이는 데는 여기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타이트하게 움직이면서 그런 조직이 없다고 얘기해온 것 자체가 문제가 생길 때 책임지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게 민주주의에서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또한 노 전 의원은 “2012년 당 대표 비례대표 선거 이전까지 이석기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 입당도 2012년 총선 앞두고 당내 비례대표 후보 경선에 임박해서 한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또 “특정 정파가 지하당처럼 움직였다. 여기에서 오더를 내리면 이제까지 그것을 다 관철해온 거다. 5월 12일(합정동 모임이 있었던 날)도 그랬지 않나. 아무리 현역 의원이지만 당직도 맡고 있지 않은 사람이 이정희 대표를 한칼에 베지 않았나. (이석기 의원이 합정동 모임에서 미사일 쏘지 말라고 발언한 이 대표를 “자기 무기 자기가 쏘는데 왜 쏘지 말라고 하나?”라고 하고 비판한 일을 말함) 그날 이후로 당 성명서고 뭐고 다 달라졌다”고 짚었다. 그는 합정동 모임에서 있었던 발언과 관련 “전쟁이 벌어졌을 때 남의 자주세력과 북의 자주세력이 힘을 합쳐서 적과 싸운다는 발상은 너무 충격적이었다”고 했다. 노 전 대표는 “내란 음모가 아니라고 해서 죄가 없는 건 아닌 상황이다. 국민 세금 받아가는 정당과 국회의원으로서 있을 수 없는 사건”이라며 “국가보안법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선 안 된다”고도 말했다. 사실 노 전 의원은 지난 6월 헌법재판소의 정당해산심판 변론에서 정의당 쪽 증인으로 출석해 통진당 해산에 대해서는 부정적 의견을 밝힌 바 있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도 “사상에는 사상으로, 신앙에는 신앙으로, 양심에는 양심으로 대응하는 게 민주주의가 가야할 길”이라며 “정당에 대한 평가와 심판은 국민들의 선거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또 내란음모 사건은 “국정원의 선거 개입 사건을 덮으려는 정치적 의도가 분명히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노 전 의원은 최근 이석기 의원을 중심으로 한 경기동부연합의 비민주적 행태와 그들의 ‘사상’에 대해서 강한 비판을 이어가 향후 통진당 해산심판 정국에서도 미묘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