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3단은 팬들의 성원 속에 용전분투했다. 그러나 결과는 박영훈 9단의 3 대 1 승리. 박 9단은 2010-11년, 제38-39기에 이어 세 번째 ‘명인’을 차지했다. 제1~4국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1국 : 11월1일, 박영훈 백 불계승(264수) ▲2국 : 11월2일, 이동훈 백 불계승(208수) ▲3국 : 11월10일, 박영훈 백 불계승(258수) ▲4국 : 박영훈 흑 불계승(169수), 장소는 모두 서울 홍익동 한국기원 1층 바둑TV 스튜디오. 제한시간 각 2시간에 60초 초읽기 3회. 우승상금은 6000만 원, 준우승 2000만 원.
3국이 위에서 말한 이번 시리즈의 드라마였다. 이 3단은 첫 판을 놓쳤으나 2국을 잡아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고, 흐름을 탔음인지 3국도 낚아챌 기세였다. 1~2국은 백을 든 쪽이 이겼으나 3국은 흑을 든 이 3단이 초반을 잘 짜면서 앞서나갔다. 이후 이 3단이 약간 느슨해지는 바람에 박 9단이 거의 따라잡았다. 이 3단이 다시 분발했고, 바둑은 반집승부가 되었다. 잔 끝내기 몇 곳 남은 상황에서 바둑TV와 인터넷의 해설자들은 “흑이 무조건, 최소한 반집은 이긴다”고 못을 박았다. 그런데 돌을 거둔 쪽은 이 3단이었다. 해설장의 말처럼 이 3단도 여기서는 어떻게 변해도 반집을 남기는 걸로 확신했지만, 방금까지도 분명 없었는데, 어느 순간에 백이 1집이 나타났고, 그러자 백의 반집승이 되어버린 것. 흑의 반집은 신기루였던 것일까. 그 자책을 떨치기 어려웠을 것이다.
<1도>가 3국의 드라마가 시작되는 장면이다. 우중앙 백△ 자리 패를 다투던 중이었다. 좌상귀 흑1로 팻감을 썼다. 박 9단은 듣지 않고 2로 이어버렸다. A의 곳이 온전한 한 집이 되었다. 흑이 백2 자리에 따내고, △ 자리에 이으면 A도 집이 안 된다. 그건 그런데, 흑1은 그렇다면 팻감이 못 되는 수였단 말인가?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흑1은 되는 팻감이었다. 그러나 뒤이어 귀 저쪽에서 내려선 흑3이 실수요, 착각이었고, 최후의 패착이었던 것.
<2도> 백1로 젖히고, 흑2 단수치자 백3으로 여기부터 따내고 있다. 그래서 흑4로 때려내며 다시 패. 잡혔던 흑돌들이 부활하는 길이 열렸으니 엄청난 패다. 흑은 또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백돌 다섯 점까지 따내며 사는 것이니 사실은, 보통 때라면, 백이 버틴다는 게 말이 안 되는 패다. 이 3단은 그걸 의심하지 않았겠지만, 반대로 박 9단은 이 대목에서 바로 그런 상식의 허를 찔러갔다. 자, 우하귀 백5부터, 이제는 누가 팻감이 많으냐다. 백3으로 <3도>처럼 백1로 이으면 다음 흑2로 따낼 때 백3으로 계속 이을 수는 있지만, 흑4로 나가는 수가 있다.
<4도>가 이어진 실전. 우하귀에서 흑1로 받고 백이 좌상귀 2 자리를 따내면서 건곤일척의 패싸움이 시작되는데, 몇 차례 팻감 공방이 지나가자 사태의 진상이 드러났다. 좌하귀 흑15가 이 3단의 마지막 팻감이었고, 이 3단은 흑17로 ▲에 따냈으나 백18을 보고는 잠시 바둑판을 응시하다가 돌을 거두었다.
엄청난 팬데, 상식적으로는 백이 버틸 수가 없는 팬데, 그걸 못 이기다니! 팻감이 없어 이걸 못 이기다니(흑5, 11, 17은 ▲자리 패따냄. 백8, 14는 백2 자리 패따냄)! 흑이 더 둔다면 <5도> 흑1로 받아야 하는데, 백2로 따낸 다음 흑은 더는 팻감이 없다. 백은 아직도 A, B 등 수두룩한데 말이다.
물론 종국하려면 백은 좌상귀 C의 곳을 이어야 한다. 그러면 1집이 없어지는 것이지만, 이건 흑이 먼저 ▲로 한 점을 보탰으니 본전. 흑로 들어간 것과 백로 가일수해 따낸 것도 본전. 그래서 남는 것은 아까 그 우상쪽 D의 곳 1집이며 이게 이 3단의 반집승을 박 9단의 반집승으로 뒤집었던 것.
그런데 <1도> 흑3이 패착이라고 했던 것은? 이게 더 기막힐 노릇이다. 이 수로는, 이렇게 내려서는 것이 아니라 <6도> 흑1처럼 곧장 먹여쳐 들어가야 했다. 그러면? 패, 이것도 패다. 그런데? 흑은 팻감이 없으므로 패를 이길 수는 없다. 그렇다면 무슨 차이? 실전은 단패, <6도>는 이단패. 아니, 단패-이단패는 중요한 게 아니고, 중요한 건, 실전은 백이 <5도> C의 곳만 가일수하면 되지만, <6도>라면 A, B 두 곳을 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실전과는 1집 차이. 그렇다면 도로 흑의 반집승이었다는 것. 국후 아마추어 관전객들 사이에서 <6도>와 같은 이단패의 경우에도 백이 가일수해야 하느냐, 흑이 팻감이 없다면 백이 가일수하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니냐 하는 것이 잠깐 화제가 되었는데, 결론은 해야 한다는 것.
<6도>를 예로 들어보자. 패싸움을 계속하다가 백이 2 자리를 따낸 다음 흑이 팻감이 없다면? 흑은 “패스(Pass, 착수포기)”라고 말한다. 백도 둘 이유가 없으므로 “패스”라고 말한다. 거기서 흑이 또 “패스”하고 백도 다시 “패스”한다면, 즉 ‘연달아 패스’가 ‘두 번’ 이루어지면, 그때는 종국하고 계가로 들어간다. 그러나 흑이 “패스”하고 백도 “패스”한 다음 흑은 다시 착점할 수가 있다. 이게 현행 룰이다. 패스→패스 후 흑이 착점을 재개할 수 있고, 그래서 패를 다시 따낼 수 있는 것. 그러니 결국 백은 가일수할 수밖에. ‘패스’라? 재미있기도 하고, 좀 그렇기도 하다…^^.
이 3단은 제4국에서는 맥없이 물러났다. 3국의 충격적 패배의 후유증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지면, 팔팔한 신예든 백전노장이든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이 3단은 3국에서 <1도> 이전에도 두세 차례 ‘반집승 결정타’의 찬스에서 스스로 비켜갔다. 해설자들이 종국 후 “이런 식으로 지는 길로만, 그것도 반집 지는 길로만 가기도 쉽지 않은 일”이라고 탄식을 거듭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이 3단이 3국을 이겼다면 어찌 되었을까. 타이틀도 땄을 것이라고들 말한다. 기회는 또 올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도, 아까운 마음 급할 수 없다. 이번 패배가 보약이 되길 바란다. 반집패를 읽어내고, 초상식적 발상으로, 치밀하고 강인하게 버티고 버티면서 반집승을 만들어낸 박영훈 9단, 대단했다. 상승곡선을 탈 것 같다.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