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일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고 강희남 목사. 고인의 영결식 후 서울광장 옆 대한문 앞에서는 그를 기리는 노제가 치러졌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
강 목사의 자살을 두고 정치권에서 잇따라 성명을 발표하고 현 정권에 대해 압박을 가하고 있다. 한편에선 강 목사에 대해 냉정한 평가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강 목사는 재야에서 연방제 통일과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폐지 등을 주장한 대표적인 친북-좌파인사로 꼽혀온 인물이다. 1990년 11월 고 문익환 목사와 함께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을 결성, 남측본부 초대 의장을 지낸 강 목사는 남측 통일운동의 선봉장으로 반미친북성향을 강하게 드러내 왔다.
때문에 강 목사는 생전에 세 번이나 구속되는 고초를 겪었다. 1986년 난산교회 시절 긴급조치 9호로 투옥된 강 목사는 그해에 전북대 강연에서 베트남 호치민을 고무·찬양했다는 이유로 두 번째로 투옥됐다. 또 1994년 김일성 사망 당시 강 목사는 ‘북에 조문간다. 길 비켜라’는 글을 들고 북으로 향하다 국가보안법상 탈출 예비죄로 또다시 구속됐다.
북한의 선군정치를 옹호하고 북한 김정일 정권의 주장을 대변해온 범민련 남측본부도 1997년 5월 대법원에서 이적단체 판결을 받았다.
대표적인 친북단체인 ‘전국연합’ ‘통일연대’에서 활동하던 강 목사는 지난 2005년 5월 10일 ‘양키추방공동대책위’라는 단체를 만들어 맥아더동상 철거를 주장하는 농성을 벌임으로써 또다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강 목사는 당시 맥아더 동상을 철거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6·25 당시 맥아더가 들어오지 않았다면 우리는 양키의 식민지 지배를 받지 않고 살 수 있었다”고 주장했었다.
강 목사는 최근까지도 “이북 내 조국이 핵을 더 많이 가질수록 양키 콧대를 꺾을 수 있다” “북조선이 최강 아메리카와 맞대결을 벌이고 있는 것은 정신력에 의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김일성 영생주의’와 ‘김정일 선군정치’의 리념을 높이 사지 않을 수 없다”는 식의 친북발언을 마구 쏟아냈다.
범민련 역시 북한이 로켓 발사를 강행한 4월 초에도 “별의별 군사적 협박을 일삼던 제국주의 국가들의 준동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조선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위성 발사국으로서의 과학기술력을 전세계 앞에 자신있게 과시했다. 아무리 저들이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위반’과 ‘제재’를 부르짖어도 ‘위성’이 ‘미사일’로 둔갑할 수는 없으며 2012년 목표한 강성대국 건설을 향한 조선의 자주노선이 궤도를 이탈할 리 만무하다”는 입장을 밝혀 물의를 빚었다. 평양방송은 이런 범민련을 ‘애국조직’이라 칭하기도 했다.
강 목사의 자살이 더욱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이유는 그가 남긴 유서 때문이다. 강 목사는 “지금은 민중 주체의 시대다. 4·19와 6월 민중항쟁을 보라. 민중이 아니면 나라를 바로잡을 주체가 없다. 제2의 6월 민중항쟁으로 살인마 리명박을 내치자”는 과격한 유서를 남겼다.
일각에서는 강 목사의 자살이 사회혼란을 더욱 부채질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강 목사가 ‘민중주체’ ‘민중항쟁’ 같은 단어를 써가며 국민들을 선동하고 있다. 그의 죽음이 향후 진보·좌파 세력 결집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실제로 일부 야당에서는 강 목사의 자살을 정권 탓으로 돌리는 등 대정부 투쟁을 예고하고 나섰다. 민주노동당은 7일 논평에서 “목사님은 빼앗긴 나라 분단된 민족의 현실에 가슴을 찢으며 자주와 통일의 제단에 열과 성을 다 바쳤던 분이었다”며 “이명박 정권의 강압통치가 또 한 사람의 고귀한 생명을 앗아가고 말았다”며 현 정권에 책임을 돌렸다.
민주당도 “목사님께서는 당신의 몸을 던져서라도 이 땅의 민주주의와 민족의 평화공존과 통일의 중요성을 몸소 가르치신 것”이라며 “생전 당신께서 몸소 실천함으로 깨우치셨던 그 가르침대로 우리는 당신이 못다 이룬 뜻을 이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진보신당도 “평생을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헌신하셨던 고인으로서는 현재와 같이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남북관계가 파탄으로 향하는 현실을 견딜 수가 없으셨을 것”이라며 “사태를 이렇게까지 끌고 온 이명박 정부가 크게 맹성할 일”이라고 지탄했다.
야권의 태도와 관련 한나라당은 “강희남 목사의 유서는 특정세력과 이념의 불씨를 되살려 국민 선동을 부추기는 행동강령”이라는 논평으로 맞섰다.
주목할 점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 열기가 강 목사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이들 중 일부는 강 목사 추모에 합류, 현 정권에 맞서는 분위기다. 특히 강 목사가 자살 전 ‘사람됨이 문제다(고 노무현 죽음에 즈음하여)’라는 유고글을 남긴 것이 알려지자 일부 포털사이트에서는 노 전 대통령, 서동만 교수와 더불어 강 목사를 ‘MB정권에 희생된 세 바보’로 칭하며 추모를 독려하고 있다.
강 목사는 유고글 첫머리에서 “로무현 전 국가수반(대통령)의 처지를 두고 혹자는 거무줄에 걸린 나비에 비하기도 하고 많은 시민들은 리명박의 정치보복의 결과라고 판정한다. 그런데 만약 리명박이 자신은 로무현의 죽음과 무관하다고 한다면 이는 맹자에 보이는 대로 살인자가 사람을 죽인 것은 내가 아니고 저 칼이다(非吾也 兵也)라고 했다는 것과 같은 경우라 할 것이다”라며 이 대통령을 비판했다.
6·10 범국민대회와 강 목사 노제가 열린 6월 10일, 서울광장에 모인 일부 시민들은 강 목사의 자살에 대해 “이명박 정부가 애꿎은 사람들을 연거푸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며 비난했다. 강 목사의 자살도 민주주의 후퇴를 자청한 정부에 대한 반발의미에서 이뤄진 순절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6·10 민중항쟁을 기억하기 위해 나왔다는 한 시민은 “강 목사는 북한 정권을 옹호해온 사람이다. 그의 과거를 도외시한 채 죽음만을 부각시켜 마치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통일운동가로 미화되고 있다”며 성토했다. 또 다른 한 시민은 “민주화를 위해 싸워온 사람과 친북활동가는 구분해야 한다. 국민을 선동해온 그는 민주화투사도 통일운동가도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경계하는 목소리가 없지 않다. 강 목사의 자살을 노 전 대통령의 죽음과 억지로 연관시킨다면 노 전 대통령의 명예를 실추시킬 우려가 있을 뿐만 아니라 국민정서로 볼 때도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게 그것. 이들은 강 목사가 수장으로 있던 범민련은 노 전 대통령의 재임시에도 엄연히 이적단체였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