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전력 사장에 취임한 김쌍수 사장은 새로운 투자재원 마련을 위해 한전 내 부동산 태스크포스팀을 꾸려 본사를 비롯 한전이 보유하고 있는 전국의 막대한 부동산을 개발할 수 있도록 공사법 개정을 추진해왔다. 부동산 개발의 핵심은 본사 부지를 인근 부지와 묶어 114층의 초고층 건물을 세우는 것이었다.
사실 한전은 지난해와 올해 4조 원 이상의 적자가 예상되고 있어 전기를 팔아서 이 손실을 메우기는 힘든 상황이다. 본사 부지 개발이익은 한전의 수익개선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선택이었던 것. 그러나 정부는 삼성동 부지 재개발이 2012년 한전의 나주 본사이전 문제와 맞물려 있는 데다 한전에 부동산 개발을 허용하면 타 공기업에서도 같은 문제제기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들어 신중한 입장을 보여 왔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부동산 개발 전면 허용이 한전에 시급한 문제라고 보기 힘들고 개발계획이 한전에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동 한전 본사는 서울시내에 남아 있는 대규모 개발부지 중 단연 눈에 띄는 금싸라기 땅이다. 강남 중심부에 자리 잡은 8만㎡의 부지가 갖는 입지여건 때문에 개발이 가져올 부동산시장의 파급효과는 강남역 주변의 삼성타운에 못지않을 것이라는 분석을 낳고 있다.
한전 본사의 재개발 사업 이야기가 돌자 당시 삼성물산과 포스코건설은 이곳 부지 등에 114층 랜드마크 타워를 포함해 75층, 50층 등 초고층 빌딩 3개 동을 세우고 세계적인 미술관, 옥션하우스, 아트페어, 갤러리 스트리트 등을 한데 모은 복합단지 건설제안서를 강남구청에 제출하기도 했다.
사업제안서는 한전 본사 부지 이외에도 서울의료원과 한국감정원 등 주변 공공기관 이전 예정부지와 인근의 민간토지까지 연계해 총 14만 3535㎡를 복합단지로 조성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총 투자비만도 10조 원에 달하며 연기금과 외국계 투자기업 자금유치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것이 제안서의 주요 내용이었다고 한다.
한전 본사 부지의 경제적 가치는 공시지가로 환산해도 1조 2000억 원 수준에 달한다. 인근 시세로 매각해도 약 1조 7000억 원을 받을 수 있다. 이를 재개발해 매각하면 수조 원의 추가 차익이 예상된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한전 삼성동 부지만 개발해도 최소 5조 원, 많게는 7조 원 수준의 이익이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정부가 ‘전력사업 본래 목적’이라는 단서를 달아 한전 본사의 부동산 개발에 브레이크를 걸자 한전은 2012년까지 혁신도시인 전남 나주로 본사를 옮기기 전에 삼성동 부지를 팔아야 할 입장에 놓였다. ‘황금알을 낳는 사업’이 결국 정부의 반대로 사실상 좌절하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부동산 태스크포스팀까지 만들며 의욕적으로 일을 추진하던 한전 내부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한전 관계자는 “본사 부지 재개발을 통해 한전의 적자 해소 및 새로운 투자분야 개척이 가능한 기회였는데 무산될 처지에 놓여 아쉽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편 한전의 재개발 계획이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삼성동 부지를 누가 매입할 것이냐에 대해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전 부지에 관심을 보이는 곳으로는 일부 대기업과 부동산개발업체, 한국무역협회 등이 거론되고 있다. 대기업이나 개발업체가 살 경우 신사옥을 건립하거나 복합호텔·영화관·백화점 대형할인점 등이 들어서는 복합단지로 개발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된다. 무역협회는 지상에 컨벤션 센터와 전시장을 지어 제2의 코엑스를 건립한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동 부지를 매입할 대기업 후보군으로는 롯데와 삼성, 포스코 등이 거론되고 있다. 특히 강남 최고의 땅 부자로 거듭나고 있는 롯데가 가장 유력한 잠재적 후보로 주목받고 있다. 롯데의 경우 한전의 삼성동 부지를 매입한다면 잠실-삼성-서초를 잇는 거대한 강남벨트를 이루며 ‘강남시대’를 열어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현 정권에서 롯데는 신격호 회장의 오랜 숙원 사업이었던 제2 롯데월드 사업승인을 받았고 롯데칠성음료의 서초동 1322번지 물류센터 부지의 재개발이 가능해지는 등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 재계 일각에선 롯데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제2 롯데월드를 비롯해 롯데칠성 서초동 부지 개발과 관련해 특혜 의혹을 제기하는 이도 있다. 각종 건설 규제로 인해 건축허가가 떨어지지 않았던 곳이 정권 교체 이후 급물살을 타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배경으로 이명박 대통령과 롯데인사들 간의 친분을 거론하는 사람도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의 학맥으로 분류되는 한 인사가 자주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물론 뚜렷한 근거는 없지만 재계의 호사가들이 그럴듯한 얘기들을 덧붙여 펌프질하고 있어 소문은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이 대통령은 한나라당 경선 때부터 정치적 결단이 필요할 때마다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 머물며 고심했던 적이 있고, 정권교체 이후엔 정부 주요 행사가 롯데호텔에서 자주 열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롯데는 부동산 개발과 관련된 세간의 특혜 의혹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롯데 관계자는 “제2 롯데월드와 롯데칠성 서초동 부지 개발에 대한 특혜는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한전의 삼성동 부지 매입과 관련해서는 내부에서도 아직 거론된 적이 없다”며 “현재 제2 롯데월드 건설과 서초동 부지 개발에 전력을 쏟고 있다”고 전했다.
이윤구 기자 trus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