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법 인터넷 도박사이트 방가넷(위)과 이지게임. | ||
4년 전 임 씨는 새로운 사업 아이템 구상을 하다가 포커와 고스톱 등 사행성 오락을 할 수 있는 사이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미 많은 업체들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사행성 오락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었기에 다른 불법적인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사행성 오락, 즉 도박이 사람들을 중독시키는 힘을 알기에 그는 인터넷 도박 사이트가 ‘블루오션’이라고 판단하고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사이트를 운영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우선 경찰 단속을 피하기 위해 믿을만한 컴퓨터 프로그래머 홍 씨 등과 중국 칭다오로 넘어가 관리서버 사무실과 콜센터를 설립했다. 그리고 국내 호스팅 업체를 이용해 ‘방가넷’ ‘이지게임’ ‘파티타임’ 등 13개 도박 사이트를 2005년 9월에 인터넷 상에 개설했다.
임 씨의 예측이 적중했는지 중국에 본사를 둔 도박 사이트는 지난 4년 동안 오고간 판돈 총액이 8000억 원을 넘을 정도로 성장했다. 경찰에 따르면 임 씨 일당이 운영한 사이트에서 오고간 판돈은 하루 평균 5억 원 정도였다고 한다.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며 임 씨가 딜러비(중계료) 명목으로 챙겨간 금액은 최대 10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임 씨는 인터넷 상에서 불법적인 도박판을 만들어주고 막대한 부당이득을 챙긴 것이다. 경찰은 “이처럼 임 씨 일당이 지난 4년간 범행에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조직의 피라미드화’와 ‘경쟁업체에 대한 무차별 공격’이 있었다”고 말했다.
임 씨 일당이 운영한 도박 사이트는 겉으로 보기엔 게임물 등급위원회의 심의를 받은 정상 게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변조된 불법 도박 게임이었다. 게다가 이 게임 사이트는 사이트 운영자로부터 IP를 부여받은 전국 2만 3500개 게임방에서만 접속할 수 있었다.
이 사이트에 접속해 도박을 하려면 가맹 PC방에서 아이디를 지급받아야만 하는 등 철저한 회원제로 운영됐던 것. 이용자들은 가맹 PC방에서 현금으로 사이버머니를 충전했고 게임을 한 뒤엔 다시 현금으로 환전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임 씨 일당은 중국의 콜센터를 통해 가맹 PC방에 충전계좌를 가르쳐주는 방식으로 도박자금을 확보했다. 가맹 PC방이 사실상 도박장으로 사용된 것이다. 경찰은 도박에 참여한 아이디만 7만 1528개를 적발했으며 검거 당시 범죄계좌 49개, 사이버머니 350억 원도 압수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처럼 보편적인 도박 사이트와 달리 오프라인에서 회원을 끌어 모았다. 조직을 총본사, 본사, 부본사, 총판, 매장, 일반회원 등 6단계로 나누고 회당 판돈의 12%를 정해진 비율에 따라 나누어 가지는 피라미드식 점조직으로 회원을 유치했던 것이다.
임 씨 일당은 이러한 영업방식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것은 물론 자신들의 조직을 지킬 수도 있었다. 일반회원이나 매장이 가끔 경찰에 단속됐지만 피라미드식 점조직 구성 덕분에 상위조직이 발각되지 않고 사업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계좌추적을 피하기 위해 타인 명의의 계좌인 속칭 ‘대포통장’을 수십 개 구입해 사용한 뒤 보름 간격으로 교체하고 IP 식별을 불가능하게 하기 위해 국내 호스팅 업체와 중국 업체 간 서버를 서로 임대해 사용했다. 이렇듯 치밀한 수법을 통해 4년 동안 경찰의 추적을 피해 다닐 수 있었다.
경찰 수사 결과 이들은 중국 현지의 중국동포 해커를 고용해 경쟁업체인 8개의 도박 사이트를 마비시킬 목적으로 디도스(DDos) 공격을 가하기도 했다. 경쟁 사이트가 공격을 받는다 해도 불법 도박 사이트라는 약점 때문에 경찰에 신고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본 것이다. 임 씨 일당은 중국동포 해커에게 메신저로 대상 사이트와 공격 시간을 알려주었고 그것으로 디도스 공격은 간단히 이루어졌다. 이들은 경쟁 사이트가 서버를 옮기는 등 디도스 공격에 대응하자 규모를 늘려 2개월 뒤 다시 공격하는 방식으로 지난 1월과 3월, 5월 세 차례에 걸쳐 공격을 감행했다.
경찰 관계자는 “그동안 불법 도박 사이트 간 디도스 공격이 빈번하다고 들었는데 이번에 확인할 수 있었다”며 “불법 도박 사이트들끼리는 다들 디도스 공격 대비를 위해 100여 개 서버를 확보해둔다”고 말했다. 그리고 “임 씨 등은 경쟁 사이트에 타격을 가해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공격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임 씨는 도박 사이트 운영을 총괄하며 얻은 수익 중 100억 원을 투자해 지난해 8월 H 연예기획사를 설립했다. 지난 1월에는 톱스타급 영화배우 A 씨(37)를 포함해 유명 연예인들이 소속된 중견급 기획사 P 프로덕션을 인수하기도 했다.
경찰조사 결과 임 씨는 기획사 대표가 된 이후에도 하루 5억 원 이상의 판돈이 오가는 도박 사이트 운영을 포기하지 못하고 이중생활을 유지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임 씨는 연예기획사를 인수하고 나서도 낮에는 기획사 대표로 일하고 밤에는 도박 사이트 운영을 하는 등 철저하게 이중생활을 했다”며 “돈을 쉽게 번 만큼 고급 외제차를 여러 대 몰면서 강남의 40평대 호화 아파트에 살며 재력가 행세를 해 왔다”고 말했다.
한때 경찰은 임 씨의 연예기획사와 소속 연예인들 사이에 돈 거래 흔적을 포착해 연예인들의 도박 사이트 가담 여부를 수사했지만 무관한 것으로 밝혀졌다. 기획사에 소속된 연예인들은 기획사 대표인 임 씨가 불법 인터넷 도박 사이트를 운영해 온 사실을 언론보도를 통해 처음 알았다고 한다. 불법 도박 사이트를 운영해왔지만 낮에는 건실한 사업가로 일해왔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도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사건을 담당한 경찰 관계자는 “임 씨 일당이 점조직으로 움직이며 경찰 단속을 피하기 위해 대포통장을 만들고 중국에 서버를 두는 등 수사하는 과정에서 애로사항이 많았다”며 “하지만 팀원 모두가 조그만 단서 하나도 놓치지 않고 끈질기게 수사를 한 덕분에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윤구 기자 trus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