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찰총장에 내정됐다 낙마한 천성관 서울중앙지검장이 지난 17일 비공개 퇴임식을 마친 뒤 서울중앙지검을 떠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임채진 전 총장 사퇴 이후 검찰 내부에서는 누가 차기 총장이 될 것인가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국세청장과의 지역안배를 고려한 패키지 인사가 될 것이다’ ‘청와대와 의사소통이 가장 중요한 요소다’ ‘조직 장악력이 최우선 고려대상이다’ 등 거론되는 기준도 다양했고 여기에 따라 유력후보자의 이름도 자주 바뀌었다. 거론되는 후보자는 다양했지만 대부분 사법시험 20~21기 출신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TK 출신의 A 씨가 가장 유력하다는 소문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검찰 내부에서도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A 씨가 차기 총장에 지명될 것으로 봤다.
뚜껑을 열자 결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단 한 번도 하마평에 오르지 못했던 사시 22기 출신의 천성관 서울중앙지검장이 지명됐던 것.
청와대 내에서도 일부 관계자들만 알았던 파격인사였다. 청와대의 입인 이동관 대변인도 지명 당일 아침까지 천 지검장의 지명사실을 알지 못하고 지인들과 산행을 하다가 갑작스럽게 연락을 받고 복귀해 내정 사실을 발표했다. 대변인조차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전격적으로 이뤄졌다는 추론이 가능해지는 대목이다.
하마평에 올랐던 후보자들의 충격은 더욱 컸다. 이들이 내심 바라고 있었을 ‘검찰 총수’의 꿈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됐다. 뿐만 아니라 후배의 길을 터주기 위해 수십 년간의 검사 생활도 끝마쳐야 했다.
파격 인사는 검찰 개혁에 대한 기대감을 주기도 했지만 동시에 혼란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사실 A 씨가 유력 차기 총장후보로 떠오르면서 검찰 고위직들 중 상당수가 A 씨에게 줄을 섰다고 한다. 총장 임명 후에 있을 검찰 후속 인사도 A 씨가 될 것을 전제로 예측되곤 했다. 임 전 총장 퇴임 이후 검찰 내부의 권력 중심이 순식간에 A 씨에게로 쏠리는 현상이 벌어진 것. 심지어 검찰에서 정부 모처로 파견나간 한 고위직 인사는 청와대의 지명발표가 있던 날 오전에 A 씨에게 ‘내정을 축하한다’는 말까지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천 지검장이 갑작스럽게 차기 총장으로 지명됐고 줄서기를 했던 인사들은 순식간에 ‘패닉’ 상태에 빠졌다. 심지어 파견 고위직 인사가 A 씨에게 축하전화까지 했다는 소식이 천 내정자의 귀에까지 들어갔다는 얘기가 검찰 내부에 돌면서 이 인사는 상당히 난감해했다고 한다. 실제로 이 인사는 이때부터 언론에서 나오는 검찰 고위직 인사 후보에서 이름이 빠졌다는 후문이다.
반면 서울중앙지검에서 천 내정자를 보좌하던 인사들은 자연스럽게 ‘천의 사람’들로 분류됐고 주변인들의 부러움을 샀다. 특히 천 후보자와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B 씨의 경우 차기 중앙지검장은 ‘떼어논 당상’이라는 얘기도 들렸다.
하지만 이 같은 밑선에서의 줄서기가 불협화음을 불러 천 후보자 낙마로까지 이어졌다는 주장도 있다. 특히 지명 이후 애초 총장 후보로 거론됐던 인사 중 일부와 천 후보자 측 간의 알력이 생겼고 이로 인해 각종 자료들이 민주당 측으로 흘러나갔다는 게 검찰 내부의 정설이다.
낙마의 결정적 원인이었던 채권자 박 아무개 씨와의 부부동반 해외여행도 극히 일부 기관에서만 확인 가능한 것들인데, 이 내용이 야당 측으로 흘러간 것은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흘렸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법무부 아무개 인사가 총장 후보로 거론됐던 만큼 법무부 소속의 출입국 관리소가 유출의 근원지일 수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결국 천 후보자가 낙마하면서 이번에는 반대로 천 후보자의 측근들이 고개를 떨궈야 했다. 이처럼 차기총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과 지명철회가 전격적으로 이뤄짐에 따라 검찰 수뇌부는 개인적으로나 조직적으로나 큰 혼란에 빠졌다. 특히 서둘러 줄을 섰다가 전혀 예상치 못한 인사가 이뤄지자 난처한 상황에 빠진 사례가 있었던 만큼 몇몇 인사들은 함부로 움직였다가는 자기도 비슷한 꼴이 될 수 있다며 몸가짐을 신중히 하며 측근들에게도 입단속을 시키는 분위기다.
청와대와 검찰 일각에서 신임 총장 인사보다 먼저 고검장 인사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 천 후보자 낙마로 인한 업무 공백을 최소화해야 할 필요도 있지만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고위직들의 줄서기를 미연에 방지한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후임 총장은 천 후보자보다 사시 후배인 현직에서 기용하기보다는 천 후보자 내정 후 검찰을 떠난 사시 20~22회 인사들을 다시 불러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청와대 내부의 중론이다. 단기간에 조직을 추스르려면 조직 내부의 신망이 두텁고, 검찰이 처한 상황을 잘 아는 인물이 수장을 맡아야 한다는 논리에서다.
그 대상으로는 천 후보자 내정 전에 같이 총장후보로 거론됐던 권재진 전 서울고검장(사시 20회·대구), 문성우 전 대검 차장(21회·광주), 김준규 전 대전고검장(21회·서울) 등이 꼽히고 있다. 일각에선 이 기회에 검찰을 대대적으로 쇄신하기 위해 검찰 출신의 외부 인사를 전격 기용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대상으로는 이정수(사시 15회·충남·전 대검 차장), 박상길(19회·서울·전 부산고검장), 박만(21회·경북·전 성남지청장) 변호사 등이 거명된다.
한편 천 후보자 사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던 개인사업가 박 아무개 씨의 정체에 대해서 청문회 이후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박 씨는 천 후보자의 중학교 선배이자 검찰 선배였던 C 씨의 오랜 후원자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C 씨가 검찰을 떠나 기업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박 씨 입장에서는 검찰 내부의 또 다른 ‘끈’이 필요했고 C 씨의 소개로 천 후보자를 만났다는 게 지인들의 설명이다. 박 씨는 이때부터 의도적으로 천 후보자를 집요하게 쫓아다녔다고 한다. 천 후보자가 여름에 휴가를 가면 휴가지까지 쫓아와 밥과 술을 살 정도였다는 것. 또한 주요 낙마원인이었던 천 후보자의 신사동 빌라도 실제로는 박 씨가 시행에 참여해 지은 것으로 주변 사람들에게는 알려져 있다. 때문에 지인들 사이에서는 ‘박 씨의 이런 집요함에 천 후보자가 당했다’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