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상황 속에서 이 전 최고위원이 최근 보수언론인 <독립신문>과 <문화일보>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해 관심을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전 최고위원의 적극적 대응을 본격적 정치 행보의 시작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이 전 최고위원이 보수언론에 대해 발끈한 내막을 살펴보았다.
지난 7월 23일 이재오 전 최고위원 측은 서울 중앙지검에 <독립신문> 신혜식 대표와 백승목 칼럼니스트, <뉴스타운> 손상대 대표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지난달 20일 <독립신문> 및 <뉴스타운>에서 “반공투쟁무기 ‘빨갱이’ 용어를 되살릴 때”라는 제목으로 “통일혁명당 간부 이재문의 동생으로서 남민전 출신 이재오 등이 북 노동당의 직간접적인 접촉이나 영향과 무관하게 스스로 반체제 운동권이 되고 공산혁명투사가 되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라는 내용의 기사를 게재하였던 것이 그 이유였다.
이 전 최고위원 측은 “<독립신문>과 <뉴스타운>이 이 전 최고위원의 과거 전력을 이야기하면서 마치 북의 접촉이나 지령에 의해 운동권이 되었다는 뜻의 기사를 써 공공연하게 허위사실을 적시하여 명예를 훼손하였다”며 고소한 이유를 밝혔다. 이와 관련해 칼럼을 쓴 백승목 기자는 “검찰 쪽 일정이 나오는 대로 대응할 것이다”라며 “지금으로서는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독립신문>과 <뉴스타운>에서는 문제가 된 칼럼을 홈페이지에서 이미 삭제한 상태다.
<문화일보>는 지난달 24일자 시론에 ‘이재오의 환상’ 제하로 “이재오는 중앙대 대학원에서 교수 직함도 얻었고 한 달짜리 교수인데도 연구실까지 받았다. 명예정치학 박사? 미국에서 돌아오자마자 명예정치학박사를 땄다. 권력은 달콤하다. 권력을 잡으면, 정권의 창업공신이라는 소릴 들으면 미국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아도 낙타가 바늘 구멍 뚫기보다 더 어렵다는 교수님도 되고, 사각모자 쓰고 명예정치학박사가 된다…살생부 공천으로 한나라당을 친이·친박으로 두 동강 낸 장본인이 다시 당권을 장악하는 문제를 어떻게 합리화할 수 있냐!”라고 보도하며 홈페이지에 게재하였다.
이 전 최고위원 측은 “2008년 2월 15일 중앙대학교로부터 명예정치학박사 학위를 수여받았으며 2009년 3월 1일부터 계약기간 2년의 국제대학원 초빙교수로 임용되었고 공천심사에 관여한 사실이 없다”며 “<문화일보>에 보도된 내용은 허위사실이며 비방목적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난 29일 서울중앙지검에 <문화일보> 윤창중 논설위원과 <문화일보>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이에 대해 윤창중 논설위원은 “노코멘트”라며 “상황을 지켜보며 대응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전 최고위원이 언론사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사건이 관심을 받는 이유는 상대가 보수언론이기도 하지만 지난 3월에 취했던 스탠스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 전 최고위원은 지난해 11월 6일 민주당 박주선 최고위원과 김현 부대변인, <한겨레신문> <오마이뉴스> 등을 상대로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미국에 체류 중이었던 이 전 최고위원은 국내 대리인을 통해 소송을 진행했다. 서울서부지법에 제출한 소장에서 이 전 최고위원은 “박 최고위원 등과 해당 언론사는 지난 9월 23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김옥희 공천 비리 사건’ 재판 때 브로커 김태환 씨가 ‘김옥희 씨에게 물었더니 이재오 씨에게도 돈이 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한 것을 마치 사실인 양 주장하거나 보도해 원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3000만~5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요구했다. 이 전 최고위원은 “김옥희 씨가 자신은 그런 이야기를 김 씨에게 말한 적이 없다고 부인하는데도 피고들은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난 3월 19일 이 전 최고위원은 지난해 총선에서 자신에 대한 금품수수설을 제기했던 박 최고위원과 언론사 등에 대한 고소를 취하했다. 이 전 최고위원은 “정당과 정치적 성향이 다르다 하더라도 책임 있는 정치인이나 언론사가 사실 확인을 거치지 아니하고 무분별하게 허위사실을 진실인 양 호도하고, 함부로 의혹을 제기하는 건 구태이고 척결돼야 할 일이다”라며 “나라 사정이 이를 다툴 만큼 한가하지 않고, 이미 모든 진실이 드러난 바 있어 잘못을 용서하고 모든 이와 화합해 어려운 경제를 살리는 데 국력을 결집하고 국가 미래를 위해 모두 합심하자는 대승적 차원에서 이 건 소송을 취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불과 4개월 전까지만 해도 ‘대승적 차원’에서 소송을 취하한 이 전 최고위원이 ‘이재오 흔들기’를 하고 있는 언론에 정면대응, 명예훼손 소송을 걸고 나온 것은 뜻밖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전 최고위원의 이러한 강수가 최근 정치일선 복귀를 노리는 그의 움직임과 무관치 않은 것 같다고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전 최고위원이 당내로 조기 진입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방법으로 평가됐던 9월 조기전당대회론은 동력을 잃고 있지만 박희태 대표의 거취문제가 꺼져가던 불씨를 살리고 있다. 박 대표의 10월 양산 재선거 출마와 대표직 사퇴 여부에 따라 상황은 달라질 수 있는 여지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안상수 원내대표가 개각논의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면서 이 전 최고위원의 이름이 노동부 및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렇듯 전당대회 또는 개각을 통해 이 전 최고위원의 정치일선 복귀가 임박한 순간에 일부 언론이 이 같은 보도들을 하자 이 전 최고위원 쪽에서 ‘이재오 흔들기’로 판단하고, 명예훼손 고소라는 강수를 두며 대응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정가의 분석이다.
지난 6일 한나라당 장광근 사무총장이 친이계 좌장격인 이 전 최고위원의 정치복귀에 대해서 “이명박 정부 탄생의 1등 공신인 데다 큰 죄를 지은 것도 아닌 만큼 정치일선에 나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면서 “다만 본인이 내각에 대해선 크게 말을 안 하는 것 같다”고 밝히며 이 전 최고위원의 정치 복귀가 초읽기에 들어갔음을 예고하기도 했다.
한편 이재오 전 최고위원 측 담당변호사인 황현대 변호사는 이 전 최고위원의 팬클럽 ‘재오사랑’의 회장을 맡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이윤구 기자 trus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