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K-고려대-공안통인 노환균 중앙지검장이 지난 12일 서초동 중앙지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입장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 ||
하지만 검찰 인사를 두고 정치권은 물론이고 검찰 내부에서도 뒷말이 무성하다. 야당에서는 이번 인사가 ‘지역편중 인사’라며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TK 출신들이 주요 요직을 장악했다는 비판이다. 야당의 비판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검찰 내부의 ‘잡음’은 다소 의외다. 일각에서는 인사 과정에서 김경한 법무부 장관과 김준규 총장 내정자 사이에서 ‘신경전’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다. 12일 전격 단행된 검찰 고위직 인사의 특징을 살펴봤다.
이번에 단행된 검찰 인사는 조직의 수장인 검찰총장이 공석인 가운데서 이뤄졌다. 일반적으로 검찰 인사는 총장 임명이 먼저 이뤄진 후에 고검장-검사장급 순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검찰 역사상 유례가 없었던 총장의 장기 공백사태로 인해 이번 인사는 총장 인사보다 검사장급 인사를 먼저 단행하는 다소 비정상적 순서로 진행됐다.
이는 곧 내정자 신분의 총장 지명자가 인사에 관여할 여지가 그만큼 줄어들었음을 의미한다. 법적으로 검찰 인사는 상급기관인 법무부 장관이 하도록 되어있지만 조직의 수장인 검찰총장의 의중이 상당부분 반영되어 이뤄지는 게 관례다. 하지만 이번 같은 경우 김 내정자가 아직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한 상황이어서 법무부 장관과 청와대의 입김이 다소 강할 수밖에 없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여기에 대한 검찰 내부의 반발이 적지 않았고 결국 조율 과정에서 김 내정자의 의중이 일정 부분 반영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원래 8월 7, 8일께로 예정됐던 인사 발표가 2~3일 늦어졌다고 한다.
한 검찰 관계자는 이번 인사에서 누가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했는지는 검찰 빅4(서울중앙지검장, 대검 중수부장, 대검 공안부장, 법무부 검찰국장) 인사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청와대가 2명, 법무부 장관이 1명, 김 내정자가 1 명 정도 천거하는 선에서 인사가 이뤄진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나머지 고위직 인사도 이 정도의 비율에서 이뤄졌다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는 또한 “대부분의 언론들이 김경한 법무장관이 이번 인사에서 주도권을 행사한 것처럼 보도하지만 실제로는 김준규 내정자의 의중도 예상보다 적지 않게 반영됐고 김 장관도 많이 양보했다고 한다. 이번 인사에 대해 김 내정자도 상당히 만족스러워 한 것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고위직 인사의 특징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TK 인사들의 약진을 가장 큰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검찰 ‘빅4’의 경우 지역별로 보면 TK가 2명, 서울, 충남 각 1명이지만 이중에서도 핵심요직으로 꼽히는 서울중앙지검장(노환균 전 대검 중수부장)과 법무부 검찰국장(최교일 전 서울고검 차장)은 모두 TK에 고려대 출신이다. 고검장-검사장급 인사에서도 TK 출신들의 수는 그렇게 많지 않지만 주요 보직은 거의 장악했다는 평가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주요 보직은 TK 출신들이 차지했고 나머지 인사들은 지역안배를 한 모양새를 보인다”고 평가했다.
‘BBK 검사’들의 약진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중수부장에 임명된 김홍일 전 대검 마약조직범죄부장은 지난 17대 대선 전 서울중앙지검 3차장 검사로 재직하면서 BBK 사건을 잘 마무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이에 대해 “예산고-충남대 출신의 김 부장은 출신학교 계보로만 보면 빅4 자리에 오르기 어려웠지만 수사 경력이 화려하고 성격도 강직하다는 점이 높은 점수를 받은 것 같다”며 “BBK 수사에 대한 보은인사 성격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닌 듯하다”라고 설명했다. 당시 김 부장과 함께 BBK 수사를 주도했던 최재경 서울중앙지검 3차장 검사도 이번 인사에서 법무부 기획조정부장으로 승진했다. 사시 27기 중에서는 홍만표 전 중수부 수사기획관과 함께 가장 빠르게 승진한 케이스. 최 부장은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의 조카이기도 하다.
검찰 빅4 중의 하나인 공안부장에 임명된 신종대 전 춘천지검장도 지난 대선 때 중앙지검 2차장 검사로 재직하면서 민감한 사안들을 많이 수사했다. 신 부장은 이명박 대통령(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지시로 ‘경부운하 타당성 검토’ 연구 과정에 관여했다는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를 받아온 서울시정개발연구원(시정연) 등 관계자 33명에 대해 ‘혐의 없음’으로 내사종결 처리했다. 또한 노무현 정부의 청와대가 ‘이명박 후보’를 명예훼손 혐의로 조사했을 때도 사건을 담당해 이 대통령을 서면조사한 바 있다.
공안통의 약진도 주요 특징 중 하나다. 사실 공안검사들의 화려한 귀환은 지난 천성관 전 서울지검장의 검찰총장 내정 때 이미 예견됐던 일이다. 천 전 지검장은 검찰 내에서도 손꼽히는 공안통이었다. 노동운동 강세지역인 울산, 창연 등에서 공안검사를 지낸 노환균 전 대검 공안부장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승진한 것도 이번 인사에서 공안통의 약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경우다. 향후 주요 부패수사에서 대검 중수부보다는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 무게가 실릴 것이라는 검찰 내부의 분위기와 연관지어 본다면 공안통인 노 지검장의 취임은 향후 검찰 수사의 방향을 엿볼 수 있는 ‘포인트’다. 공안 경력이 문제가 돼 참여정부에서 두 차례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했다가 지난해 턱걸이 승진했던 황교안 창원지검장이 1년 반 만에 고검장으로 고속 승진한 것도 공안통 약진의 한 사례다.
이처럼 공안검사들의 화려한 부활에는 김경한 법무부 장관이 입김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장관은 대표적인 공안 검사 출신으로 법무부 장관이 임명되면서 참여정부 때 폐지됐던 대검찰청 공안 3과를 부활시키는 등 이미 ‘공안 전성시대’를 예고한 바 있다.
이번 인사로 일단 검찰 수뇌부의 공백은 어느 정도 채워졌다. 하지만 노무현 게이트 수사로 인해 큰 상처를 입었던 검찰의 신뢰회복은 이제부터다. 그래서 이번에 승진한 검찰 수뇌부들의 어깨가 더욱 무거워 보인다. 일각에서 우려했던 것처럼 정치적, 지역적 편향성이 수사 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면 국민이 느끼는 검찰의 신뢰도는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