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씨가 인터넷에 난무하는 역할대행 사이트에 접속한 것은 올 1월이었다. 수많은 역할대행 서비스 중 김 씨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으니 바로 애인대행 서비스였다. 돈만 주면 마음에 드는 여성과 실제애인처럼 지낼 수 있다는 애인대행 서비스는 김 씨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실제로 사이트에는 애인대행을 원하는 남성들과 선택을 기다리는 여성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었다. 이들은 밤낮 할 것 없이 저마다 원하는 이상형과 조건을 내세우며 파트너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두 번 시험삼아 쪽지를 보내본 김 씨는 ‘조건’만 맞으면 애인사이로 데이트를 즐길 수 있다는 여성들의 답변에 솔깃하게 된다. 김 씨를 놀라게 만든 것은 여성들의 적극적인 모습이었다. 여성들은 애인역할을 해주는 대가로 각기 나름의 조건을 제시했다. 데이트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은 남자가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애인대행은 영화와 식사, 술자리 등 여느 연인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데이트부터 잠자리로 이어지는 풀코스까지 다양했으며 대가도 그에 따라 달랐다. 레스토랑이나 식사 메뉴, 데이트코스는 물론 숙박업소까지 여성들이 개인의 취향에 따라 ‘초이스’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성들의 역할은 실제 애인처럼 다정하게 데이트를 해주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원하는 스타일의 여성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고 합의하면 잠자리까지 가능한 애인대행 서비스에 뭇 남성들은 열광했다.
실제로 애인 대행 사이트를 이용해 봤다는 30대 중반 직장인 A 씨는 “여러 가지 신경쓰고 챙겨줘야 하기 때문에 연애는 하기 싫다. 하지만 가끔씩 외로울 때가 있다. 일회성 애인은 이럴 때 적격이다”라고 말했다. 10년 전 결혼해이미 두 아이의 아버지인 40대 사업가 B 씨는 “유부남도 때론 연애하는 기분을 느끼고 싶을 때가 있다. 생활의 활력소가 된다고 할까. 신분을 드러낼 필요도 없고…. 이런 공간이 아니면 언제 20대 여성들과 데이트를 해보겠나”라고 고백했다.
애인으로 지낼 수 있는 기간은 통상적인 계약만남보다 짧고 일회성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만나서 마음에 들 경우 약정 금액에 따라 기간을 다양하게 선택하거나 추후 변경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남자의 경제적 능력이 뛰어날 경우 ‘장기 스폰’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몇 곳의 사이트를 둘러보며 분위기 파악을 하던 김 씨는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된다. 아무리 금전적인 거래하에 이뤄지는 계약만남일지라도 ‘조건’이 좋을수록 만남이 훨씬 수월하게 이뤄진다는 점이었다. 남성은 경제력과 학력, 여성의 경우 외모와 나이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애인대행 사이트의 현실이었다. 상당수의 여성들이 근사한 조건을 가진 남성에게 더욱 적극성을 띤다는 사실을 파악하게 된 김 씨는 자신의 신분을 그럴싸하게 꾸민 뒤 여성들을 유인하기로 마음먹는다.
“S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교포입니다. 현재 잠시 귀국했는데 한국에 머무는 한 달 동안 제 애인이 되어 주시는 여성께 500만 원을 드리겠습니다.”
김 씨는 역할 대행 사이트 두 곳에 접속해 위와 같은 내용의 쪽지를 뿌렸다. 글의 표현은 최대한 정중하고 진솔하게 포장했다. 많은 여성들이 해외체류 경험이 많은 젠틀하면서도 지적인 사업가에 열광한다는 것을 꿰뚫어 본 김 씨의 고단수 전략이었다. 여성들의 반응은 놀라웠다.
무작위로 보낸 쪽지에 수십 명의 여성들이 답을 해왔다. “단기간이지만 마음 맞는 여성과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김 씨의 말에 여성들은 앞 다투어 만남을 원했다. 명문대 출신의 해외교포 사업가와 데이트도 즐기고 거액의 돈까지 받을 수 있다는 꾀임에 여성들은 너무 쉽게 넘어갔던 것이다.
김 씨는 이들 중 외모가 돋보이는 20대 여성들만을 골라 만났다. 여성들의 직업은 여대생부터 옷가게 점원, 평범한 회사원까지 다양했다. 데이트 내내 젠틀하면서도 매너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대화 틈틈이 매끄러운 영어를 구사하는 김 씨는 겉으로 볼 때는 완벽한 재미교포 사업가였다.
특히 빼어난 화술과 자상함은 김 씨의 최대 무기였다. 김 씨는 이미 불혹이 넘은 나이였지만 여유로움과 편안함을 과시했고, 여기에 매료된 여성들은 김 씨의 신상에 대해서는 전혀 의심하지 않은 채 만나자마자 애인모드에 돌입했다. 김 씨는 이런 식으로 만난 여성들과 서울 시내 모텔에서 성관계를 맺은 뒤 노트북의 내장 카메라를 이용해 성행위 장면을 몰래 촬영했다. 탁자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성관계를 하는 동안 카메라가 돌아가게 해뒀던 것이다. 여성들은 당연히 이러한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김 씨의 뻔뻔스러움과 파렴치함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김 씨는 성관계를 가진 후 돌변했다. 잠자리를 가진 후 돈을 주겠다고 했으나 그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사실 김 씨는 애초부터 500만 원을 줄 생각이 없었다. 목적은 미모의 젊은 여성들과의 엔조이였다. 때문에 김 씨는 마음에 들지 않는 여성이나 돈을 요구하는 여성들과는 그날 이후 과감히 연락을 끊어버렸다. 능력있는 교포 사업가로 위장한 자신에게 넘어올 여자는 얼마든지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신 김 씨는 만난 여성들 중 마음에 드는 여성에게는 집착을 보였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여성에게는 계속 만날 것을 요구했다. 그러다 여성이 만남을 거절하면 촬영된 성행위 장면을 여성의 휴대폰으로 전송했다. 성행위 장면을 촬영한 것은 애초부터 협박용이었던 셈이다. 피해 여성으로서는 놀랍고도 충격적인 일이었다.
이런 식으로 김 씨는 올 1월부터 검거되기 직전까지 약 8개월간 무려 64명의 여성을 농락했다. 일부 여성들은 김 씨에게 속은 것을 알아차렸지만 속앓이만 하고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자신의 신상이 알려지는 게 두려워 경찰에 신고할 수 없었다는 것. 동영상을 인터넷에 유포하겠다는
김 씨의 협박이 여성들의 입을 막아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김 씨의 카사노바 행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애인대행 사이트를 중심으로 이런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 경찰에 의해 꼬리를 잡힌 것.
조사결과 국내 모 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김 씨는 회사를 경영하다가 부도가 나자 부모에게 물려받은 떡집을 운영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1950년대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박인수 사건’ 이후 반세기 만에 재등장한 한국판 카사노바에 경찰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면서 경찰은 “돈만 주면 뭐든지 다 하는 젊은 세대들의 성의식도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