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국무총리 후보자로 내정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지난 4일 방배동 자택 앞에서 모범택시를 타고 있다. | ||
반면 한나라당은 이명박 대통령이 꺼내든 회심의 ‘승부 카드’가 흠집나지 않도록 수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는 분위기다. 야권 일각에서는 청와대 핵심부가 국정원 등 정보기관을 총동원해 ‘정운찬 보호’에 주력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돌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정 후보자가 ‘총리 후보자’를 넘어 향후 여권 권력구도 및 차기 대권지형을 뒤흔들 수 있는 핵심 인물로 부상한 만큼 정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는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할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청문회 과정에서 정 후보자와 관련된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거나 폭발력 있는 비공개 X파일이 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형국이다. 청문회 정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정운찬 X파일’ 속으로 들어가 봤다.
“제2의 천성관으로 만들어야 한다.”
천성관 전 검찰총장 후보자를 낙마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박지원 민주당 정책위의장이 던진 일성이다. 박 의장은 9월 7일 “정 후보자는 연애는 민주당과 하고 결혼은 한나라당과 했다”며 강력한 인사청문회를 통해 정 후보자를 응징해야 한다는 의지를 보였다.
민주당 지도부도 9월 10일 ‘정운찬 저격수’ 4인방을 인사청문특위 위원으로 선정하는가 하면 총 11명이 투입된 총리인사청문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정 후보자에 대한 대대적인 융단폭격을 준비하고 있다. 정 후보자가 공식적인 검증절차를 거치지 않은 만큼 그와 관련한 모든 정보와 X파일을 취합해 총리 후보로서의 자질과 도덕성을 철저히 파헤치겠다는 전략이다.
정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 일정(9월 21~22일)이 잡히면서 여야 정치권은 이미 전투 모드로 돌입한 상태다. 청문회 쟁점 또한 총리 후보로서의 자질과 역량 검증을 넘어 도덕성과 정체성 논란 등을 이슈로 한 정치 청문회장으로 변질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우선 충청지역 최대 현안이자 가을정국 핫 이슈로 부상한 세종시(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둘러싼 진실 공방전이 청문회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정 후보자의 ‘세종시 수정 추진’ 발언으로 촉발된 세종시 논란은 충청권 민심과 여야의 정국 주도권 싸움과 맞물려 피 말리는 대혈투를 예고하고 있다.
야권 관계자들은 정 후보자가 코드가 다른 현 정부와 손을 잡은 이면에는 세종시 문제를 비롯한 모종의 정치적 ‘거래’가 있었을 것이란 의구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특히 충청권을 정치적 기반으로 삼고 있는 자유선진당은 9월 10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이회창 총재를 비롯한 주요 당직자와 당원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행정도시 변질음모 규탄대회’를 개최하는 등 세종시 원안 추진에 당 사활을 걸고 있다.
선진당은 이날 규탄대회에서 “이명박 정부가 정부기관 이전·변경고시를 하지 않고 미적대더니 결국 정운찬 총리 내정자를 통해 ‘세종시 수정 추진’이라는 마각을 드러냈다”며 음모론을 제기하는가 하면 정 후보자를 ‘매국노’ ‘빨갱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하면서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 자유선진당 당직자들이 지난 7일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정 후보자에 대한 지명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 ||
문제는 정 후보자의 병역 문제를 비롯한 재산, 개인 신상 등 공식적으로 한 번도 검증받지 않은 비공개 X파일이 청문회 과정에서 폭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민주당내 TF팀을 비롯한 야권의 청문위원들이 겨냥하고 있는 것도 바로 ‘정운찬 X파일’이다. 특히 병역이나 재산 문제 등은 국민 정서를 자극하는 뇌관으로 작용해 왔다는 점에서 정 후보자의 근심을 더해주고 있다. 정 후보자가 석연찮은 이유로 병역을 면제받았고, 소득 신고를 일부 누락하는 등 재산과 관련한 의혹들도 하나 둘씩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9월 9일 국회에 제출된 ‘국무총리(정운찬) 임명동의안’ 중 병적증명서 내용에 따르면 정 후보자는 1966년 서울대 1학년 재학 중에 1차 신체검사를 받고 ‘2을종’ 판정을 받았다. ‘2을종’은 현재 기준으로 3급에 해당되는데 현역병 입영 대상이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정 후보자는 이듬해(1967년) 다시 신검을 받았고, ‘보충역’(현 공익근무요원)으로 분류됐다. 이후 68~69년에는 징병검사 연기 신청으로 군 입대를 미루다가 1970년 대학을 졸업한 뒤 다시 신검을 받고, ‘1을종’(현재 2급) 판정을 받았다. 이어 71년 네 번째 신검에서는 재차 ‘보충역’으로 분류됐다.
여러 차례 군 입대를 미루던 정 후보자는 1972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이후 6년 뒤 미국 컬럼비아대학 조교수로 재직하던 시절인 1977년 고령(31세)을 사유로 징집을 최종 면제받았다. 물론 정 후보자는 어린시절 숙부의 양자로 입적돼 숙부가 세상을 떠난 뒤 호적상 ‘독자’로 기록돼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부선망(父先亡) 독자’의 경우 단기 보충역(6개월)으로 근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단기 보충역마저 이행하지 않았고 고의로 병역을 회피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2007년 대선정국 당시 정 후보자가 민주개혁 진영의 유력한 대선주자로 거론되자 한나라당은 그의 병역 면제 의혹을 강하게 제기한 바 있다. 따라서 고위 공직자의 병역 사항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국민 정서를 감안할 때 정 후보자의 석연찮은 병역 면제 의혹은 청문회를 달구는 핵심 뇌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 후보자의 재산 문제도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다. 정 후보자가 소득세 신고를 일부 누락한 사실이 드러나고 있고, 재산 증식을 둘러싼 논란도 거세지고 있다.
국회에 제출된 정 후보자의 소득세 납세 실적 자료에 따르면 정 후보자는 2007년 11월부터 인터넷 서적 쇼핑몰인 ‘예스24’ 고문을 맡아 2007년 1250만 원, 2008년 5000만 원의 고문료를 받았다. 그는 원천소득공제에 따라 고문료에 대해 2007년 6만 3000원, 2008년 413만 원의 세금을 각각 납부했다. 하지만 정 후보자는 2007년과 2008년 합산소득신고에서 서울대 교수 급여와 ‘예스24’에서 받은 고문료를 합산해 신고해야 했으나 고문료를 누락함에 따라 결과적으로 합산소득 미신고 분에 대한 세금을 탈루한 셈이다.
▲ 2007년 ‘신정아 스캔들’에도 정운찬 후보자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 ||
정 후보자의 재산이 최근 3년 동안 6억 4000만 원이 증가한 것을 놓고도 뒷말이 무성하다.
국회에 제출된 정 총리 후보자의 재산신고 내역과 서울대 총장 퇴임 직후인 2006년 9월 재산신고 내역에 따르면 정 후보자의 재산은 이 기간 11억 5800만 원에서 17억 9800만 원으로 6억 4000만 원 늘어났다. 정 후보자와 부인이 공동으로 보유한 방배동 아파트가 2006년 8억 6300만 원(공시지가)에서 올해 10억 5600만 원(기준시가)으로 1억 9300만 원 늘어났고, 역삼동 오피스텔은 같은 기간 8400만 원(공시지가)에서 2억 4200만 원(기준시가)으로 1억 5800만 원이 증가했다.
이에 대해 정 후보자 측은 “공시지가와 기준시가 간 가격 차이와 더불어 부동산 가격이 상승한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이유든 정 후보자의 재산이 3년 사이에 6억 원 이상 증가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서민적이고 청렴한 이미지는 타격을 받게 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병역과 재산 문제 외에도 정 후보자의 개인 신상과 관련된 민감한 X파일이 공개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정 후보자는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황우석 사태’와 ‘신정아 스캔들’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바 있다.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는 정 후보자가 서울대 총장 재임시절인 2004년 9월 서울대 첫 석좌교수로 임명됐다. 하지만 2005년 10월 황우석 사태가 터지자 서울대는 같은해 12월 황 교수의 서울대 교수직 사퇴를 결정한 데 이어 2006년 1월에는 서울대 조사위원회가 “황우석 교수의 2004년 논문 역시 2005년 논문처럼 의도적으로 조작되었으며 원천기술 역시 독창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공식 발표해 황 전 교수를 궁지로 몰아 넣었다. 하지만 ‘황우석 사태’와 관련해 일부 황우석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줄기세포 관련 사업과 관련한 조작설 및 음모설이 끊이질 않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정 후보자를 정점으로 한 서울대가 ‘황우석 죽이기’에 동참했다는 의혹도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정 후보자가 또다시 ‘황우석 사태’ 진실 게임에 휘말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참여정부 말기인 2007년 9월 정·관계를 넘어 경제계, 문화계, 종교계 등 문어발식 로비 징후가 포착되면서 권력형 스캔들로 비화된 ‘신정아 스캔들’에도 정 후보자의 이름이 오르내린 바 있다. 스캔들 주역인 신정아 전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이 2007년 9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05년에 정 후보자가 자신을 서울대 교수 겸 미술관장직에 추천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당시 정 후보자는 “서울대 미술관 운영 문제로 신 씨를 만난 적은 있지만 교수 채용을 제의한 적은 없다. 신 씨가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반박한 바 있다.
하지만 ‘신정아 스캔들’과 관련한 숱한 의혹과 구설수가 지금도 세인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는 점에서 정 후보자가 신 씨와 만남을 가졌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도덕성에 상처를 남길 개연성은 충분하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야권 일각에서는 2007년 대선정국 때 여의도 정가 주변에서 나돌았던 정 후보자의 여자 문제가 도덕성 검증 차원에서 청문회 뇌관으로 부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정 후보자는 평소 자상한 성격과 남녀를 불문한 친밀한 대인관계로 인해 마타도어가 난무하던 대선정국 당시 “여자 문제가 복잡하다”는 추문에 휩싸인 바 있다. 당시 정치 호사가들 사이에서는 정 후보자가 복잡한 여자문제 등 폭발력 있는 X파일이 터질 수 있음을 우려해 대선 출마를 포기한 게 아니냐는 미확인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메머드급 ‘인사청문 TF’를 발족한 민주당과 당 사활을 걸고 ‘정운찬 죽이기’에 올인 승부를 펼치고 있는 자유선진당이 과연 폭발력 있는 ‘정운찬 X파일’을 찾아낼 수 있을까. 청문회 정국은 물론 향후 정국 주도권 향배를 좌우할 화약고로 부상한 정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 국민적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