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준규 검찰총장 | ||
먼저 중앙지검 특수 2부는 지난해 제기됐던 SK건설의 부산 오륙도 SK뷰 공사 관련 및 시행사와 이면합의를 통한 비자금 조성 의혹을 내사 중이다. 또 국내 최대 물류회사인 대한통운 경영진의 회사자금 횡령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 1부는 태광그룹이 케이블 방송 사업자 큐릭스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이면계약과 정치권의 로비 의혹에 대해 내사를 벌이고 있다. 금융조세조사 1부도 한진그룹의 부동산 취득과 세금 탈루 의혹을 들여다보고 있다. 인천지검 특수부 또한 9월 22일 두산인프라코어 인천 본사를 압수수색해 군납품 과정에서 뒷돈을 챙겼거나 비자금을 조성했는지 여부를 수사하고 있다. 고강도 사정 드라이브 이면에 숨겨져 있는 검찰의 승부수를 쫓아가봤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소속의 한 관계자는 “이번 수사가 이미 오래 전부터 기획되어 왔던 ‘예고된 수사’”라고 말했다. 그는 “검찰이 기소한 사건 중에 법원에서 무죄판결이 났던 수사가 적지 않아 검찰 수사에 대한 신뢰도가 상당히 타격을 입은 상황에서 이번 수사는 검찰의 명예를 회복하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검찰은 수뇌부 공백으로 ‘개점휴업’ 상태였던 지난 두 달여 동안 절치부심하며 이번 수사를 준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대형 기업 비리가 일반적으로 단순 범죄가 아닌 정권과의 유착 관계에서 비롯됐다는 전례에 비춰볼 때 이번 수사가 정치권으로 불똥이 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검찰의 사정 수사가 본격화되자 가장 비상이 걸린 기업은 다름 아닌 SK그룹이다. 검찰은 최근 SK건설이 아파트 공사 과정에서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한 의혹과 함께 방송사 공사 수주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정황을 확보하고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SK건설은 부산 용호동 ‘오륙도 SK VIEW’ 아파트를 시공하면서 시행사인 M 사와 이면계약을 맺고 사실상 시행과 시공 수익을 모두 챙겼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SK건설이 이 방법을 통해 올린 추가 수익을 회계장부에 기재하지 않고 빼돌려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또 SK건설이 2001년 MBC 일산제작센터 공사 수주 과정에서 1차 심사에서 탈락하고도 사실상 수의계약 형식으로 공사를 맡게 된 과정에 특혜가 있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내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MBC 일산제작센터 특혜 의혹은 올해 초부터 이미 여의도 정가에 파다하게 퍼졌던 것으로 ‘현 정권이 MBC를 압박하기 위한 카드로 활용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검찰은 언론을 통해 알려진 이러한 비리 외에도 SK 계열사가 중소 모바일 생산 업체에 자금을 지원하면서 이 돈의 일부가 정치권으로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내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전지검은 이와 관련한 수사를 올해 초부터 진행하며 모바일 생산업체 대표인 이 아무개 씨를 구속하는 등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특히 이 대표는 민주당 고위당직자인 A 씨와 연관이 깊어 정치권 주변에서는 ‘표적수사’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수사는 더 이상 진척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검찰 주변에서는 SK그룹의 검찰 고위직 출신 모 임원이 수사가 확대되는 것을 막았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검찰은 이러한 소문을 비웃기라도 하듯 최근 다시 SK에 대한 수사를 재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사정기관 관계자들은 SK 수사가 본격화될 경우 그 불똥은 여의도 정치권으로 튈 수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검찰은 또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창업주로부터 재산을 넘겨받으면서 상속세를 일부 포탈한 혐의를 잡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여기에 검찰은 오너 일가의 주식 거래 내역을 살피던 도중에 차명 재산 보유 사실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뿐만 아니라 서울국세청 조사 4국에서도 한진그룹에 대해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실시하고 있어 한진은 그야말로 패닉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한동안 자금압박에 시달렸던 두산그룹 역시 검찰 수사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게 됐다.
인천지검 특수부는 국민권익위원회의 조사 결과 두산인프라코어가 2003년부터 여러 건의 국책 연구개발 사업을 진행하면서 하청업체로부터 이미 납품받은 부품을 연구개발 사업용으로 신규 납품받은 것처럼 서류를 조작해 약 12억~14억 원의 정부 보조금을 빼돌린 정황이 드러남에 따라 9월 24일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또 두산인프라코어가 지난 2007~2008년 해군과 고속정 9척에 대한 발전기 납품 계약을 맺고 고속정 건조업체 두 곳에 20여 대의 발전기를 납품하는 과정에서 납품을 이미 마친 10여 대의 납품가를 부풀려 4억여 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에 대해서도 집중적인 수사를 벌이고 있다. 검찰은 이 돈이 영업이익 조작이나 임원의 비자금 조성에 사용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또 고속정 건조사업을 발주한 해군 관계자 등이 개입된 정황이 포착된 만큼 조성된 비자금의 일부가 이들에게 뇌물로 흘러들어갔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또한 검찰은 두산인프라코어에 발전기 부품을 납품하는 하청업체가 세금 계산서 조작 등을 통해 ‘단가 부풀리기’에 가담한 혐의를 포착하고 자금 흐름을 추적 중이다. 두산인프라코어의 비리 의혹이 한꺼번에 불거진 배경에는 내부관계자의 고발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두산그룹의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두산은 올 해 몇몇 직원이 비리를 저질러 이들을 해직했는데 이들이 앙심을 품고 회사 비리와 관련된 내용들을 들고 나가 검찰에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올 3월 청와대 행정관 성접대 사건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태광그룹도 또다시 검찰 수사망에 걸려들었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 1부는 태광그룹 계열사 ‘티브로드’가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 큐릭스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제기된 이면계약과 로비 의혹을 내사중이다. 검찰은 티브로드가 지난 1월 당시 관련법을 피해 편법으로 업계 경쟁사인 큐릭스를 인수하면서 정치권 인사 등을 상대로 조직적인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을 집중적으로 파헤치고 있다. 검찰은 지난 3월 발생한 티브로드의 청와대 행정관 접대 사건을 수사한 기록과 인수 관련 서류 등 각종 자료를 확보해 태광그룹의 큐릭스 인수 과정 전반을 살펴보고 있다.
재계 일각에서는 태광그룹에 대한 수사를 미디어법과 연관 지어 해석하기도 한다.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1~2개의 종합편성채널은 ‘언론사 + 통신사’ 형태의 컨소시엄에 배정할 예정이었으나 케이블 업계가 지난 몇 년간의 방송 노하우를 무기로 1개 채널을 요구하고 나서 상황이 복잡하게 꼬여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미 보도, 연예, 스포츠 등 모든 분야에서 노하우를 축척한 케이블 업계가 신규 진입자들보다 훨씬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계 주변에서는 이번 수사가 케이블업계 최대 업체인 태광산업에 일종의 경고성 메시지를 던져 케이블 업계를 위축시키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대한통운 경영진의 횡령 의혹 수사가 과연 모기업인 금호아시아나 기업으로까지 확대될 것인지 여부도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몇 년 전 금호가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잇따라 인수하자 재계 주변에서는 정권 차원에서 호남기업인 금호를 밀어준 게 아니냐는 소문이 나돈 바 있다.
김준규 총장 취임 이후 전열을 재정비한 검찰의 고강도 사정 드라이브에 재계를 비롯한 정·관계는 당분간 잠못 이루는 가을밤을 보내야 할 것 같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