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를 앞두고 박지원 의원(오른쪽)과 안철수 의원 사이에 ‘당권-대권 밀약설’이 나돌고 있다. 지난 3월 31일 당시 안철수 대표가 의원총회에 앞서 박지원 의원을 맞이하는 모습. 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 안철수 의원 행보가 관심을 모은다. 지지율이나 당내 입지가 예전만 못한 것은 분명하지만 여전히 유력한 ‘잠룡’으로 꼽히는 안 의원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표심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박지원 의원 측이 안 의원에게 ‘러브콜’을 보낸 정황이 <일요신문>에 포착됐는데, 이러한 배경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양측 간에 밀약이 오갔다는 소문까지 나오고 있어 잔잔하기만 하던 차기 당권레이스가 한층 달아오를 전망이다.
예산정국, ‘사자방(4대강·자원개발·방산 비리)’ 국정조사 등 굵직굵직한 이슈로 정치권이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지만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 시선은 내년 2월 전당대회로 향해 있다. 전당대회 룰, 후보들 합종연횡 등을 놓고 각 계파 간에 치열한 샅바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정작 ‘그들만의 리그’가 될 것이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 문재인 의원 독주로 인한 흥행 실패로 국민들의 주목을 끌지 못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물론 변수는 있다. 범친노계 정세균 의원의 ‘캐스팅 보트’ 역할, 문 의원 견제론 확산 등이 그것이다. 문 의원 진영에선 범친노계인 정 의원으로 인해 내부 표가 이탈하고 당 일각에서 나오고 있는 ‘당권-대권 분리론’이 힘을 얻을 경우 고전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윤호석 정치평론가는 “과거 유력 대권주자들은 대세론 속에 당을 장악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 의원은 최대 계파 좌장이긴 하지만 대권에 있어선 회의적 견해가 팽배한 게 사실”이라면서 “차기 총선과 대선을 감안한 냉정한 평가가 이뤄질 경우 의외로 문 의원이 힘든 싸움을 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문 의원과 함께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는 안철수 의원과 손학규 전 고문 스탠스도 전당대회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전당대회 출마 후보자들이 앞 다퉈 둘을 찾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정계은퇴를 선언한 손 전 고문의 경우 여의도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손 전 고문 최측근 인사는 “손 전 고문 성격상 정치권으로 컴백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손 전 고문 역시 자신을 찾아온 정치인들의 도움 요청에 거부 의사를 나타낸 것으로 전해진다.
손 전 고문 복귀가 힘들다면 적어도 당내에서 대권주자로서의 ‘문재인 대항마’는 한 명으로 압축된다. 지난 7월 재·보궐 선거 참패 책임을 지고 당 대표직에서 물러난 안철수 의원이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다시 한 번 몸값이 올라가고 있는 안 의원은 최근 공식석상에서 주요 현안에 대한 목소리를 내며 활동 재개에 나섰다. 안 의원은 11월 24일 대전을 방문해 박근혜 대통령의 ‘창조경제’를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정치권에선 이처럼 안 의원이 박 대통령 때리기를 통해 존재감 과시에 나선 것을 두고 전당대회와 연관 지어 바라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비록 안 의원이 “전당대회엔 관심 없다”며 선을 그었지만 미묘한 시기에 잠행에서 벗어난 것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권대우 정치평론가도 “(전당대회에 관심 없다는) 안 의원 말을 누가 믿겠느냐. 출마를 직접 하지 않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움직일 것”이라면서 “안 의원이 어떤 정치적 판단을 하느냐에 따라 문재인 독주 체제인 당권 구도가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박 의원 측은 안 의원과 여러 차례 접촉하며 ‘협조’를 부탁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에 안 의원 측 역시 초반엔 신중한 입장이었다가 최근엔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앞서의 안 의원 측근은 “한두 달 전부터 박 의원 쪽에서 만나자고 연락이 와 전당대회와 관련된 현안을 주고받았다”고 털어놨다. 박 의원 전당대회를 돕고 있는 호남지역의 의원 역시 “안 의원 결단만 남은 것으로 안다. 지금은 주춤한 상태지만 안 의원은 여전히 새정치연합에서 가장 대중적인 정치인이다. (안 의원이 가세해준다면) 친노에 비해 열세인 조직력을 만회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둘이 어떠한 논의를 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새정치연합 일각에선 박 의원이 안 의원에게 대권과 관련된 제안을 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앞서의 호남 의원은 “박 의원은 나이 등 여러모로 당 대표가 사실상 정치 인생의 마지막 도전이다. 그러나 안 의원은 대통령이 목표다. 안 의원에게 대권이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꺼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권을 잡는 데 도움을 주면 차기 대선에서 밀어줄 것이란 취지의 말을 전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른바 박 의원과 안 의원 사이에 오갔다는 ‘당권-대권 밀약설’이다.
양측 모두 이에 대해선 고개를 젓고 있긴 하다. 그러나 정치권에선 어느 정도 공감대가 모아졌을 것이란 반론도 적지 않다. 서로간의 이해득실이 맞아떨어지고 있는 까닭에서다.
우선 연대론의 ‘키’를 쥐고 있는 안 의원 측은 당내 입지 회복이 절실한 상황이다. 더군다나 박 의원은 야권 지지 기반인 호남 지역 ‘맹주’이면서 이번 전당대회에서 비노계 중 가장 앞서 있는 후보다. 대권을 거머쥐려는 안 의원에게 반드시 필요한 호남과 비노계 지지를 동시에 얻을 수 있는 호기라는 얘기다.
이에 대해 안 의원의 다른 측근은 “박 의원은 안 의원이 내세운 새정치와는 다소 안 맞는 게 사실이다. 또 나이도 많다. 그래서 부담이긴 하다”면서도 “어차피 안 의원은 ‘문재인 대항마’로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안 의원은 비노계 진영에서 ‘대권 상수’여야 한다. 박지원 당권 카드는 우리 쪽에선 괜찮은 선택이다. 박 의원을 전면에 나서서 돕진 않더라도 물밑에서 어느 정도 지원은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 측 노림수는 유력 대권 주자를 등에 업어 비노계를 규합시키는 데에 있다. 당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대권-당권 분리론에 무게가 실리기를 바라는 속내도 감지된다. 차기 대권주자이기도 한 문 의원을 견제하겠다는 것이다. 권대우 정치평론가는 “지금은 문 의원이 앞서 있는 게 확실하다. 그러나 전당대회가 총선 및 대선과 맞물리면서 안 의원 역할론이 부각될 경우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특히 문재인 독주 방지 차원에서 제기된 대권-당권 분리론이 힘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점쳤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