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창 전 지검장은 ‘스타검사’에서 하루아침에 ‘음란검사’로 추락했다. 작은 사진은 CCTV에 찍힌 체포 직전의 김 전 지검장 모습.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하지만 검찰은 지난 8월 22일 경찰이 공연음란죄를 적용해 김 전 지검장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지 석 달을 넘긴 시점에서야 겨우 기소유예 결정을 내렸다. 국민적 관심이 큰 사안인 만큼 검찰이 솜방망이 처벌을 내릴 경우 국민의 법 감정과 정서에 반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로 인해 검찰은 김 전 지검장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놓고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시민위원회에 회부해 의견을 물은 것도 검찰의 고뇌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검찰의 결론은 결국 ‘제 식구 감싸기’였다.
제주지방검찰청은 광주고등검찰청 검찰시민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김수창 전 지검장에 대해 병원치료를 전제로 한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고 11월 25일 밝혔다. ‘기소유예’는 범죄혐의가 충분하고 소추조건이 구비돼 있어도 가해자의 기존 전과나 피해자의 피해 정도, 피해자와의 합의내용, 반성 정도 등을 감안해 검사가 기소를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김 전 지검장과 같은 공연음란 혐의 사건으로 기소유예를 받는 경우는 약 15%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10명 가운데 1~2명에 해당되는 ‘행운’이 김 전 지검장에게 찾아온 셈이다. 검찰은 범죄인을 수사하는 사정기관으로서 타의 모범이 그 존재의 근간이다. 그런 검찰의 고위간부가 ‘운 좋게’ 기소유예를 받았다는 것은 누가 봐도 ‘유권무죄 무권유죄’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검찰은 “김 전 지검장이 타인을 대상으로 (음란 행위를) 하지 않았고 심야시간 인적이 드문 공터와 거리 등 타인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시간과 장소를 택해 성기 노출 상태로 배회했다”며 “신고자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 상태에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에게 체포된 상황이 목격자 진술 및 폐쇄회로TV(CCTV) 분석을 통해 확인됐다”며 김 전 지검장에게 ‘면죄부’를 줬다.
또한 검찰은 “정신과 의사가 김 전 지검장을 진찰ㆍ감정 후 제출한 의견에 따르면 피의자는 범행 당시 오랫동안 성장과정에서 억압됐던 분노감이 비정상적인 본능적 충동과 함께 폭발해 잘못된 방식으로 표출된 정신 병리 현상인 ‘성선호성 장애’ 상태였다”며 “목격자나 특정인을 향해 범행한 것이 아니며, 노출증에 의한 전형적인 공연음란죄에 해당하는 바바리 맨 범행과도 차이가 있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이어 “이 사건으로 면직된 김 전 지검장은 병원에 입원해 6개월 이상의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고 재범 위험성이 없다”며 “목격자와 가족이 피의자의 선처를 바라고 있다”고 덧붙였다.
제주지검은 브리핑을 통해 김 전 지검장 주치의의 소견서를 출입기자단 소속 기자들에게 직접 읽어줬다는 전언이다. 제주지검은 김 전 지검장이 우울증이 심하고 자살 우려도 있어 최소 6개월 이상의 치료를 요하기 때문에 ‘도저히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정신 상태가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김 전 지검장은 수도권 소재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김 전 지검장은 지난 8월 12일 오후 11시 32분께 제주시 중앙로의 한 음식점 인근 2곳에서 5차례에 걸쳐 음란행위를 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 바 있다. 이에 광주고검 검찰시민위원회 위원 11명은 11월 10일 오전 10시부터 사건을 수사한 박철완 검사와 김 전 지검장 주치의를 면담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후 토론에서 위원 9명은 기소유예 처분을, 1명은 무혐의, 나머지 1명은 벌금형 약속기소를 주장했다. 다수결에 따라 기소유예 처분을 검찰에 건의했고 검찰은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기소 독점권’을 가진 검찰의 기소권 남용을 견제하기 위해 도입된 ‘검찰시민위원회’가 오히려 검찰의 명분 쌓기용 ‘방패막이’로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검찰시민위원회의 의견은 검찰의 기소여부에 대한 구속력이 없다. 또한 검찰은 위원 명단조차 공개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애초부터 검찰의 입맛에 맞는 인물들로만 위원회를 구성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어린 눈초리도 생겨나고 있다. 제주지검 출입기자단 소속 한 매체 기자는 “이번에 김 전 지검장에게 ‘기소유예’ 의견을 낸 광주고검 검찰시민위원회의 위원장을 포함해 위원들의 명단을 요구하자 검찰 측에서는 ‘지금까지 그것에 대해서는 알려준 사례가 없다’고 말했다. 통상적으로 그런 위원회에서 회의를 할 때는 분위기를 주도하는 몇몇이 있다. 또 비공개로 진행되는 위원회 회의에서 검사가 브리핑을 할 때 흐름을 유도할 수도 있다. 이번 건의 경우에도 검찰은 의사 소견서를 보여줬다고 하더라. 그 자체가 분위기를 조성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광주고검의 한 관계자는 “시민위원회 위원들이 익명성을 원하니까 명단 공개를 안 한다. 선정기준도 일반적인 것이고 이미 구성이 돼 있으니까 얘기하기는 곤란하다. 이런 사건은 몇 년에 한 번 나오는 것인데 이런 건을 위해 구성했다고 보는 건 잘못됐다. 검찰 시민위원회는 한 달에 한 번 내지 두 번씩 각 검찰청에서 열리고 이렇게 (국민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대부분의 사안들을 상식적으로 처리하고 있다. 이번 건이 특별히 세간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하니 검찰시민위원회가 이런 일을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일반적인 사건들이 대부분이다”고 해명했다.
김 전 지검장에 대한 기소유예 처분에 대해 한 법조계 관계자는 “비단 김 전 지검장뿐 아니라 ‘기소유예’는 예전부터 문제가 있는 것으로 항상 지적받아 왔다. 결국 기소 유예는 ‘한 번 봐 준다’는 것이다. ‘기소유예’ 기준이 내부적으로 존재해도 사건마다 다 개별성이 있어서 결국 검찰의 자의적인 판단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야당은 “그동안 ‘바바리맨’ 범죄를 일으킨 당사자들도 성장과정을 모두 파악해 정상참작을 해 왔느냐”며 “유례없는 검찰 고위직 추문에 대해 검찰이 나서서 면죄부를 준 꼴”이라고 일제히 포문을 열었다. 새정치민주연합 서영교 원내대변인은 11월 26일 국회에서 브리핑을 갖고 “3개월 동안 사건 처리를 미루더니 경찰의 기소 의견을 무시한 채 솜방망이 처벌을 내렸다”며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행태가 계속되면 열심히 일하는 대다수 검사들의 의욕을 꺾는 일부 검찰의 추문과 비리가 재연될 것”이라고 일갈했다. 이어 서 대변인은 “김 전 검사장의 경우 변호사 개업이 가능해졌다. 죄는 잊힐 수 있지만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통합진보당 홍성규 대변인도 국회 브리핑을 통해 “친절하기 짝이 없는 검찰의 설명을 보면 검찰인지 변호인인지 구별할 수 없다”며 “성장과정까지 언급하며 정신병리 현상 상태인 탓에, 노출증에 의한 전형적인 공연 음란죄를 저지르는 ‘바바리맨’과 차이가 있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라며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소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일반 국민들에게는 엄격한 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검찰이 정작 자신들 검찰에 대해서는 관대한 처분을 내림으로써 국민들의 비난을 받아 온 것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최근 몇 년간만 살펴봐도 검찰의 ‘솜방망이 처벌’ 행태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최근 검찰은 지난 9월 골프를 치던 도중 여성 경기보조원(캐디)의 가슴을 만지는 등 성추행을 한 혐의로 박희태 전 국회의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이 검사 출신으로 법무부 장관까지 지낸 박 전 의장을 단 한 차례 소환 조사도 하지 않고 재판에 넘기기로 하면서, 박 전 의장의 언론 노출 부담 등을 고려해 배려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또 대검찰청 감찰본부는 여기자를 성추행한 혐의로 지난 2월 고소당한 이진한 대구지방검찰청 서부지청장에게는 ‘경고 처분’만 내렸으며, 김형식 서울시의원 살인교사 사건 피해자 송 씨의 장부를 통해 뇌물을 받은 것으로 드러난 대검 공안부 연구관에게는 ‘면직 요청’만 내리고 종결했다.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 씨 간첩조작 사건 담당검사도 ‘직무태만’과 ‘품위손상’으로 징계를 받았을 뿐이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검찰은 검사가 사건에 휘말리게 되면 일이 더 커지기 전에 덮으려고 한다. 일이 커지면 검찰의 지나친 권력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고 이로 인해 조직이 흔들리기 때문이다”며 “경찰이 검사를 수사할 경우 검찰은 이를 중간에 가로채 가서 자신들이 직접 수사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
검찰시민위는 어떤 곳? 검찰 기소독점주의 폐해 견제 검찰은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에 대해 기소유예 처분을 결정했다고 발표하면서 이 같은 처분이 ‘검찰시민위원회’의 의견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광주고검 한 관계자는 “‘국민참여재판’처럼 강제성은 없지만 대체로 검사는 거의 대부분 검찰시민위원회의 의견을 그대로 반영해서 결정한다”고 말했다. 검찰시민위원의 자격은 만 20세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 중에서 ‘건전한 상식과 균형감을 갖춘’ 일반 시민이다. 직업, 연령, 성별, 거주지 등을 고려해서 결정하며, 공정성 담보를 위해 지역사회 각 단체의 추천을 받거나 공개모집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명단이나 선정 기준 등은 공개되지 않으며 위원회의 회의도 비공개로 진행된다. 이 때문에 검찰이 민감한 사안에 대해 검찰시민위원회 뒤에 숨어 자신들의 결정에 대한 명분을 확보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금융회사에서 법률담당 고문으로 재직 중인 한 변호사는 “명단 비공개 취지가 위원의 독립성과 객관성을 보호하기 위한 것 같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의 제재심의위원회 같은 경우에도 위원들 명단을 공개하고 있는 것에 비춰 공개를 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말했다. [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