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시민단체가 ‘조두순 사건’의 피의자 엄벌을 요구하며 국회 정문에서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 ||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아동 성폭력에 대한 여론이 다시 들끓고 있다. 아동 성폭력은 한 아이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쳐놓은 것으로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는 ‘살인행위’나 마찬가지라는 주장이 다시금 제기되고 있다.
아동 성폭행범에 대한 형량을 높여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자 이명박 대통령은 국무회의 석상에서 “평생 그런 사람들을 격리시키는 것이 마땅하지 않나 하는 생각까지 할 정도로 마음이 참담하다”는 심정을 밝혔다. 또 이귀남 법무부 장관도 조 씨에 대해 가석방이 없을 것임을 언급했다. 하지만 그간 아동성폭력 사건들의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그야말로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 경우가 많았다는 점에서 추후 현실적이고도 강경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2001년 5월 우리 사회를 경악케 만들었던 실로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 성동구 송정동에 살던 김슬기 양(가명·4)이 실종 9일 만에 토막난 상태로 등산배낭에 담긴 채 발견됐기 때문이다. 발견 당시 슬기 양의 사체는 토막난 채 냉동되어 있었다. 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토막난 사체 중 특정부위가 포함된 하반신 부분만 없었다는 점이었다. 문제의 토막 부분은 이틀 후 경기도 광주의 한 여관 화장실 변기속에서 발견됐다.
사건발생 19일 만에 검거된 범인은 슬기 양의 집 인근 2평짜리 반지하 방에 살고 있던 최달수(가명·40)였다. 최 씨는 98년 2월에도 서울 황학동에서 5세 여아를 강제추행해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고 복역했던 인물로 당시 출소한 지 열 달 남짓한 상태였다.
경찰에서 최 씨는 슬기 양을 살해한 것은 인정했지만 ‘성폭행만큼은 절대 안했다’고 완강히 주장했다. 그러나 국과수 사체감정 결과 슬기 양의 신체 특정 부위 두 곳에서 모두 최 씨의 정액반응이 나왔다. 최 씨는 그제서야 “여러 번 시도했는데 아이가 너무 어려서… 소리를 지르며 울어대 겁이 나서 그만…”이라고 털어놨다.
당시 최 씨를 검거했던 담당 수사관은 “아동성폭력은 그 행위 자체만으로도 피해 아동과 가족들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는 점에서 사실상 살인이나 다름없다. 더욱 심각한 것은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살인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최 씨는 동부지법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서울고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끔찍한 짓을 저지른 최 씨였지만 그는 여느 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항소했고, 법은 그에게 ‘관용’을 베풀었던 것이다.
하지만 최 씨의 경우는 그나마 나은 경우다. 우리 사회는 유독 아동 성폭행범죄에 대해 지나치리 만큼 관대했다. 지난 2007년 서울중앙지법에서 아동 성범죄 피고인에게 선고한 평균 형량은 징역 4년에 불과했다. 조희진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차장검사가 서울고검 검사로 재직할 당시 작성한 ‘아동대상 성폭력 범죄에 대한 양형분석’에 따르면 2007년 서울중앙지법은 접수된 당시 15건의 아동 성범죄 사건 중 9명의 피고인에게 평균 4년의 형량을 선고했다. 실형이 선고되지 않은 4명에게는 집행유예가 선고됐으며 나머지 2건은 고소취소 등으로 공소가 기각됐다.
구체적인 몇 가지 사례만 봐도 그간 법이 아동성폭력 가해자에게 얼마나 관용을 베풀었는지를 알 수 있다. 아동 성폭력 전과가 있는 A 씨(50)는 다섯 살, 열 살짜리 여아를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는데, 검찰은 7년형을 구형했으나 법정은 3년을 선고했다. 열세 살 의붓딸을 상습적으로 강간하고 네 차례 임신까지 시킨 B 씨(48)에 대해 검찰은 12년을 구형했지만 법원은 ‘초범이고 반성한다’는 이유로 7년을 선고했다. 동네 꼬마를 추행한 아파트 경비원 C 씨(65)는 피해자 측과 합의했고 고령이라는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열한 살짜리 의붓딸을 144차례 추행하고 28차례 강간한 D 씨(40)는 ‘반성하고 있다’는 이유로 고작 3년형을 선고받았다. 아홉 살짜리 여아를 강제추행한 슈퍼마켓 주인 E 씨(56)는 ‘우발적’이라는 이유로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았다.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7년부터 올 7월까지 검찰이 수사한 아동성폭력 사건 가해자 5948명 중 42%에 해당하는 2501명이 불기소처분을 받았다. 또 민주당 최영희 의원이 보건가족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는 2007년 형이 확정된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1839건 중 무기징역은 0.4%에 불과했으며 대부분 벌금형(42%)과 집행유예(30%)에 그쳤다. 실형을 받았다 해도 가석방을 감안하면 현저히 짧은 사회격리가 이뤄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아동성폭력 피해자들의 상당수가 평생 그날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성인이 되어서도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홉 살 때 자신을 성폭행한 이웃집 아저씨를 21년 후에 찾아가 살해한 김부남 사건과 오랫동안 의부에게 성폭행을 당한 여성이 남자친구와 함께 의부를 살해한 김보은 사건이 대표적이다.
현행법상 아동성폭력 사범에게 할 수 있는 법적 제도는 실형을 선고하는 것 외에 전자발찌가 유일하다. 하지만 재범 우려자의 위치만 추적할 수 있는 전자발찌는 사건 발생시 범인 검거에는 도움을 줄 수 있지만 범죄예방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실효성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경찰청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13세 미만 아동성폭력 사건은 1220여건으로 해마다 평균 10% 이상씩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이는 하루 3.3건의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는 얘긴데 전문가들은 아동성폭력 사건 신고율이 6% 수준에 그친다는 점을 고려하면 2만 건 이상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아동성폭력 사건이 활개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로 가벼운 처벌 수준을 지적하고 있다. 순간의 충동을 이기지 못해 아동의 일생을 망치는 죄를 저지르고도 아이의 법정진술이 증거로 인정되지 않아 집행유예를 선고받거나 가벼운 실형을 받는 것에 그친다면 아동성폭력은 근절되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이는 아동성폭력사범의 재범률이 높은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이에 법정에서 아동의 진술을 성인의 그것과 같은 기준으로 채택해야 하고 강력한 처벌법 제정과 동시에 복지부의 복합적인 예방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는 이 같은 목소리를 반영, 아동성폭력 재발방지를 위해 아동성범죄자에 대한 양형기준을 높이고 징역형 상한을 확대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이에 성범죄자의 전자발찌 부착기간이 연장되고 성범죄자의 신상정보를 내년부터 인터넷을 통해 20세 이상 모든 성인이 열람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