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세청 국장급 간부 안 아무개 씨가 세무조사 무마 대가로 기업들에게 그림을 강매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는 가운데 검찰은 그의 부인이 운영하는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인갤러리를 압수수색했다. 임영무 기자 namoo@ilyo.co.kr | ||
검찰은 이 갤러리에 대한 압수수색을 통해 그림을 매입한 고객 명단과 거래 장부 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객 명단에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 10여 곳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어 검찰 수사 추이에 따라 상당한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사정당국 일각에서는 이번 검찰 수사의 불똥이 한 전 청장을 비롯한 국세청 고위층의 고질적인 로비 의혹 사건으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국세청을 넘어 정·관·재계를 초긴장 모드로 몰아넣고 있는 ‘그림 로비’ 의혹 사건의 실체를 들여다 봤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11월 2일 안 씨가 세무조사 무마를 대가로 고가의 그림을 강매한 정황을 잡고 안 씨의 부인이 운영하는 미술관을 압수수색하는 등 ‘그림 로비’ 사건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국세청 고위 간부인 안 씨가 세무조사 대상 기업들을 상대로 고가의 그림과 조형물을 강매한 혐의를 잡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실제로 검찰 수사 결과 국내 굴지의 대기업 10여 곳이 가인갤러리에서 수억~수십억 원 상당의 고가 미술품을 매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최근 가인갤러리를 통해 고가의 미술품을 매입한 국내 대기업 10여 곳의 명단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취재결과 해당 기업은 S 중공업, H 캐피탈·H 카드, M 화재, H 산업, D 건설, 유명통신업체 A 사 등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이들 대기업이 고가의 미술품을 매입하거나 조형물 설치를 맡기는 과정에서 세무조사 무마를 시도했는지 등을 집중 수사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검찰은 가인갤러리와 안 씨 부부 등의 계좌를 추적하는 동시에 안 씨 부부와 대기업 관련자들에 대한 소환조사를 본격화하고 있어 상당한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안 씨와 그의 부인 가인갤러리 대표 홍 아무개 씨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내린 검찰은 조만간 안 씨 부부를 소환 조사한 뒤 피의사실이 확인될 경우 곧바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안 씨 부부의 미술품 강매 의혹 사건 불똥이 한상률 전 청장의 ‘그림 로비’ 의혹 사건으로 번질지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한 전 청장이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는 ‘그림 로비’ 사건은 한 전 청장이 국세청 차장이던 2007년 전군표 당시 국세청장에게 최욱경 화백의 ‘학동마을’ 그림을 건네면서 인사청탁을 했다는 게 골자다.
전 전 청장의 부인은 올해 초 이 같은 사실을 폭로해 파문을 일으켰고, 이로 인해 한 전 청장은 불명예 퇴진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검찰 등 사정당국이 ‘그림 로비’ 의혹에 대해 수사를 머뭇거리는 사이에 한 전 청장은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한 전 청장의 미국 체류가 장기화되면서 수사는 유야무야됐고, 야당과 시민단체들이 철저한 수사를 독려하고 있지만 사정당국은 이렇다할 수사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지난 3월 참여연대는 검찰에 수사촉구서를 제출한 바 있고, 6월에는 민주당이 정식으로 전 전 청장과 한 전 청장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하기도 했다.
한 전 청장의 미국 체류를 이유로 수사에 소극적이었던 검찰이 안 씨 부부의 ‘미술품 로비’ 의혹 사건을 본격적으로 수사하면서 그 불똥이 한 전 청장에게까지 튈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검찰이 압수수색을 단행한 가인갤러리는 전 전 청장 부인이 한 전 청장의 부인으로부터 받은 ‘학동마을’을 팔아달라고 내놓은 곳이다. 또 이번 수사의 핵심 당사자로 지목받고 있는 사람은 현직 국세청 고위 간부다. 검찰은 이 미술관이 국세청 고위층의 로비 창구로 활용됐을 가능성을 열어 놓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세청 로비 사건에 쏠린 여론의 뜨거운 관심이 부담스러운 듯 검찰은 이번 수사의 초점은 안 씨 부부가 세무조사 대상 기업들을 상대로 고가의 미술품을 강매했는지 여부를 규명하는 데 있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안 씨 부부를 겨냥한 단순 비리 사건 수사임을 시사하고 있는 분위기다. 검찰이 한 전 청장의 미국 체류 장기화로 수사에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가인갤러리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한 점도 안 씨를 겨냥한 단순 수사 가능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 한상률 전 국세청장 | ||
안 씨는 특히 부인이 운영하는 미술관이 압수수색을 당하자 여러 차례 “기자회견을 하겠다”는 뜻을 피력했으나 주위의 만류로 이를 접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안 씨는 지난해 7월 S 업체 감사직까지 제시하며 사퇴를 종용받았다고 주장해 논란의 불씨를 살려놓고 있는 상태다. 그는 한 전 청장의 ‘그림 로비’ 사건 발설자로 의심받은 직후부터 국세청이 회유와 압박을 병행하며 집요하게 사퇴를 요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에서 8년간 근무한 경력이 있는 안 씨는 사정라인에 지인들이 상당수 포진해 있고 본인의 정보력도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 일각에서는 검찰 사정권에 진입한 안 씨의 입은 그야말로 ‘움직이는 시한폭탄’이라는 얘기가 나돌고 있을 정도다.
따라서 검찰이 안 씨 부부와 관련자만을 수사 대상으로 삼을 경우 형평성 논란과 더불어 검찰의 ‘권력 눈치보기’ 의혹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한 전 청장의 ‘그림 로비’ 의혹을 비롯해 가인갤러리를 매개로 한 국세청의 조직적인 그림로비 의혹 등 핵심을 비껴가려 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수사가 한 전 청장은 물론 국세청의 조직적인 로비 의혹 사건으로 확전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안 씨가 국세청으로부터 사퇴를 종용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는 만큼 검찰 수사 과정에서 폭탄 발언을 할 가능성도 열려 있는 상태다. 국세청과 검찰에 강한 불만을 품고 있는 안 씨가 “혼자 죽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국세청의 조직적인 로비 의혹 실태를 폭로할 경우 국세청 전체가 또다시 격랑에 휩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형국이다.
실제로 사정당국 일각에서는 검찰이 국세청 로비 창구로 지목받고 있는 가인갤러리에 대한 압수수색을 통해 고객 명단과 거래 장부 등을 확보한 만큼 국세청을 넘어 정·관·재계의 검은 커넥션 사건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대기업 10여 곳이 이 미술관에서 수억 원대의 미술품을 구입한 사실이 드러나고 있는 만큼 검찰 수사 칼날은 정치권과 관가, 재계를 겨냥하게 될 것이란 관측에도 힘이 실리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가인갤러리에서 확보한 각종 자료에다 관련자들 소환조사 과정에서 관련 증거자료나 증언이 확보될 경우 한 전 청장에 대한 소환 조사 또한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한 전 청장의 ‘그림 로비’ 의혹과 관련한 결정적인 증거나 증언이 확보됐는데도 검찰이 계속 소극적인 자세를 보일 경우 ‘부실·봐주기 수사’ 논란이 거세지면서 여론의 역풍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직 청장들의 ‘그림 로비’ 의혹에 이어 현직 고위 간부의 ‘그림 강매’ 의혹까지 불거지자 국세청은 당혹감 속에 검찰 수사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국세청은 검찰이 안 씨의 부인이 운영하는 미술관을 압수수색하는 등 ‘그림 강매’ 의혹 사건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하자 모든 정보 라인을 총동원해 검찰 수사 동향을 파악하는 등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백용호 국세청장은 11월 3일 기자간담회에서 “감찰과장이 들어오면 깜짝 놀란다”는 말로 연이어 터져 나오는 국세청 관련 비리 의혹 사건에 대한 무거운 심경을 전달하기도 했다.
국세청 고위층의 로비 의혹 사건에 대해 10개월여 만에 다시 칼을 꺼내든 검찰이 현직 고위 간부인 안 씨만을 조준할지 아니면 한 전 청장을 포함한 국세청의 조직적인 로비 의혹 사건으로 확전시킬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또 검찰의 칼날이 전·현직 국세청 수뇌부를 겨냥할 경우 정치권을 비롯한 관가와 재계도 사정 가시권에 진입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어 또 한차례 격랑이 일 것으로 보인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