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대강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가운데 충남 연기군에 설치될 금강 금남보 건설현장.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
정치권 일각에선 4대강 턴키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대형 건설사의 담합 의혹이 제기되고 있고, 이명박 대통령의 모교인 동지상고 특혜 의혹도 증폭되고 있는 실정이다. 야권은 담합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를 독려하는 동시에 여차하면 국정조사와 특검 카드까지 꺼내들 태세다. 사정당국 주변에선 4대강 사업을 둘러싼 숱한 잡음과 갖가지 의혹이 자칫 초대형 권력형 비리 사건으로 확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돌고 있다. 첫 삽은 떴지만 지뢰밭 공사를 예고하고 있는 4대강 사업의 핵심 뇌관 속으로 들어가 봤다.
우선 정치권 일각에선 4대강 턴키 1차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대형 건설사의 담합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 일부 사업 지역에선 이명박 대통령의 모교 출신 기업인이 몸 담고 있는 건설사에 사업권이 집중돼 특혜 의혹도 증폭되고 있다.
이석현 민주당 의원은 11월 8일 기자회견을 갖고 “현대와 삼성 등 6대 건설사들이 4대강 턴키 1차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입찰 담합해 공구별로 1~2개씩을 나눠먹기 했다”고 폭로해 파문을 확산시키고 있다.
이 의원에 따르면 이른바 건설업계 ‘빅6’로 불리는 6개 대형 건설사들은 지난 5월과 6월 서울 모 호텔과 서초동의 한 음식점에서 수차례 담합회의를 가졌다. 현대건설이 주도하고 삼성물산, 대우건설, GS건설, 대림산업, SK건설이 참여한 이 회의 결과 전국 15개 공구 가운데 영산강 2개 공구는 호남 연고 건설사에 맡기고 나머지 13개 공구는 1~2개씩 안분하기로 결정했다는 게 이 의원의 주장이다.
실제로 지난 9월 입찰 결과를 보면 삼성물산이 당초 맡기로 했던 2개 공구 중 낙동강 32공구를 포기한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 공구의 선정결과는 모두 이 주장과 일치했다. 삼성물산이 낙동강 32공구를 놓친 이유는 ‘빅6’에 포함되지 않은 롯데(시공능력 8위), 두산(11위), 동부건설(18위) 등이 ‘빅6’ 건설사들의 담합에 반발, 자체 컨소시엄을 구성해 입찰한 데 따른 것이다.
이 의원은 지난달 실시된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4대강 턴키 1차사업자 선정 결과 낙찰률이 90%가 넘고 공구별로 건설사들이 고르게 응찰한 점, 설계내용이 다른데도 상당수 공구에서 1, 2위 응찰자의 가격 차이가 1% 미만인 점 등을 들어 담합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4대강 사업 중 낙동강 공구는 이 대통령의 모교인 경북 포항의 동지상고 출신 건설업자들이 사업자로 대거 선정돼 특혜 의혹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이석현 의원은 11월 9일 국회 대정부질문을 통해 동지상고 출신 건설업자 특혜 의혹을 제기했다. 이 의원은 이날 대정부 질문에서 “지난 9월 30일 4대강 턴키(설계·시공 일괄방식) 1차 사업 공모 결과 총 8개의 낙동강 공구에 대기업을 주간사 회사로 하는 컨소시엄이 선정됐는데, 컨소시엄에 참여한 중소건설사 51개사 중 동지상고 출신이 대표 등으로 있는 곳이 5개 기업이었다”며 특혜설에 불을 지폈다.
이 의원은 이어 “컨소시엄에 참여한 영남 지역 중소건설사 26개사 중 5분의 1이 동지상고와 관계가 있는 기업”이라며 “영남 43개 시·군의 374개 고교 중 왜 하필 동지상고 동문들이 낙동강 사업을 휩쓸고 있느냐”고 지적했다.
영남권 정가 일각에선 4대강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여권 실세 A 씨가 ‘보이지 않는 손’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란 소문이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일례로 시공능력이 영남권에서 10위권에 불과한 D 건설이 낙동강 3개 공구 건설에 대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 참여할 수 있었던 것도 A 씨가 막후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4대강 사업을 둘러싼 담합 및 특혜 의혹이 불거지자 공정거래위원회가 관련 의혹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가운데 정호열 공정위원장이 담합 정황을 포착한 듯한 발언을 해 파문을 확산시키고 있다. 11월 11일 국회 대정부질문에 참석한 정 위원장은 4대강 사업의 턴키공사 입찰담합 의혹과 관련해 “대체로 보면 담합과 관련되는 듯한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4대강 사업에서 이런 부분이 논란이 되면 4대강 사업의 장애요인이 되기 때문에 지난달 초 4개 팀을 파견해 이틀간 현장조사를 했다”며 “입찰가격 담합은 시장경제의 기본 원칙과 근본을 흔드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정 위원장의 발언은 갓 피어오른 4대강 사업 담합 의혹 불씨에 기름을 부었다. 본격적인 정부 예산심의를 앞두고 불거진 담합 논란에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반면 ‘4대강 백지화’를 주창하고 있는 야당은 공세의 동력을 확보한 듯 대대적인 역공에 돌입하고 있다.
조윤선 한나라당 대변인은 12일 논평을 통해 “담합 의혹이 사실이라면 이런 불미스러운 일은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다.
청와대도 곤혹스런 표정을 감추지 않고 있다. 청와대는 12일 “공정위의 조사가 우선인 만큼 조사결과에 따라 조치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정정길 대통령비서실장도 이날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 참석해 “공정위에서 조사를 하고 있는데 문제가 생긴다면 법이 정한 범위 내에서 엄벌에 처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반면 송두영 민주당 부대변인은 같은날 논평에서 “4대강 사업자 선정과정에서 각종 비리 의혹이 불거지고 있어 4대강에 권력형 비리의 악취가 풍기고 있다”며 권력형 비리 가능성을 제기했다. 송 부대변인은 또 “만일 4대강 사업자 선정과정에서 이 대통령의 고교 동문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면 이는 전형적인 권력형 비리”라며 “이명박 한나라당 정권이 4대강 사업을 강행하려면 교도소 증축 예산을 위해 법무부 예산도 늘려야 할 것 같다”고 비꼬았다.
우위영 민주노동당 대변인도 “첫 삽 뜨기는 속도전으로 밀어붙이면서 4대강 사업을 둘러싼 온갖 의혹들에 대해서는 굼벵이가 따로 없다”며 “공정위원장은 수집된 4대강 사업 턴키공사 입찰 관련 자료를 하루빨리 공개하고 속전속결로 분석해 그 죗값에 따라 법에 근거하여 4대강 삽질 행위를 즉각 중단하도록 조치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등 일부 야당은 4대강 사업을 둘러싼 담합 및 특혜 의혹에 대해 검찰 수사를 압박하는 동시에 여차하면 국정조사와 특검 도입도 불사한다는 초강경 대응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사정당국 주변에서는 4대강 사업을 둘러싼 숱한 논란과 각종 의혹이 자칫 권력형 비리로 확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최근 기자와 만난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4대강 사업 턴키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대형 건설사의 담합 정황이 포착되고 있고, 특정 고교 출신 건설업자에게 사업을 몰아준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권력형 비리 형태를 갖춰가고 있다”며 “입찰에서 떨어진 중소형 건설업자들이 대형 건설사의 담합 및 특혜 의혹과 관련한 구체적인 자료나 증거를 폭로할 경우 4대강 사업은 권력형 비리로 얼룩질 개연성이 높다”고 전했다.
일부 야당 의원실이나 진보 성향 언론사에는 4대강 의혹과 관련한 갖가지 제보가 은밀히 전달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휘발성이 강한 뇌관을 탑재한 채 출항한 4대강 사업이 암초를 극복하고 순항을 계속할지, 아니면 비리 뇌관이 터져 침몰하게 될지 국민적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